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잡는 대부업체와 '쩐의 전쟁'

산업1 / 장해리 / 2007-06-11 00:00:00
금융당국, 70억 이상 대부업체 분기별 영업상황 보고 의무화

# 사례 1. 드라마 ‘쩐의 전쟁’의 한 장면. 주인공 금나라(박신양 분)는 사채업자 독고철(신구 분)의 지시로 상가(喪家)집에 찾아가 빚을 받아낸다. 금나라는 채무자인 고인(故人)의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반지를 빼낸다. 또한 금나라는 유족에게 돈을 갚으라며 ‘신체 포기 각서’를 들이댄다.

# 사례 2. 지난해 회사원 K씨는 급전이 필요해 가족 몰래 미등록 대부업체에서 250만원을 대출받아 매달 20만원씩 이자를 냈다. 최근 이자를 일주일가량 연체하자 대부업체는 K씨에게 “아내에게 알리고 아내 월급을 차압하겠다”고 했다. 이에 K씨가 항의하자 “불구덩이에 기름과 함께 넣겠다”며 협박했다.

위의 두 사례는 각각 드라마상의 장면과 실제로 대부업체에 피해를 본 서민의 상황이다. 어느 것이 사실이고 픽션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드라마 ‘쩐의 전쟁’이 대부업체의 무서운 실상을 알리며 이슈가 되자 정부가 사금융 시장조이기에 나섰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이 사금융 이용자 57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불법 채권추심을 경험한 사람이 2117명으로 전체의 37%에 달했다. 돈을 빌려 쓴 10명 중 4명 정도가 폭행과 협박, 공포감 조성 등 불법 채권추심을 경험한 것이다.

이처럼 사금융 이용자의 피해가 속출하고 드라마상으로 대부업의 실체가 알려지자, 정부가 뒤늦게 방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최근 권오규 부총리 및 경제장관들이 모여 대부업 정책협의회를 열었으며, 정치권 일부에서 금융 소외자들을 위한 사회연대은행 등의 방안을 내놓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허위과장광고 혐의가 있는 대부업체 20여개를 조사하고 있으며 금융감독 당국이 70억원의 자산을 가진 대부업체들을 관리하는 등 보다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서민들, 사채 때문에 힘들다

대부분의 사금융 채무자들은 66% 이자율이 대부업법으로 규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평균 197%의 고금리를 떠안고 돈을 빌리고 있다.

대부업체들의 무섭게 불어나는 이자도 이자거니와 연체할 경우 본인 및 가족이 입는 피해는 그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고금리에 선이자, 수수료 강요는 기본이고 차마 들을 수 없는 욕설과 폭언, 협박을 일삼는다. 심지어 폭행을 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대부업체를 찾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3월 서민들의 가계 빚이 586조500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서민들이 사채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사람만 329만명, 사채시장 규모는 1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 1금융, 2금융에서 대출을 받지 못한 서민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대부업체를 찾아가고 있는 것.

그나마 등록된 대부업체의 경우 연 181%대의 금리를 물지만, 무등록업체의 경우는 217%의 살인적인 금리를 내야 한다.

이들은 이자에 이자가 물려 수백만원의 빚이 수천만원으로 늘어나거나, 대부업체에서 대출한 돈을 갚기 위해 또다시 대부업체에 2차 대출을 받는 등 원금의 몇 십 배에 달하는 돈을 갚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부업체들은 불법 채권추심에 공공기관이 보유한 개인정보를 서슴없이 활용하고 있으며, 일본계 대부업체는 채권추심을 하기 위한 직원 교육용 매뉴얼까지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 매뉴얼에 따르면 국민연금관리공단의 개인정보 제공 서비스를 활용해 채무자가 다니는 회사를 알아내고, 월급을 제대로 받는지, 연봉은 얼마나 되는지 등 개인 소득 관련 정보를 취득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생활고 때문에 가뜩이나 힘든 서민들에게 대부업체들의 불법 채권추심은 그야말로 낭떠러지로 내모는 셈이다.

