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고전읽기] 어리석은 왕을 만나니 충성도 부질없어라

문화·라이프 / 정해용 / 2014-06-02 15:07:28
57. 周 양왕의 경거망동

兄弟䦧于牆 外禦其侮 형제혁우장 외어기모
형제는 집안에서 다투더라도, 남의 공격 앞에서는 힘을 합친다.(‘詩經’ 小雅편)
주나라 양왕이 형제국인 鄭을 치기 위해 오랑캐와 손잡는 데 대해 충신의 충고

제 환공 때 주(周)나라에서 일어난 난리를 환공이 평정한 일이 있다. 주 천자 양왕의 이복동생 대(帶)가 왕권을 찬탈하려고 이민족 융과 적을 끌어들이자 대는 제나라로 달아났는데, 제나라는 관중을 보내어 융과 적을 몰아내고 천자의 지위를 지켜주었다.

그러나 제나라로 도망쳐온 대를 놓아둔 것이 끝내 화근이 됐다. 환공이 죽은 뒤 대는 다시 주나라로 돌아갔는데, 여전히 왕권에 대한 야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양왕 때에 정(鄭)나라가 활을 공격했다. 활은 천자의 울타리와 같은 나라였다.

본래 주나라는 도성 주변의 땅들을 여러 왕족들에게 나눠주어 제후로 삼았다. 이들 나라는 모두 천자와 같은 희(熙)씨 성이며, 지리적으로 주나라를 둘러싸고 있어, 변방의 이민족이나 성씨가 다른 제후국 가운데 배반하는 나라가 생기면 즉시 연합하여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주 임무의 하나였다. 노(魯) 조(曺) 위(衛) 정(鄭)나라는 그 중에 큰 나라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같은 문왕의 후손인 정나라가 활(滑)나라를 차지하려는 것이다. 양왕은 곧 대부 두 사람을 정나라에 보내 화해할 것을 부탁했다. 천자의 권위로 보면 명령에 해당하겠지만, 이미 쇠할대로 쇠한 천자의 처지에서는 거의 사정을 하는 격이었다. 하지만 정나라 문공은 천자의 부탁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사신으로 온 유손과 백복을 잡아 가두기까지 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찍이 양왕의 아버지인 혜왕 때에도 주나라에 반란이 일어나 왕이 정나라로 피신해온 일이 있었다. 그때 정나라는 괵과 함께 군사를 몰고 가 반란자인 퇴를 처단하고 혜왕을 복권시켜주었다. 그런데 혜왕은 정나라에 대해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았다. 그 배신감으로 인해 정나라는 앙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양왕은 아무리 힘없는 왕이지만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색이 종통(宗統)을 이은 천자가 아닌가.

그러나 아쉽게도 주변 제후국들은 감히 정나라와 원수지기를 두려워하는 허약한 나라들뿐이었으므로 양왕은 손쉬운 방편으로 이민족인 융과 적을 끌어들이기로 했다. 그러자 대부 부신(富辰)이 간했다. “높은 사람은 백성을 덕으로 어루만지는 것이 최상이고, 그게 아니라면 가까운 사람부터 아껴주어 그 덕이 멀리까지 퍼져나가게 하는 것이 차상입니다.

옛날 주공께서 주나라 친족들을 제후로 봉하여 주나라 왕실의 울타리로 삼을 때 친족들이 성주에 모여 시를 지었습니다. ‘산앵두가 맺혀 아름답게 빛나는구나. 그와 같이 지금 사람들 사이에서도 형제처럼 좋은 것이 없다.’ 하였고, ‘울타리 안에서는 형제끼리도 다투지만, 바깥에서 공격해 온다면 힘을 합쳐 막는다네(兄弟䦧于牆 外禦其侮).’라고 하였습니다. 형제간에 원한이 있어 다투더라도 이민족을 끌어들인다는 것은 바른 일이 아닙니다.”

양왕은 듣지 않고 정나라를 공격했다. 게다가 양왕은 적나라의 도움에 보답하겠다며 적나라 여자를 부인으로 맞았다. 점입가경이었다. 다시 부신이 반대했다. “선왕들께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정나라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민족을 이용하여 친족인 정나라를 칠 뿐 아니라 이민족과 혼인까지 맺고자 하십니까. 옛말에 ‘은혜를 베푸는 자는 언젠가 나태해지고, 은혜를 받는 자는 만족하지 않는다(報者倦矣 施者未厭)’고 하였습니다.

욕심 많은 적나라 여자를 왕후로 맞아들이면 적의 욕심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양왕은 또 충신의 말을 무시했다. 부신이 경고한 위기는 곧바로 찾아왔다. 왕후는 왕실의 예의와 도리를 모르는 야인이라 행실이 바르지 못했다. 제나라로 망명했다 돌아온 왕의 동생 대 또한 망나니여서, 두 사람이 야합했다. 양왕은 분노하여 왕후를 폐출시켰다.

이로써 적나라와 관계가 위태로와지자, 평소 기회를 노리던 대는 왕후와 함께 적나라의 군사들을 끌어들여 양왕을 공격했다. 충신들의 직언을 무시하며 제멋대로 경거망동했던 양왕은 고립무원에 빠졌다. 양왕의 처지는 자업자득인 셈이지만, 그의 충신 부신의 더욱 처지는 그저 딱하게 됐다. 이민족들이 쳐들어오자 부신은 군사들을 불러모았다.

“내가 몇 차례나 간했어도 왕께서 듣지 않더니 이 꼴이 되었다. 하지만 만일 내가 지금 나가 싸우지 않는다면 왕께서는 내가 당신을 원망해서 그렇다고 생각할 것이니 나가 싸울 수밖에 없다.” 부신은 많지 않은 군사들을 이끌고 나가 싸우다가 전사했다.

이야기 PLUS

충성스런 선비와 장수들의 일화는 아름답다. 그러나 때로는 그저 비장할 뿐, 도무지 충성을 왜 해야 하는지 회의를 품게 하는 일도 많다. 왕이 어리석으면 충성을 해도 빛이 나지 않고 왕이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이 오히려 역사에는 치욕이 되는 수도 있다. 신하나 자식의 도리만 중요한 게 아니라 군왕이나 어버이 되는 사람의 도리 또한 중요한 이유다. 아무리 입신출세가 중요하다 해도 때를 잘 읽지 못하고 나아가면 억울하거나 수치스러운 결과를 피해갈 수 없게 될 것이다. ‘아까운 충신’의 모습은 현대에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내가 몇 차례나 간했어도 왕께서 듣지 않더니 이 꼴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나가 싸우지 않는다면 왕께서는 내가 당신을 원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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