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폭통장 논란, '실적이 뭐길래'

산업1 / 장우진 / 2011-12-05 13:35:12
영업압박, 자신명의 통장 개설…금감원 제동에도 또다른 변칙영업 우려

[토요경제 = 장우진 기자] 은행원 사이에 일명 ‘자폭통장’이 논란이 되고 있다. 자폭통장이란 상부지시에 의한 영업목표 압박에 자신이나 가족명의로 통장을 개설하고 자기 돈을 쏟아 붓는 것을 말한다.
그 동안 은행원 사이에서는 이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고 이 과정에서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과도한 실적경쟁이 결국 엇나간 것이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자폭통장에 대해 철저한 감시를 통해 이를 근절할 계획이다. 또 금융실명제법 위반시 관련 직원에 대해 감봉 이상의 중징계를 내릴 방침이다.
그러나 이 같은 단속의 효율성은 여전히 의문시 된다. 자폭통장 자체를 줄어들지 모르지만 상부에서 지시한 영업목표는 어떻게든 달성해야 하기 때문에 또 다른 문제점이 파생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영업압박에 자기돈 쏟아붓는 ‘자폭통장’ 성행


은행원 사이에서 ‘자폭통장’은 그 동안 계속 논란이 돼왔다. 상부에서 제시한 영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은행원들은 자신과 가족뿐만 아니라 친지·주변친구들까지 인맥을 총 동원한다.
모 은행 대방동 지점에서 근무하는 이 모씨(30세, 여)는 “판매실적 부담으로 직접 개설한 계좌수만 12개”라며 “가족이름은 물론 친지 분들도 동원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 대학졸업 후 은행에 입사한 친구들이 각종 통장·카드 및 그 외 상품을 추천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특히 카드 등을 개설할 때는 인맥이라는 이유로 연회비를 면제해 준다며 추천하기도 한다.
이 모씨는 “대학졸업 후 직장을 못 구한 친구들은 신용카드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신용조회를 해준다고 하고 발급자격이 되면 카드를 발급해 준다”며 “학생신분으로 카드발급이 어려운 만큼 이 같은 방법을 이용하면 카드발급이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각종 보험상품 및 통장에는 자기 돈을 쏟아 붓은 후 손해보고 해제하는 일도 흔히 발생한다고 말했다.
실제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최근 3개 시중은행 대상으로 자폭통장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은행원 1명이 평균 15개 계좌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은행원 가족도 1명당 10개의 계좌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회사원들이 급여계좌, 주택통장 등 4~5개의 통장계좌를 보유한 것과 비교했을때 과도하다는 것이 금감원의 판단이다.
이 같은 상황은 은행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증권사들도 증권계좌 수를 늘리기 위해 무리한 변칙영업이 난무하고 있다.
한 증권사는 직원 직급에 따라 차등 영업목표를 설정하고 고객을 유치하도록 했다. 이에 직원들은 부담가중으로 역시 지인들을 상품판매 및 계좌증설에 혈안이 돼있다.
최근 모 증권사 계좌를 개설한 박 모씨(34세, 회사원)는 “최근 지인이 증권사로 직장을 옮긴후 부탁으로 인해 계좌를 개설했다”며 “사실상 사용하지 않는 계좌이지만 증권사로부터 전화 및 문자가 자꾸와 곤란하다. 막상 해제하자니 개인적인 업무가 바빠 쉽게 해제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은행관계자는 “영업목표 압박이 심하다”며 “위에서는 불이익이 없다고 하지만 실적을 내미는 순간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 답이 없다”도 고충을 토로했다.


◇금감원, ‘자폭통장 제동건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자 금감원은 자폭통장 개설 제동에 나섰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최근 “영업점을 평가할 때 직원과 가족 명의의 실적을 제외하라는 공문을 시중은행에 보냈다”며 “직원 가족이 계좌를 개설할 때는 실명 확인과 금융투자상품 설명 확성 확인 의무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유의사항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에 금감원은 은행원들이 본인이나 가족의 통장에 돈을 쏟아 넣는 사례들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다.
이 관계자는 “자폭 통장이란 것이 자기 돈을 가족이나 친척 명의 계좌에 넣는 것인 만큼 금융실명제법 위반 행위가 나올 수 있다”며 “향후 은행권을 검사할 때 가족 명의 계좌 개설의 적절성을 살필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앞으로 직원·자고 명의의 계좌 개설이 적정한지 확인 후 금융실명제법 위반한 사실이 적발되면 관련 직원에 대해 감봉 이상의 중징계를 내릴 방침이다. 또 해당 경영진에게도 책임을 물을 예정이다.


◇신종 변칙영업 등장 우려도


일각에서는 금감원의 이같은 방침이 반드시 필요하기는 하지만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은행원들이 자기 돈을 쏟아부으면서까지 자폭통장을 개설하는 것은 그만큼 영업목표 압박이 크기 때문이다. 즉, 자폭통장 개설을 막는다고 해서 은행원들이 영업압박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한 은행관계자는 “과도한 영업목표 설정이 은행원에게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라며 “자폭통장 개설에 제동을 거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직원 입장에서는 목표달성 방법이 하나 없어지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어 “근본적으로 영업압박에서 해방되지 않는 이상 은행원들이 고충을 자칫 더 커질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상반기 KB국민은행의 ‘성과향상추진본부’ 개설 논란, SC제일은행의 ‘성과임금제 도입’으로 인한 총파업 등 성과로 인한 노사갈등이 계속돼왔다.
실제 SC제일은행 노조는 성과임금제와 관련해 “(성과급 연봉제 도입은) 조합원들을 방카슈랑스 상품판매 경쟁으로 내몰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자폭통장은 은행들이 성과에만 집착하다 파생된 부작용의 일부분이다. 이에 금감원은 은행 영업점 실적평가시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상대평가 방식 지양의 뜻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관계자는 “일단 금감원이 칼을 빼들었으니 당분간 실효성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은행들이 성과에 대한 집착이 계속된다면 자폭통장 뿐 아닌 목표달성을 위한 신종 변칙영업이 탄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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