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미국의 무인정찰기가 이란 동부에서 나포된 사건과 관련해 가뜩이나 좋지 않던 미국-이란 관계는 더욱더 냉각되고 있다. 미국은 정찰기의 반환을 요청했지만 이란은 거부했고 미국은 ‘경제 제재’로 맞서고 있다. 하지만 산유국인 이란은 ‘유가’를 볼모로 잡고 있어 제재 또한 마땅치 않다.
이 갈등의 배경에는 ‘핵’이 자리 잡고 있다. 2002년 이란의 한 반정부단체의 폭로로 인해 시작된 이란의 ‘핵 개발’논쟁은 2005년 이란에 대 서방 강경노선을 주장하는 정권이 들어서면서 격화되기 시작했고 점점 더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이란의 국영 알 알람 방송은 군관계자의 말을 인용 “군이 이란 동부에서 미군 정찰기인 RQ-170을 격추시켰다”고 보도했다. 군 관계자는 “추락한 미군 정찰기는 큰 손상은 입지 않았으며 이란 군 당국이 보유 중”이라며 “이란은 앞으로도 무인정찰기를 이용한 스파이 활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은 “이란이 격추시켰다고 주장하는 정찰기는 지난주 아프간 동부지역에서 실종된 무인정찰기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무인기 반환을 요청했다. 우리는 이란이 이에 어떻게 반응할지 두고 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란 혁명수비대 호세인 살라미 부사령관 “자국 군에 의해 포획된 미군 무인정찰기를 미국에 돌려줄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란 국영방송에 출연해 “국가 안보와 관련해 비밀 정찰활동을 벌인 당사자에게 누구도 공격의 상징물을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라며 “미 무인정찰기의 이란 상공 정찰은 '적대적 행위'라며 더 강력한 대응이 뒤따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 미국 “달러 무서운 줄 모르네”
미국과 이란의 이러한 대립은 사실상 이란의 ‘핵 개발’을 놓고 일어나는 일이다. 이란은 2002년부터 꾸준히 핵을 개발해온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핵 무기’관련한 논란은 이란에 대 서방 강경노선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본격화 됐다.
미국은 그동안 유엔을 조종해 4차례에 걸쳐 이란에 각종 경제 제재를 가하며 압박 해왔지만 이란은 여전히 핵 프로그램을 고수하며 미국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분위기는 매우 강경하다. 미국 상원은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에 대해 이란 중앙은행을 세계 금융시스템에서 고립시키는 내용의 강력한 추가 경제제재안을 승인했다.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면 미국 금융기관과 거래를 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국제거래는 대부분 달러를 기본통화로 하고 있어 미국 중앙은행의 결재가 있어야만 성사된다. 때문에 미국 중앙은행이 이 거래를 차단하면 모든 거래는 원천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만큼 이번 제재안은 매우 강력하다고 해석된다.
이에 대해 이란 정부는 “서방이 이란의 석유 수출을 방해하면 국제원유 가격이 두 배로 오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맞섰다. 이란의 <일간 알 샤르크>는 라민 메흐만파라스트 외무부 대변인을 인용, “서방이 이란 석유 수출을 방해하면 원유 가격이 배럴당 250달러로 올라갈 것”이라고 응수했다.
◇ 이란 핵개발, 미국이 원흉?
현재 미국과 이란의 대립 원인은 ‘핵’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꽤 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의 책 <글로벌 아마겟돈: 핵무기와 NPT>를 보면, 이란이 핵 개발에 본격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이라크와의 전쟁 때문이다.
당시 이란은 이라크를 상대하며 화학 무기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그 후 이란에서는 “핵무기를 갖고 있었다면 이라크가 화학 무기를 사용하지 못했거나 효과 적으로 보복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정서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 후 이란은 1987년, 1990년에 각각 파키스탄 및 중국과 원자력 협정을 체결했고, 이란 원전 사업에 러시아도 뛰어 들었다. 그러나 이란의 민수용 원자력이 군사용으로 전용될 것을 우려한 미국의 개입으로 이란 핵 프로그램은 지지부진했다.
그렇던 이란 핵문제는 2002년 이란의 한 반정부 단체가 “이란정부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하지 않은 핵시설을 보유하고 있다”고 폭로해 국제 사회의 이슈로 다시 떠올랐다.
핵문제가 불거지자 이란 정권은 평화적인 해결을 도모했다. 이란 정부는 “소규모 농축 시설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중수로와 핵연료 공장 등을 건설 할 계획”이라고 발표 했다. 그 후 IAEA는 2003년 9~10월에 걸쳐 핵사찰에 실시해 11월에 결의안을 채택했다.
2003년 10월 유럽 3개국(영국·프랑스·독일)과 합의를 통해 IAEA 추가 의정서에 서명하고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잠시 중단하기로 했고, 2004년 11월에는 유럽 3개국과 추가로 합의해 “호혜적인 방향으로 장기적인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하며, 우라늄 농축뿐만 아니라 원심 분리기 생산도 잠시 중단”하기로 했다. 이러한 온건 정책을 주도한 인물은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으로 그는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이란의 발전을 도모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2005년 6월 대 서방 강경 노선을 표방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이란 핵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그의 등장 배경에는 부시 행정부가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정권 교체 대상국으로 삼고, 이라크 침공에 이어 이란 침공설이 맹위를 떨친 점이 크게 작용했다. 같은 해 8월 이란은 부시 행정부의 강경책과 유럽 국가들의 합의 위반을 비난하면서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재개 한다”고 선언했다.
◇ 이란 ‘핵’ 남의 일 아닌 이유
친미 정권이 집권하고 있을 때 서방 국가들은 이란의 핵 개발을 암묵적으로 돕거나 무시했다. 그러나 지금은 핵개발 저지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 대표는 “비확산과 핵확산을 가르는 잣대가 국제 규범보다는 자국과의 친밀도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국제정치의 굴절된 현실을 잘 보여 준다”고 말한다.
정 대표는 “이란의 핵협상 대표와 국가 안전 보장 회의 수장을 역임한 하산 로와니의 2004년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발언 속에 이란의 목표와 핵문제 해법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 발언은, “세계는 파키스탄의 핵무기 보유도, 브라질이 핵연료 주기를 갖추는 것도 원하지 않았지만,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손에 넣었고 브라질도 핵연료 주기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는 이들 나라와 협력하기 시작했다”와, “우리의 문제는 그 어느 것도 아직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인데, 우리는 이제 그 문턱에 서 있다. 핵무기 제조와 관련해 우리는 결코 그 길로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로, 요약하자면 이란이 원하는 것은 핵무장이 아닌 “단지 핵무기 개발 잠재력을 보유하고 이를 통해 국제 사회에서 위상 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이란이라는 글자를 북한으로만 바꿔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온다. 우리 입장에서는 인접국인 북한이 핵을 갖는 것이 사실 달갑지 않다. 그러나 북한 입장에서는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핵’, 혹은 ‘핵 잠재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이란 핵개발 논란이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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