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딱지’ 떼고 실력으로 승부

산업 / 전성운 / 2012-05-04 17:30:52
한국 경마에 부는 거센 ‘여풍(女風)’

경마는 전통적으로 ‘금녀(禁女)’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조교사의 경우 전체 107명 가운데 여성은 단 1명이고, 기수도 전체 141명 가운데 여성은 단 10명뿐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경마에서 여성들이 각 분야에서 놀라운 실력을 발휘하며 우승 사냥에 나서고 있다. 여성 기수들의 섬세한 면이 경마에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여성들의 상승세가 더욱 거세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신영(32) 조교사, 김혜선(23) 기수, 이아나(23) 기수 등 실력파 여성 기수들이 남성 못지않은 배짱과 능력으로 ‘우먼파워’를 발휘하며 연일 우승과 다양한 신기록 경신을 휩쓸며 한국 경마에 본격적인 ‘여풍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이들은 성별의 벽을 허물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화제를 모으던 시대를 과거의 유물로 만들고 있다.


▲ 서울경마공원에 불어 닥친 거센 여풍의 주인공들. 왼쪽부터 김혜선·이아나 기수, 이신영 조교사.


◇ “실력으로 화제 올라”
‘최초의 여성기수’ ‘최초의 여성 조교사’, ‘여성 기수의 선구자’ 등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다녔던 이신영 조교사는 작년 7월 기수에서 조교사로 변신한 이래 실력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작년에만 8승을 올려 가능성을 보였고 올해는 벌써 9승을 기록, 수십년의 경력을 지닌 남성 조교사들을 실력으로 꺾고 다승 랭킹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3월 한 달 동안 15전 5승 2위 1회로 복승률에서 무려 40%를 기록, 월간 최다승 조교사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신영 조교사의 ‘홀리몰리(4세 수말)’는 지난 21일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10경주 SLTC(말레이시아) 트로피 1800m 경주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던 백전노장 신우철(59세) 조교사의 ‘캐피털송’, 하재흥(57세) 조교사의 ‘카카메가’ 등을 꺾고 우승했다.


동시에 2009년 부산경남경마공원의 ‘상승일로’가 세운 1분54.4초의 종전 최고 기록을 1분53.9초로 앞당기며 국산마 신기록도 달성했다.


이신영 조교사의 '홀리몰리'는 출전한 14마리의 경주마 가운데 5위에 그치는 비인기마 였지만 출발부터 선두에 나선 뒤 결승선까지 1위로 통과, 우승에 성공하면서 쌍승식 54.5배의 대박과 함께 한국 경마 사상 최초로 여성 조교사의 특별경주 우승기록을 달성했다.


이신영 조교사는 기수로 데뷔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은 베테랑으로 10여년의 기수생활 동안 큰 경주에 출전하며 쌓은 경험이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기수 시절 국내 여성 기수로는 처음으로 경마대회 3위를 차지했고 같은 해 여성 기수 처음으로 그랑프리에 출전해 5위의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가 이처럼 조교사로 빠르게 자리를 잡은 데는 ‘자율과 관리’로 마방을 일사불란하게 묶어내는 여성 특유의 리더십이 한몫을 했다. 이 조교사는 평소 자신보다 나이 많은 기수나 조교보를 존중하는 데 역점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별다른 지시도 하지 않는다. “경기 전 잔소리보다 적절한 비유와 솔선수범으로 마방을 이끌고 있다”는게 주변의 평가다. 이 조교사도 “앞으로 꾸준한 노력으로 더욱 뛰어난 성적을 거두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마사회의 관계자는 “이신영 조교사의 마방은 신예 마필들의 도입이 늘었고 기존 실력파 말들이 제대로 안착을 했다”며 “올 하반기를 기점으로 비약적인 발전이 예상된다”고 평가했다.


◇ “여성의 섬세함 경마에 유리”
이신영 조교사를 뒤를 잇고 있는 김혜선 기수(9조)와 이아나 기수(30조) 역시 데뷔 이후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서울경마공원에 우먼파워를 발산하고 있다.


김혜선은 키 150㎝에 불과하지만 '슈퍼땅콩'이란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다부진 기승술과 타고난 승부기질은 서울경마공원내에서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데뷔 4년차인 김혜선 기수는 지난달 15일 7차례 경주에 나서 1위 2회, 2위 1회를 기록해 복승률 40%의 성과를 거뒀다.


더구나 김혜선 기수는 이날 10경주에서 ‘첩경’을 타고 1위를 기록했다. 첩경은 경기 전 인기순위에선 하위권을 맴돌았으나 김혜선 기수의 말몰이에 의한 깜짝 우승으로 쌍승식 67.8 배의 고배당을 터뜨렸다.


데뷔 3년차였던 작년 통산 40승을 기록하며 정식 기수로 등극한 김혜선 기수는 올해 역시 149전 9승 2위 11회 복승률 13.4%를 기록하며 2009년 데뷔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을 달리고 있다.


이아나 기수도 만만치 않았다. 이아나 기수는 15일 1경주에 ‘아이러브유’에 기승, 선행 일순으로 9마신차 여유승을 기록하더니, 6경주에는 ‘천승’을 타고 막판 우승을 차지해 데뷔 8개월 만에 10승을 달성했다.


한 경마 전문가는 "예전보다 최근 경마에서 여성의 활약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은 힘으로만 경주를 풀어가던 경마가 전문분야가 세분화 되고 테크닉이 중요시 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며 "여성 기수들이 섬세한 면이 경마에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여성들의 상승세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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