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신사업자들이 “스마트TV는 통신망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며 걸고 넘어진 것을 계기로 한때 잠잠해지나 했던 ‘망 중립성’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다. 통신사업자들은 그간 ‘카카오톡’이나 ‘마이피플’과 같은 앱들이 통신망에 무임승차한다고 비난해왔다. 통신사업자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비난의 화살을 삼성, LG의 스마트TV와 인터넷사업자들 까지 확대해 대립 중에 있다. 이에 방송통신위원회는 ‘망 중립성’에 관한 논의를 본격화 하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는 방침이지만 이는 비단 국내뿐만이 아닌 전 세계적인 사안이기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망 중립성=통신망을 보유한 사업자는 이 망을 통해 오고 가는 모든 콘텐츠를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개념. 이를 토대로 제조사·인터넷사업자는 통신망 비용 부담을 거부하고 있지만 통신사업자는 이들이 통신망 이용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통신사 vs 가전사 ‘망 중립성’ 대결
통신사업자들의 망 사용대가 요구에 가전사들이 본격적인 대응에 나서면서 ‘망 중립성’ 논쟁이 다시 격화될 전망이다.
그 동안 통신사업자는 가전제조사·인터넷사업자와 망 중립성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통신사업자들은 제조사와 인터넷사업자에 유·무선 네트워크 이용 대가를 요구하고 있지만 제조사 등은 망 중립성을 근거로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통신사업자들은 지난 8월 삼성, LG 등 스마트TV 가전사들에 공식 공문을 통해, 트래픽 폭증에 따른 망 사용대가를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통신사들의 요구에 공식적인 대응을 자제해 왔던 삼성, LG 등 가전사들이 ‘망 중립성 정책고수’입장을 밝히면서 제2 라운드를 맞고 있다.
먼저 공개적으로 반격에 나선 곳은 삼성전자로 정보통신정책학회가 주최한 국제심포지엄에서 ‘삼성전자의 망 중립성’정책기조를 공개했다. 그동안 일부 임원들이 개인적 의견을 밝힌 적은 있지만, 공식적으로 삼성의 망 중립성 정책기조가 제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은 ‘망 중립성 지켜져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삼성의 주장은 “스마트폰·스마트TV·태블릿PC 등 대부분의 스마트기기들이 유·무선 네트워크를 기반 해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망 중립성 원칙이 깨지면 IT 생태계 전반에 심한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의 주장은 일관되게 망 중립성 보호를 요구하는 국내 인터넷 업계는 물론 애플, 구글 등 글로벌 플랫폼업체들의 입장과 같이하는 것이다.
삼성은 특히 스마트TV 망 중립성 문제와 관련해 통신사들을 반박하며 공세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삼성 관계자는 “스마트TV는 일반 PC에서 제공하는 트래픽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며 “스마트TV가 5∼10배가량 트래픽을 유발한다는 주장은 과장됐다”고 설명했다.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삼성 측은 “네트워크 비용은 기술 개발을 통해 해결돼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반면 통신사업자들은 이들에게 추가 요금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삼성의 반격에 통신사 진영에서는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이다. 국내 굴지의 기업인 삼성이 나선다면 향후 망 중립성 공방에서 구글, 애플 등 글로벌 기업도 큰 목소리를 낼 공산이 커지기 때문이다.
◇ 방통위 “이달중 ‘망 중립성’ 결론 낸다”
망 중립성 논쟁은 이달 중 큰 전환점을 맞을 전망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달 중 망 중립성 정책마련을 위한 막바지 여론수렴 작업에 나설 것”이라 밝혔다.
업계에서는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미국 출장기를 담은 정책백서가 이 달 중순 발간되고 학계, 업계 등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망 중립성 공청회도 잇달아 개최되면서 망 중립성 정책 마련을 위한 준비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고 곧 뭔가 결론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방통위는 “정책백서 발간과 공청회 개최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빠르면 연내 망 중립성 정책기조를 제시 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방통위는 그동안 ‘망 중립성 포럼’ 등 전문가 그룹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한편, 온라인 등을 통해 여론수렴 작업을 전개해 왔다.
정부의 망 중립성 정책방향에 큰 변수가 될 최 위원장의 미국 출장 보고서 총 500여 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망 중립성 이해당사자들이 출장보고서에 관심을 집중하는 이유는, 망 중립성 정책과 관련한 중요한 시사점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기. 최 위원장은 지난 미국 출장 시 망 중립성 정책안을 제시한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구글, 통신업체를 두루 방문한 바 있다. 때문에 업계는 “연내 망 중립성 정책결정을 앞두고 있는 방통위와 최 위원장의 속내를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는 카드”라며 주목하고 있다.
방통위가 주관이 되는 대규모 공청회 행사도 11월중 계획돼 있다. 연말 망 중립성 정책결정에 앞서 최종 의견수렴을 하기 위한 행사로 평가되고 있다. 망 중립성 공청회는 그동안 정부가 구상한 망 중립성 정책방향을 일부 전달하고 전문가,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구하는 형태로 전개될 전망이다. 따라서 통신사·인터넷 진영간 소모적인 대결양상으로 전개됐던 망 중립성 논의가 보다 속도를 낼 수 있을 전망이다.
통신업계 한 임원은 “방통위가 이달 중 공청회에서 망 중립성 정책과 관련한 중요한 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 한다”며 “국내 망 중립성 정책 결정과정에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 전문가들 “서두를 필요 없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성급한 대안 마련이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시장을 관망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자칫 성급한 결론으로 인터넷 생태계 발전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글·야후 등 세계적인 인터넷 사업자가 포진한 미국은 이달 중 연방통신위원회(FCC)를 통해 인터넷사업자에 유리한 법안 발효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미국 이동통신사업자 버라이즌이 규제 권한 여부에 관한 소송을 제기하는 등 진통이 예상돼 아직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논의가 너무 성급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유·무선 트래픽 발생 현황에 대한 충분한 분석 없이 대책 마련에만 급급하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을 제외하고는 망 중립성 원칙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 사례 분석에만 집중한다는 지적도 있다.
경원대학교 법학부 최경진 교수는 “최소한 1년 이상 현재 트래픽 발생 상태를 냉정하게 평가한 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며 “미국을 비롯한 해외 사례와 국내 인터넷 환경의 차이점을 검토하는 작업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네덜란드와 칠레는 망 중립성을 법제화 했지만 성급한 도입으로 각종 부작용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방통위 관계자는 “네덜란드 최대 통신사인 KPN가 인터넷 서비스에 차등 요금제를 도입, 시급하게 법제화를 추진했지만 단기간에 전체 통신 요금이 증가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칠레는 인터넷 서비스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아 법 적용에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교수는 “대립만으로는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는 만큼 현재의 트래픽 상황을 정확한 정보로 구축해 중간 지점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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