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우회로까지 막혔다…한국 기업 원유 조달비 ‘경고등’

국제 / 최은별 기자 / 2026-09-16 09:19:52
얀부 원유 선적 중단·브렌트 108.75달러…일부 현물은 130달러 돌파
SK에너지·GS칼텍스 미국산 원유 프리미엄 급등…항공·해운·화학도 비용 압박
▲사우디 동서 파이프라인을 찍은 위성사진 [연합뉴스]

 

호르무즈해협을 피해온 사우디 원유 우회로까지 흔들리면서 한국 기업의 에너지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 정유사는 높은 정제마진의 수혜를 볼 수 있지만 SK에너지와 GS칼텍스의 대체 원유 조달비가 뛰는 등 원유 확보 경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16일 오전 외신을 종합하면 15일 브렌트유는 전 거래일보다 3.07달러(2.9%) 오른 배럴당 108.7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4.44달러(4.4%) 상승한 105.83달러를 기록했다. 두 유종 모두 5월19일 이후 가장 높은 종가다.

유가를 다시 끌어올린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우회 수출망 차질이다. 사우디는 호르무즈해협 통항 차질에 대응해 동부 유전의 원유를 약 1200㎞ 길이의 동서 송유관으로 홍해 연안 얀부까지 운송해왔다. 그러나 후티의 공격으로 송유관 가동이 중단된 데 이어 얀부의 원유 선적도 중단됐다. 사우디는 유럽 고객에게 예정됐던 9월 말 일부 원유 공급도 취소했다.

로이터는 이 때문에 “핵심 원유 수출로의 차질이 수주간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깊어졌다(disruptions to a critical oil-export route could persist for weeks.)"라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사우디 동서 송유관 가동 중단과 홍해 항로 위험을 국제유가 상승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했다. WSJ는 “대체 공급로에 대한 위협으로 공급 우려가 커지면서 원유 선물이 4개월 만의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고 전했다(“Crude futures rise to their highest level in four months as supply worries increase with threats to alternative supply routes.”).

파이낸셜타임스(FT)도 후티의 공격과 홍해·바브엘만데브 항로의 불안이 사우디의 원유 수출망을 압박하고 있다고 짚었다. 호르무즈해협의 통항 차질을 피해 만든 대체 수송망까지 위협받으면서 중동 원유를 세계시장으로 내보낼 수 있는 경로가 줄어드는 구조다.

현물시장의 압박은 선물시장보다 더 강하다. 로이터에 따르면 15일 유럽에서 거래되는 일부 실물 원유 가격은 배럴당 130달러를 넘어섰다. 북해산 포티스유는 배럴당 136.75달러까지 올라 지난 4월 기록한 사상 최고치 147.37달러에 접근했다. 중동 공급 차질을 대신할 수 있는 원유에 매수세가 몰린 결과다.

한국 정유사에도 대체 원유 확보 비용이 현실적인 부담으로 나타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SK에너지와 GS칼텍스는 최근 미국산 원유를 기준 가격보다 배럴당 최대 24달러 높은 프리미엄에 매입했다. 직전 달 약 13달러 수준에서 프리미엄이 크게 높아졌다. 아시아 정유사들이 중동 밖의 원유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면서 미국·서아프리카산 등 대체 원유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SK에너지·GS칼텍스·S-OIL·HD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사에는 수익과 비용 요인이 동시에 발생한다. 중동과 러시아 정제시설의 생산 차질로 휘발유·경유·항공유 가격이 원유보다 빠르게 오르면 정제마진은 개선된다. 실제 로이터에 따르면 아시아 정제마진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정유사들의 높은 가동률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원유를 비싸게 조달해야 한다면 높은 정제마진의 효과도 일부 상쇄된다. 특히 중동산 원유를 대신하려는 유럽과 아시아 정유사들이 미국·북해·서아프리카산 물량을 동시에 찾으면서 현물 프리미엄과 운송비가 함께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당장 한국의 원유가 부족해질 가능성은 낮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국내 정유업계는 7~8월 도입 원유를 전년 수준의 100% 이상 확보했고 9~10월 물량도 90% 이상 확보했다. 정부는 단기적인 국내 원유 수급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

정부는 그러나 공급망 위험에 대비해 대체 수송로 확보에 나서고 있다. 산업부는 사우디 송유관 재가동 상황을 점검하면서 수에즈운하 등 우회항로 전환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달 다시 시행한 비축유 스와프 제도를 활용하고 원유 도입선 다변화를 위한 운임 차액 지원 확대도 추진할 계획이다.

대한항공 등 항공사에는 고유가가 직접적인 비용 부담이다. 항공유 가격이 높게 유지되면 연료비가 늘어난다. HMM 등 해운사도 선박 연료 가격 상승에 더해 중동 항로의 보험료와 우회 운항 비용까지 부담할 수 있다.