반면 서민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간 것과 대조적으로 지난해 대부업 시장은 초호황을 누렸다. 특히 업계 1, 2위인 일본계 대부업체 아프로그룹의 ‘러시앤캐시’와 ‘산와머니’는 각각 1000여억원, 710여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정부, 대부업 규제 칼 들었다

정부가 불법 대부업체에 대해 본격적인 규제에 나선다. 대부업체와 ‘쩐의 전쟁’을 시작한 것.

지난 5일 권오규 경제부총리 주재로 ‘제2차 대부업 정책협의회’를 통해 대부업 제제방안 및 서민 지원방안을 논의했으며, 이 회의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참석하면서 대부업 허위 과장 광고 혐의가 있는 20여개 업체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다.

이에 따라 무이자를 노래 부르던 대부업체의 광고가 위기에 처했으며, 앞으로 자산규모가 70억원을 넘는 대부업체는 분기별로 주요 영업상황에 대한 보고를 감독당국에 해야 한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대부업체의 영업현황을 상시 파악할 수 있도록 상시모니터링 시스템을 마련하고 감독당국에 대한 대부업체의 정기적인 업무보고를 의무화하도록 했다.

대부업체가 회사분할, 법인화 기피 등 단속을 피할 경우 당국의 집중 모니터링을 회피하는 행위로 간주해 분기별 보고 의무가 부과되며, 특수관계인의 자산을 포함해 자산이 70억원을 넘거나 개인.유한회사라 하더라도 자산이 70억원 이상이면 대형업체에 준해 모니터링 대상에 포함된다.

최근 정부가 대부업 실태를 모니터링한 결과 전체 대부잔액에서 대형대부업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83%에 달했으며 업체당 811억원을 대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재경부는 이번 보고의무의 부과로 분기별 세부적인 영업현황을 보고해야 하는 업체는 약 70여개로 이 중 외국계 대부업체는 20여 곳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와 함께 대부업체에 돈을 빌릴 때 선이자, 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공제한 금액은 원금에서 제외된다. 예를 들어 대부업체가 100만원을 빌려주고 선이자 명목으로 10만원을 떼고 90만원만 빌려줬다면 원금은 90만원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부업체들은 선이자까지 포함해 원금을 100만원으로 산정해왔다.

불법적인 추심행위와 처벌규정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구타나 뺨을 때리는 행위 △자녀들의 안전을 언급하는 행위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인쇄물 전달 △ 다수가 채무자의 직장이나 거주지를 방문하는 행위 등에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여기에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자율 연 60%를 40%로 더 낮출 방안이 입법 추진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일 임종인 무소속 의원를 비롯한 민주노동당, 열린우리당의 의원들은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을 발의했으며, 이대로 입법될 경우 시행령에서 실제 정해지는 최고이자율은 30%대로 낮아지게 된다.

뒤늦은 서민지원 방안, 통할까?

정부는 대부업 시장의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동시에 금융소외 계층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고금리 사채 시장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금융 소외계층 25만명에게 국고와 공익기금 6400억원을 장기저리로 지원하는 것.

여기에 무보증 신용대출(마이크로 크레디트)제도를 활성화해 신용이 낮은 계층의 창업과 자활을 지원하기 위해 현행 94억원의 지원 자금을 1500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와 지원은 이미 사채시장으로 내몰린 서민들을 붙잡기엔 턱없이 부족한 소극적 차원의 정책이라는 반응이다.

대부업체를 규율한 것이 이제 갓 5년에 접어들었으며, 신용도의 차등적용을 근간으로 하는 자금 운용 시장에서 공적 영역이 개입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편 6월11일부터 금융감독원 주도로 대부업체의 대출을 저축은행 등 제도권 금융기관 대출로 전화하는 ‘환승론’제도가 시행된다.

다만 러시앤캐시 등 15개 대형 대부업체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며 대부업체에 진 빚이 2건을 넘지 않고, 6개월 이상 정상 상환하고 있어야 하며, 연체 일수가 25일(연체건수 4번)을 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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