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씨는 지난해 9월14일 A은행 한 지점을 방문해 담당 직원 이모씨와 “펀드 가입·환매 신청서를 미리 작성하되, 펀드를 가입할 때는 사전에 유선으로 연락해 펀드 유형과 가입 시기 등을 정하자”고 합의했다. 그러나 판매 직원 이씨는 10월 투자자 김씨와 사전 합의 없이 1억2000만원으로 3개 펀드에 가입한 뒤 다음날 김씨에 전화해 펀드 가입 사실을 통보했다. 11월 초에는 2억1000만원을 3개 펀드에 추가로 투자해놓고도 투자자 김씨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아예 알리지 않았다. 인터넷뱅킹을 하다가 우연히 이 사실을 안 김씨는 금감원에 분쟁 조정을 신청했다.
금감원은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김씨와 협의하지 않은 만큼 임의로 펀드에 가입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결정했다. 금감원은 투자한 원금 3억3000만원에서 김씨가 펀드 가입 사실에 대해 처음 이의를 제기한 시점의 평가액인 3억1258억원을 뺀 나머지 손실액 1741만원을 보상해주도록 조정했다. 지난 6월 내려진 이 조정 결정은 당국이 불완전 판매에서 소비자의 손을 들어 구제한 첫 사례다.
당시 금감원은 “은행 직원이 투자자에게 알리지 않고 임의로 펀드에 가입한 사실이 인정되는 만큼 투자자에게 손실액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러한 사례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은행이나 증권사 직원들이 앞으로 펀드 가입자를 모집하면서 불완전판매를 한 사실이 3회 이상 적발되면 판매자격을 영구 박탈당하며 해당 업체는 영업정지 등의 조치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정기예금에 가입하기 위해 우리은행을 방문한 A씨는 파워인컴펀드에 가입했다. 창구직원은 “손실 가능성이 대한민국 부도확률 수준으로 거의 없다”고 A씨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A씨의 손실률은 25%.
금감원은 지난 11일 금융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파워인컴펀드 관련 분쟁에 대해 우리은행에 불완전판매 책임이 있다며 손실금액의 50%를 배상하라는 조정 결정을 내렸다.
손실배상 결정 이유는 우리은행이 민원을 제기한 A씨에게 투자설명서를 제공하지 않았고 원금이 보장되는 예금으로 오해할 만한 소지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원인이 투자신탁상품 가입고객 확인서에 서명했고 거래통장에 ‘펀드종류 파생상품형’이라고 기재돼 있어 주의를 기울이면 위험성이 있는 상품임을 알 수 있었던 만큼 은행의 책임비율을 50%로 제한했다.
투자자들은 판매자에 소송
판매자들은 운용사에 소송
‘물고 물리기(?)’
금감원의 분쟁조정은 상당히 이례적이지만 ‘피해자’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법원으로 달려가고 있다.
펀드를 구매한 투자자는 판매사인 은행이나 증권사가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았다며 불완전 판매에 대해 소송을 시작했다. 판매사는 운용사가 제대로 운용을 하지 않았다며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나섰다. 증시가 하락하면서 투자에 책임을 져야 하는 투자자도, 투자자의 돈을 보호해야 하는 운용사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판매사도 모두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증시 폭락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판매자 측인 은행과 증권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판매자 측에서는 “소비자 측에도 일부 책임은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현재 투자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사안은 우리은행의 우리파워인컴펀드, 국민은행과 푸르덴셜증권의 역외선물환펀드, 국민은행과 피델리티자산운용의 중국펀드 선물환 등이다.
판매자인 증권사와 은행은 이번에는 운용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굿모닝신한증권, 교보증권, 대신증권, 동부증권, 동양종금증권, 메리츠증권, 우리투자증권 7개 판매사는 부동산펀드 운용사인 KB자산운용을 상대로 공동 대응을 하겠다고 나섰다.
문제가 된 것은 KB자산운용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동산펀드. 펀드자금을 모집해 진행된 아파트 개발사업 과정에서 수익률에 영향을 미칠만한 중요사항이 발생했지만 KB자산운용측은 투자자와 펀드판매사에 이를 공지하지 않았고 펀드만기가 임박해 수익률이 떨어지고 말았다. 투자자와 펀드판매사들은 운용사인 KB자산운용측이 사업과정에서 시행사의 우발채무 발생과 공사비 변경 등 중요 사업진행 사항을 고지하지 않았다고 반발하고 있다.
판매증권사측도 불만이긴 마찬가지다. KB자산운용측이 수익률 진도를 판매사에 너무 늦게 통보했다는 것이 판매자들의 주장이다. 사업초기부터 추가사업비용이 지출된 것을 숨겨가며 진행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KB자산운용측은 사업진행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운용과정에서 발생된 여러가지 사업변수에 대해 의사결정 과정에 따라 사업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부동산펀드에서 사업비 증가가 수익률에 영향을 미칠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으므로 중도에 투자자들에게 변경사항을 공지하지 않은 점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책임을 어느 한쪽에만 묻기는 상당히 어려운 형편이다. 최근 불완전 판매를 이유로 금융감독원에서 우리은행이 판매한 우리파워인컴펀드의 손실액 50%를 배상하라는 결론을 내렸음에도 우리은행이 이를 수용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우리은행 측은 분쟁 조정을 신청한 A씨가 비교적 고령에 상품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 감안돼서 일부 배상 결론을 내렸다는 점에 대해서는 안도하고 있다. 그러나 자칫 모든 투자자들이 손실을 배상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점은 우려하고 있다.
자산운용사에 대한 판매사의 공동 대응에 대해서 일부에서는 고객들이 판매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하려는 움직임에 증권사들이 ‘선수를 쳤다’고 반응하고 있다. 증권사들은 나름대로 “만기 지급해야 할 수익이 훨씬 낮기 때문에 항의하는 것인데 오히려 우리에게 책임을 돌린다”며 반발하고 있다.
부실판매 3회땐 판매자격 영구 박탈
삼진아웃제.미스터리쇼핑제 도입
금감원은 펀드 불완전판매로 인한 투자자 민원이 급증함에 따라 펀드 판매액이 많은 은행 6곳과 증권사 4곳을 대상으로 투자설명서 미교부, 설명의무 위반 등을 점검하기 위해 기획 검사를 하기로 했다. 검사 결과 위반 행위가 적발되면 영업정지나 기관경고 등 고강도 제재를 가하고 관련 임직원도 문책된다.
또 자산운용협회와 협력해 판매인력관리에 관한 규정을 고쳐 불완전판매 인력의 자격정지 대상을 감봉 이상에서 견책 이상으로 확대하고 정지 기간을 1~6개월에서 6개월~2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삼진아웃제도 도입해 불완전판매로 3회 이상 징계받은 인력은 판매자격을 영구 박탈키로 했다.
내년 2월부터는 효과적인 단속을 위해 외부조사기관 인력이 고객 신분으로 가장해 판매과정을 모니터링하는 미스터리쇼핑제도도 도입된다. 판매사 지점에서 작성하는 전단도 자산운용협회 광고심사 대상에 넣어 관리된다. 이번 검사는 글로벌 증시 침체로 펀드 수익률이 급락하면서 분쟁이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조강희 기자 insat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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