호르무즈해협의 선박 통행도 크게 줄었다. Kpler 잠정 집계에 따르면 14일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 원자재 운반선은 4척으로 전날 10척에서 감소했다. 전쟁 이전에는 하루 평균 약 125척이 통과했다. 다만 위치정보를 끄고 운항하는 선박이 있어 실제 통과 선박은 집계보다 많을 수 있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 등 석유화학업계도 원료 가격을 주시해야 한다. 국제유가 상승은 핵심 원료인 나프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범용 석유화학 제품의 판매가격을 올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원료비와 운송비가 동시에 오르면 스프레드가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이번 중동 공급 충격은 ‘유가 110달러’만의 문제가 아니다. 호르무즈해협을 우회하기 위해 사용하던 사우디의 동서 송유관과 홍해 수출망까지 흔들리면서 한국 정유사의 원유 조달처 다변화 비용도 높아지고 있다.

단기 원유 물량을 확보한 한국에 당장 공급 부족이 닥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중동 사태가 길어질수록 정유사는 높은 정제마진과 비싼 원유 조달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고, 항공·해운·석유화학은 높아진 에너지 비용을 떠안아야 한다. 한국 경제에는 국제유가 자체보다 중동산 원유를 대신할 물량을 얼마나 싸고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느냐가 더 큰 변수가 되고 있다.

 

토요경제 / 최은별 기자 ceb@sateconomy.co.kr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美·이란 충돌에 호르무즈 다시 봉쇄 위기…한국경제, 유가·LNG 충격권2026.07.12
호르무즈 충격, 한국경제 두 갈래 압박2026.07.14
호르무즈 협상 진전에 유가 5%대 급락…뉴욕증시 사상 최고2026.08.05
호르무즈 파병 논란, 정유·해운·석화 원가 변수로2026.09.10
뉴스댓글 >

    많이 본 기사

    1
    한화투자증권, RWA 담보 활용으로 사업 확대…체인링크와 가치검증 체계 구축

    한화투자증권, RWA 담보 활용으로 사업 확대…체인링크와 가치검증 체계 구축

    한화투자증권이 실물연계자산(RWA)의 토큰화 사업을 글로벌 유통과 담보 활용으로 확대한다. 단순히 자산을 디지털 증권으로 발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치 검증과 블록체인 간 연결을 통해 금융상품의 활용 범위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30일 한화투자증권(대표 장병호)에 따르면 회사는 블록체인 데이터 인프라 기업 체인링크(Chainlink)와 글로벌 디지털자산 플랫

    2
    네이버, 엔비디아 10억달러 투자 납입일 확정…AI 팩토리 자금조달 본궤도

    네이버, 엔비디아 10억달러 투자 납입일 확정…AI 팩토리 자금조달 본궤도

    네이버가 엔비디아의 전략적 투자 일정과 절차를 확정했다. 인공지능(AI) 인프라 확보라는 선결 조건을 충족하면서 대규모 AI 팩토리 사업에 필요한 자본 조달이 구체화됐다.네이버(대표 최수연)는 30일 엔비디아를 대상으로 한 제3자배정 유상증자의 납입일을 기존 10월 30일에서 11월 6일로 변경했다고 공시했다. 신주 상장 예정일도 11월 20일에서 27일로

    3
    금융위, 부실 금융사 정리 150일→3~4일 단축 추진…보험사도 적용

    금융위, 부실 금융사 정리 150일→3~4일 단축 추진…보험사도 적용

    금융위원회가 금융시장 전반으로 부실이 확산할 우려가 있는 금융회사를 신속하게 정리하는 제도 도입을 추진한다. 보험사도 적용 대상에 포함되며, 긴급 상황에서는 주주총회와 입찰 등 기존 절차를 생략할 수 있도록 한다.금융위원회는 29일 '금융회사 신속정리제도 도입방안'을 발표하고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과 예금자보호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

    4
    현대차·기아, 英 유로7 신차 조기 의무화 철회…EU 인증도 인정

    단독 현대차·기아, 英 유로7 신차 조기 의무화 철회…EU 인증도 인정

    영국 정부가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인 유로7(Euro 7)을 도입하면서 신규 차종에 대한 조기 의무화는 철회하고 유럽연합(EU)의 형식승인을 인정하기로 한 사실이 토요경제 취재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현대자동차와 기아 등 국내 완성차업체의 영국 시장 인증 부담이 완화될 전망이다.28일 토요경제가 영국 교통부(Department for Transport)가 전

    5
    현대백화점그룹, 2027년 정기 임원 인사 전략은…장호진·박홍진 부회장 승진

    현대백화점그룹, 2027년 정기 임원 인사 전략은…장호진·박홍진 부회장 승진

    현대백화점그룹이 정기 임원 인사에서 사업별로 서로 다른 전략을 선택했다. 지주사와 식품사업은 기존 경영진의 위상을 높였지만 패션사업은 대표를 교체했다. 백화점에는 신규 출점을 담당할 인력을 재배치했다. 경영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사업별 성장 과제에 맞춰 책임자를 배치한 전략적 인사로 풀이된다.현대백화점그룹(회장 정지선)은 29일 승진 27명, 전보 23명 등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