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인하 회의, ‘정부 명분만 살려준 셈’

산업 / 장우진 / 2011-10-13 17:05:32
복지부-제약업계, 의견 못좁힌 채…정부, '임 장관 발언' 약속지킨 셈

[토요경제=장우진 기자] 8·12 일괄 약가인하 조치에 복건복지부(장관 임채민)와 제약업계간 1박2일 마라톤회의가 열렸으나 결국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오히려 잃은 것이 더 많다는 분위기다.
제약협회는 그 동안 대국민 성명은 정부의 일괄 약가인하 정책에 강력히 반발해왔다. 이에 임채민 복지부 장관은 국감에서 “제약업계와 논의하겠다”고 밝혔으며, 이번 회의로 정부는 제약업계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마련해 약속을 지킨셈이 됐다.
이번 회의의 유일한 소득은 내년 3월 예정인 기등재 의약품에 대한 약가일괄 인하를 지난 2007년 기준으로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제약업계가 주장한 단계적 약가인하와 연구개발(R&D) 투자를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요구 등에 대해 복지부는 ‘의견을 참고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해 얻은 것 없이 정부의 명분만 살려줬다는 의견이다.


◇‘약가인하, R&D 여력 손실크다’


한국제약협회(회장 이경호)는 정부의 일괄 약가인하와 관련해 복지부-제약업계간 마라톤 회의 개최전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제약협회 임상개발위원회(위원장 김정우)는 “급격한 일괄 약가인하는 장기적이고 많은 비용이 투자될 수 밖에 없는 신약개발에 종전과 같이 지속적인 투자를 어렵게 한다”며 “국내 제약산업이 글로벌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신약개발에 따르는 임상투자를 늘려야 하지만 투자 여력이 일시에 사라지는 충격으로 해외임상 등 R&D 여력의 손실이 크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나라와 일본의 전자, 자동차 산업의 성장기가 그러했듯이 국내 제약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시간동안 정부가 기다려 주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21세기의 가장 주목받는 산업인 신약개발, 바이오산업은 전자 및 자동차 등 몇몇 산업에 편중되어 발전한 우리나라의 전략적 포트폴리오산업을 보완하는 분야로서 반드시 육성되어야 한다”며 “급격한 약가인하는 제약산업 기반의 붕괴를 야기하여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동력을 스스로 파괴하는 행위다”라고 지적했다.
임상개발위원들은 약가인하로 인해 신약개발 후보지역으로서 한국에 대한 매력도 급감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임상개발 부문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상 리스크는 국내 임상인프라의 붕괴, 의료산업 기반 약화, R&D관련 고용감소 등이라고 밝혔다.


▲ 한국제약협회는 지난 7일 본관 4층 강당에서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정부의 약가인하 조치 방안 발표에 대한 현안 등을 논의했다.(사진: 한국제약협회 제공)


◇‘단계적 약가인하·R&D지원 확대’ 요구


복지부와 제약업계는 지난 11~12일 양일간 경기 양평 코바코연수원에서 마라톤 합숙회의를 가졌다. 그러나 결국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으며, 제약업계의 요구사항만 늘어놓는 양상을 보였다.
복지부는 지난 8월 국민의 약값 부담을 줄이고 연구개발 중심으로 제약산업을 육성하는 내용의 ‘약가제도 개편 및 제약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복지부는 ‘연구개발(R&D) 확대로 글로벌 제약사 육성’을 위하 일괄 약가인하를 추진했다고 밝혔으며 내년 1월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약가인하 정책으로 특허 만료된 오리지널 약값은 원가의 80%, 첫 복제약은 원가의 68%로 책정하도록 돼있는 것을 53.55%로 낮아지게 된다. 약가인하가 진행되면 건강보험에 등재된 1만4410개 의약품 가운데 8776개 품목 가격이 평균 17% 낮아지게 된다. 이는 의약분업 이후 최대규모의 인하 방안이다.
또 특허 만료 1년후부터는 안정적인 공급과 복제약의 빠른 등재를 유도하기 위해 오리지널약과 복제약 모두 원가의 59.5~70% 수준으로 완화키로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방침에 제약업계는 크게 반발하며 이번 회의를 통해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먼저 약가인하는 2014년 이후 단계적으로 시행할 것과 53.55%로 정한 인하폭을 완화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협회는 ‘기등재목록정비사업’이 2014년 종료예정으로, 지난 7월18일 ‘약가인하 추진을 2014년 이후 검토해 달라’는 호소문을 청와대·국회·보건복지부 등에 제출하기도 했다.
또 신약개발에 대한 지원도 요구했다. 이번 약가인하를 통해 예상 추정되는 금액이 약 2조1000억원(국민부담 6000억원·건보지출 1조5000억원)에 달하는 만큼 이를 연구개발(R&D) 펀드로 활용하는 등 실효성 있는 정책을 추진했다. 복지부는 ‘글로벌 제약사 육성’을 목표로 일정규모 이상의 신약 연구개발 투자 실적과 글로벌 진출 역량을 갖춘 제약기업을 선정, 집중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힌바 있다. 문제는 약가가 반토막(53.55% 인하) 나는 상황에서 연구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만큼 제약사들은 현실적으로 지원혜택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외에 공급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는 필수의약품(퇴장방지의약품·희귀긔약품 등)의 범위를 확대해 이를 약가인하에서 제외시켜달라는 입장도 전달했다. 또 개량신약과 원료합성의약품 등에 대해서는 약가우대 정책방안도 요구했다.
이 같은 제약업계의 입장에 최희주 건강보험정책관은 “제약업계의 의견을 참고해 개정안에 담도록 하겠다”며 “약가 인하 관련 행정예고는 최대한 빨리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명문만 살려준 셈?


이번 마라톤 회의를 통해 제약업계가 얻은 소득은 내년 3월 예정인 기등재 의약품에 대한 약가일괄 인하를 지난 2007년 기준으로 적용한다는 정부의 약속이다. 복지부는 2007년 ‘약제비 적정화방안’을 추진한바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다’는 분위기다. 정부의 명분만 세워줬다는 이야기다.
제약업계는 정부의 일괄 약가인하에 반발하며 그 동안 다방면에서 반대운동을 벌였다.
제약협회는 ‘제약산업의 가혹한 약가인하 정책 재고’를 주장하는 대국민 광고를 8월에만 네 차례 일간지에 게재했으며, 정부 측에는 두 차례에 걸쳐 호소문을 보냈다. 8월 29일부터는 ‘약가 일괄인하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여론전도 펼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이 임채민 복지부 장관은 최근 국감에서 “최근 (약가인하 관련) 제약업계 대표를 만나 의논하기도 했다”며 “제약업계와 보다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며 이해관계자들과 합숙회의를 갖는 것는 이례적인 것으로 이번 마라톤 회의는 임 장관이 말한 약속을 지킨 셈이다.
의견차를 좁히지는 못했지만 제약업계는 자신들의 요구를 충분히 표출했고, 정부는 이를 듣는 입장이 돼 정부는 추후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들었다’는 명분을 건졌다는 분위기다.
한 제약관계자는 “건의사항을 요구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복지부가) ‘참고하겠다’는 말만 되풀이돼 과연 의견이 얼마나 수렴될지는 모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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