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층 건물 뺏기고 거리로 나앉을 판…”

산업1 / 유상석 / 2012-12-24 12:50:48
도시환경정비사업 재산권 침해 논란

“국가는 개인의 재산을 보호해줘야 할 의무가 있지요. 그런데 오히려 국가가 힘 있는 자의 편에 서서 개인의 재산을 빼앗아 갔습니다. 재개발 사업 시행을 하지 않았다면 아이들 공부 가르치고 잘 살았을 텐데 내 재산 다 뺏기고 거리에 나 앉게 됐어요”


서울 한복판 세종문화회관 뒷길에 있는 서울 종로구 도렴동 구역 24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에 의해 건물이 수용된 이수현(48) 씨는 재산과 생계수단을 한꺼번에 잃어버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서울 중심지 건물주, 한 순간에 길바닥으로
재개발ㆍ재건축을 둘러싼 민원과 갈등은 흔한 일이지만 이 씨의 경우는 전혀 뜻밖이다.


세종문화회관 뒷길에서 서울경찰청 쪽으로 비스듬히 올라가는 길 초입에 위치한 6층 건물이 그의 소유였다. 대지면적 117.6㎡(36.5평)으로 2000년도에 식당사업으로 돈을 벌어 이 건물을 매입했다. 월 임대수입 3500만원 정도를 올려 부채 원리금과 세금 관리비 등을 빼고 약 1500만원 정도의 순 수익이 남아 자녀 둘을 호주에 유학 보내고 월 700만~800만원의 학비와 체재비를 송금할 수 있었다.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 씨 가족의 행복은 2008년 도렴지구 정비사업이 시작되면서 불행으로 바뀌었다. 도심재개발 지정을 받으면 대개는 땅 값이 올라 보상금으로 한몫 챙기는 케이스가 많은데 이 씨의 경우는 정 반대였다.


이 씨는 “시행사가 이 일대 토지를 매입하면서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을 제시해 수용에 응하지 않았더니 39억원 남짓 공탁금을 걸어 강제수용 할 수밖에 없었다”며 “공탁금을 은행과 채권자들이 찾아가고 나니 가게 하나 얻을 수도 없게 됐다”고 발을 굴렀다.


재개발이 없었으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상위 1% 부자로 잘 살았을, 서울 최고 중심지에 빌딩을 가진 가정이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하루아침에 빈민층으로 전락하게 된 셈이다. 자녀들은 지난해 말에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중도 귀국했다.


“용산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아요. 개인재산을 도정법이라는 이상한 법에 의해 아무런 저항도 못해보고 뺏기다니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요. 사유재산을 이렇게 짓밟는 나라가 자본주의 국가 맞나요?”


◇ 계속되는 ‘도정법’ 분쟁… 재산권 침해 논란
이 씨의 경우는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일명 ‘도정법’)으로 인한 대표적 피해 사례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이 사건을 접한 도정법 관련소송 전문가는 “아마 시세가 70억원대 이상일 것으로 보이는데 한순간에 30억~40억이 날아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도정법은 도심재개발을 촉진시키고 난개발을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제정된 법인데 2007년 이전에는 대상 지역 전체 주민 5분의 4(80%) 이상이 동의해야 지구지정을 받을 수 있었다. 이를 2009년 2월부터는 소유자의 4분의 3이나 대상면적 2분의 1만 동의를 확보하면 나머지 땅은 강제 수용할 수 있도록 완화했다.


도시환경정비사업에서 피하려 몸부림쳐도 빠져나갈 도리가 없다. 이런 점을 이용해 시행업자들은 수용에 응하지 않는 토지주 일부를 코너로 몰아 헐값에 수용하기가 수월해졌다. 이 과정에서 많은 분쟁이 발생하고 온갖 추문이 새어나오기 일쑤였다.


종로구 중학동 지구 정비사업 때도 최대 토지지분을 갖고 있던 최 모(86)씨의 경우도 번듯한 4층짜리 건물과 땅을 시세의 절반도 안 되는 3.3㎡당 4000만원에 공탁을 건 시공사에 의해 강제 수용돼 사라졌다. 그는 “대한민국이 무법천지”라고 원망하며 힘겨운 법정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청진동 지구에서도 비슷한 분쟁이 발생해 위헌심판 청구 소송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이 씨도 서울행정법원에 ‘토지수용재결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해 놓았으나, 사업권을 시행사로부터 인수한 시공사 측은 추가 보상요구를 거부했다. 법대로 했으니 더 줄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 씨 소유 토지는 기부채납할 공원부지로 지정돼 있는데 이 씨는 소장에서 “시행사가 종로구청과 기부채납 약정을 한 부분은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어서 강제수용은 취소되어야 하며 어떤 법적근거에 의해 기부채납의 대상이 됐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씨는 자신의 땅이 공원녹지로 지정돼 제값을 못 받게 됐다고 억울해 하고 있다.


관할 종로구청은 “이미 다 끝난 얘기이다. 건물주가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기를 여러 차례 실기했다. 녹지 지정은 도렴동에서는 마땅히 지정할 곳이 없어 그 곳이 선정된 것”이라며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보상을 둘러싼 분쟁에 대해서도 당사자 간에 해결해야 할 사항으로 구청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편 도심 정비사업이 개인의 행복추구권과 재산권을 침해하고, 환경정비라는 미명 하에 종로구 일대에 남아있던 전통 한옥 건축물과 오래된 골목길을 마구잡이로 헐어내는 ‘전통파괴’ 현상을 빚고 있어 도심 재개발 사업 정책 추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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