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와 한나라당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규제하기 위한 사전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SNS의 위력을 톡톡히 실감한 후 주류언론과 관변단체들을 동원해 ‘SNS 규제’ 판짜기에 돌입한 것이다. 언론사들을 동원해 ‘SNS의 문제’점들을 떠들어대게 만들고 관변단체들을 동원해 ‘토론회’를 개최하며 ‘전문가 의견 수렴’에 들어간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이렇게 나서는 것은 ‘위기감’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우리는 이성과 상식이 통하는 사람들”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야권과 시민단체들도 이에 반발하고 있어 정부가 SNS규제에 직접적으로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지난달 28일 ‘SNS를 통한 루머확산,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여기에는 KBS, 조선일보, 한겨레와 학계에서 토론자와 발제자로 참여했다.
이날 토론회는 표면적으로는 ‘SNS를 통한 루머확산’에 다루는 듯 했지만 실상 그 내용은 ‘SNS 규제’에 온통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조선일보 김민배 뉴미디어 실장은 “회사, 청와대, 법조계, 언론계, 각급학교, 군대, 육사 등 모든 조직이 SNS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게 급한 문제”라며 “언론중재위원회 같은 중립적인 SNS위원회를 설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KBS 보도국 김대회 인터넷뉴스 주간도 “손안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에서 보는 게 훨씬 개인적이고 자기 혼자 훔쳐보는 만족도를 느낄 수 있는데, 트위터의 140자 내 짧은 메시지는 직설적이고 자극적으로 쓰게 하는 구조”라고 평가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난달 24일 신라호텔에서 개최한 ‘불법 유해정보 유통방지 국제사회 공조방안 모색을 위한 컨퍼런스’도 비슷한 목적을 가진 행사였다.
방통심의위 박만 위원장은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와 악성댓글 등 권리침해 정보 등은 우리 삶을 무한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며 “국가 간 경계가 무의미해진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불법 유해정보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각국 단위의 노력만으로 한계가 있으며 국제 사회의 공동 노력이 절실히 요구 된다”고 밝혔다.
토론에 나선 한국외국어대학교 문재완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인터넷은 규제 못하는 영역이 아니다”라며 “심의 기구 입장에서 적극 심의에 나서야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 정부·여당의 ‘SNS 규제’ 판짜기
일각에서는 이러한 ‘토론회 개최’ 자체가 ‘SNS 규제’를 위한 정치권의 판짜기라는 주장이다. 일례로 지난 서울시장 선거 이후 정치권의 영향력 하에 있는 언론들은 일제히 ‘SNS의 역기능’을 주제로 보도를 쏟아냈다.
한 트위터 이용자가 “강호동, 자택에서 숨 쉰 채 발견”이라는 내용의 장난성 트윗을 게시한 이후 조중동을 비롯한 관변 언론들은 이를 뉴스로 내보내면서 트위터와 같은 SNS에 대한 규제방안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조선일보는 “막강한 정보 전달력을 가진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유명인 거짓 자살 루머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며 “네티즌들은 ‘SNS의 맹점이다’면서 ‘루머를 제일 먼저 유포한 사람을 잡아낼 수도 없고 너무 한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도 “최근에는 트위터 같은 SNS가 괴담의 주 무대가 되고 있다”며 “140자로 글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사실 관계가 왜곡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국민일보는 사설에서 “한미FTA 반대론자들이 SNS를 통해 안하무인의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며 “정상적인 토론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이러니 SNS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한 전문가는 “미디어를 이용해 ‘부정적 인식’을 생산한 후 관변단체를 동원해 ‘전문가적 견해’를 취합하는 것은 전형적인 ‘판짜기’ 수법”이라며 “이후 여론조사를 통한 입법에 들어가려는 수순을 밟을 것”이란 견해를 밝혔다.
그는 “정부가 이제껏 해온 많은 규제가 이러한 ‘판짜기’를 통해 이루어졌다”며 “언론과 미디어를 통제하고 손에 넣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이는 선거철만 되면 북한 뉴스가 범람하는 것과 마찬가지 경우”라며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네티즌은 “SNS는 ‘이성과 합리성에 근거한 상식’이 통하는 곳”이라며 “정부와 여당은 ‘소통’의 사전적 의미나 찾아보고 오라”고 충고 했다. 다른 네티즌들도 “SNS 규제라니 웃기지도 않는다”면서 “지금이 80년대 군사정권도 아니고, 규제한다면 북한과 다를 게 뭐냐”고 비꼬았다.
◇ 해외 “한국 이미 과도한 규제 국가”
해외 전문가들도 “이미 한국은 과도한 인터넷 규제국이다”고 말했다. 지난달 열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주최로 열린 ‘불법 유해정보 유통방지 국제사회 공조방안 모색을 위한 컨퍼런스’는 ‘SNS 규제’에 대한 정책적 이론을 뒷받침 하려는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우리나라가 과도하게 인터넷을 규제하고 있다는 사실만 부각됐다.
컨퍼런스에 참가한 해외 방송통신 규제기구 인사들은 “(우리의) 인터넷 규제는 자율규제를 장려하고, 그 대상도 아동 포르노 등 청소년 보호를 위한 유해물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 시청각고등평의회 아니싸 제글라쉬 국장은 “블로그나 UCC 등 비전문화된 콘텐츠는 규제 대상이 아니다”라며 “(인터넷을 규제해야 한다는 한국의 견해에) 프랑스 사회는 동의하지 못 한다”고 밝혔다.
그는 “EU 지침에 따라 일반적인 인터넷 규제 원칙이 적용되지만 회원국들은 자체적으로 규정을 도입할 수 있다. 프랑스 같은 경우 규제는 못하고 자문만 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호주는 명예훼손 등과 같은 게시물에 대해서는 아예 조사를 하지 않고 신고 된 청소년 유해 정보에 대해서만 규제를 하고 있고, 말레이사아도 통신멀티미디어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민간 자율기구인 ‘산업포럼’을 통한 자율규제에 주력하고 있다.
‘SNS를 통한 루머확산,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루머가 퍼지는 데에 언론의 흔들리는 위상이 자리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는 “이런 토론회는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계속해 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지금 우리 사회가 언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신문·방송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한양대학교 김정기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디지털 시대의 SNS는 정보에 대해 어떻게 참여하고 개방하고 공유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야한다”라면서 “SNS에 대해 매도하기, 낙인찍기 전략을 사용하는 것은 참여·개방·공유 시대에 적절한 전략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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