
빼돌린 돈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동안 그의 생활은 그 어떤 재력가도 부럽지 않을 만큼 화려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천문학적 액수를 어떻게 횡령할 수 있었는지, 왜 횡령했는지, 어떤 곳에 사용했는지, 어디까지 파장이 번질지 추적해 본다.
재계 일각이 발칵 뒤집혔다.
동아건설 자금담당 부장 박모씨(48)가 은행 직원 등의 도움을 받아 회사자금을 무려 1900여억원이나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로 최근 경찰에 붙잡혔기 때문이다.
경찰에 따르면 그가 회사 공금을 빼돌리기로 마음먹게 된 발단은 지난 2001년 주식투자, 경마로 수백억원대 손실을 보고 나서다.
그는 건설사가 공사대금의 10%를 건설공제조합의 질권설정(제삼자의 허가가 있어야 예금을 인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을 받아 은행에 예치하는 하자보수보증금에 손을 대면서부터 실행에 옮겼다.
미리 법인 인감을 찍어둔 예금청구서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2004년 9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24차례에 걸쳐 477억원을 빼돌렸다.
또 지난해 6월부터 올 3월까지 회사 운영자금 계좌에서 24번에 나눠 523억원을 인출했다.
이후 3월에서 6월까지 회사 파산 당시 채무변제금으로 신한은행 계좌에 보관했던 1500여억원 중 898억원도 챙겼다.
그가 이 같이 회사 자금을 간 크게 빼돌릴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자금담당 부장이라는 자신의 지위와 돈이 예치돼 있던 은행 등의 인맥을 적극 활용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그는 경찰조사에서 "1998년 이후 회사의 자금조달을 혼자서 담당하다 보니 자금출납 내역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어 조기에 발각되지 않았다"고 했다.
인출 과정에서는 그의 학교 선배인 하나은행 여신관리부 직원 김모 차장(50)이 서류상으로만 질권설정을 하고 전산에는 입력하지 않았고 그의 고교 후배인 회사 자금 과장 유모씨(37)가 위조된 예금청구서를 받아 출금 및 계좌이체를 한 후 대가를 받고 눈 감아줬다.
이렇게 빼돌린 돈은 약 1900여억원에 달하며 대부분 주식투자나 도박 등으로 탕진하거나 고급별장, 외제차 구입 등 호화생활을 즐기는데 사용했다.
주식투자에 150억원, 경마에 200억원을 사용했다.
특히 마카오 카지노와 사설 카지노에 350억원, 강원랜드 카지노에 190억원, 포커도박에 50억원 등 카지노에서 VIP 고객으로 등록되며 '큰손', '강남 박회장' 등으로 통할 정도로 썼다.
부동산은 2007년 경기도 양평의 고급별장과 올 3월 경기 하남시 감북동의 고급 단독주택을 각각 6여억원과 16여억원에 구입했고 4월에는 내연녀인 전 동아건설 자금부 경리직원인 권모(32)씨를 위해 서울 강동구 상일동의 빌라를 3억3000만원에 빌려 선물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려 부동산을 구입한 뒤 카지노에서 한 차례 환전한 돈으로 갚는 수법을 쓰는 대담함도 보였다고 한다.
벤츠나 BMW 등 고급 외제차는 수시로 바꿔 타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돈은 이전의 횡령액을 돌려막는 데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회사 내부의 의혹이 확산되면서 동시에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그는 좁혀오는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7월8일 휴가를 내고 감쪽같이 행적을 감췄다.
두 달여 동안은 권씨에게 선물한 빌라에서 머물렀고 9월 중순에는 타인 명의로 빌린 송파구 방이동 빌라에 숨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속칭 '대포폰' 20여대로 지인들과 연락하는 한편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방이동 빌라 장롱에 현금 7억원을 도피자금으로 준비해두는 치밀함도 보였다.
경찰은 그가 추석을 앞두고 부인 송모씨(46)를 만날 것으로 예상하고 송씨를 미행했다.
경찰은 추석을 하루 앞둔 지난 2일 하남시 미사리 인근 한 식당에서 사이클 복장에 선글라스를 끼고 콧수염을 길러 변복한 그를 3개월의 추적 끝에 검거했다.
검거 당시 그는 타인의 운전면허증을 제시하며 상황을 모면하려 했고 지문조회를 시도하자 격렬히 저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인 그와 범행을 도와준 하나은행 전 직원 김씨, 횡령한 돈을 숨긴 그의 부인 송씨를 각각 구속하고 그의 도피를 도운 내연녀 권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횡령액 일부는 이전 횡령 금액을 돌려막는 데 사용됐다. 대부분의 돈은 도박에 쓰고 남은 돈이 없다"고 주장한 일부 돈에 대해서도 추적 중이다.
국세청과 함께 강원랜드에서 유통된 고액권 수표 6000여장 관련 자료를 확보해 조사 중이며 현재 강원랜드 도박과 부동산 구입에 빼돌린 돈 일부를 사용한 사실을 확인한 상태로 관련자를 소환할 방침이다.
또 회사 고위층도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가 횡령한 돈을 갚아야 할 의무가 있지만 도박으로 탕진했다면 부동산 등 재산 몰수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며 "박씨가 횡령한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자금 흐름을 계속 추적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아건설과 신한은행은 신탁된 채무변제금의 인출에 대한 책임을 놓고 민사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나은행은 급히 자체조사에 나서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번 사건을 모니터링 하고 자체 조사를 벌여 사실관계가 확인될 경우 해당 기관이나 기관장에 대한 문책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토목 분야에서 두각을 보인 동아건설은 2001년 파산에 이어 지난해 3월 프라임그룹에 인수됐다.
정순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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