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의 계약 실적이 역대 최악 수준인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우려됐던 역마진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정부 당국은 보험사의 건전성 문제를 거론하면서 자본 확충과 투자 다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높은 사업비 부담과 수익에 따르는 확신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여전히 적극적인 투자를 망설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보험사들이 새로운 포트폴리오 구상보다는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해 1~9월중 보험 신계약 건수는 7092만1490건으로 자료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5년 이후 최저 수치를 기록했다. 업계는 경기 불황으로 고객들이 보험가입을 꺼려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특히 가계부채가 불어나면서 보험 해약은 물론 가입 자체를 망설이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보험 신계약은 2007~2009년에도 평균 1억건을 유지해왔지만 최근 3년간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보유계약 건수도 작년보단 1.8% 증가했지만 2008~2009년과 비교하면 확연한 하락세다.
신계약이 줄면 보험사 수익이 줄어드는 만큼 보험사 경영에 타격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업계가 우려하는 더 큰 문제는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우려됐던 역마진 현실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고 있다는 점이다.
생·손보사를 막론하고 2012회계연도 1분기(4~6월) 운용자산 이익률이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15개 손보사들의 이 기간 평균 자산운용 이익률은 4.43%로 2001년 통계작성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신계약 감소 등 보험사의 수익이 줄고 있는 가운데 자산운용도 여의치 않아 역마진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며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 운용자산 이익률이 3%대로 떨어지는 보험사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 금융당국 “보험사 대비 충분치 못해”
보험연구원은 시중금리가 1%포인트 넘게 떨어진다면 국내 생보사와 중소형 손보사는 오는 2015년부터 당기손실이 발생한다고 추정해 보험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딱히 방도가 없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보험은 장기상품이기 때문에 자산운용이 중요한데 주요 투자원인 국고채 금리가 계속 하락하다보니 돈을 운용할 데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보험사들은 유가증권 외에 돈을 굴릴 만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는 중소형 보험사이 자칫 도산할 수 있을 만큼 심각한 문제”라며 “대형사들은 새로운 투자처 발굴·사업 다각화 등 리스크를 관리할 만한 여력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중소형사들은 현실적으로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보험업계는 저금리·저성장 위험에 충분한 대비가 아직 돼 있지 못하다”며 보험사들의 경영행태를 ‘절벽을 향해 달리는 기차’에 비유하며 지적하기도 했다. 보험사들이 몸집불리기에 주력한 나머지 고금리 상품 등 저축성보험 판매에 집중한 것이 저금리 시대를 맞아 부메랑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저금리·저성장’ 위험에 가장 크게 노출된 보험업계에 금융당국은 증자(자본금 확충)를 주문하고 있다. 자산운용 수익률 하락 탓에 내년부터 역마진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진 데다 건전성 규제가 차츰 강화되는 만큼 미리 대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위험기준 자기자본(RBC) 비율이 낮은 보험사들을 상대로 증자를 권고했다. RBC 비율은 은행으로 치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과 비슷한 보험사의 건전성 지표다. 이 비율이 낮으면 보험금 지급 능력이 떨어지는 보험사다. 100%를 밑돌면 당국의 적기시정조치(부실 우려에 따른 정상화 요구)를 받는다.
금감원은 보험사들이 증자로 추가 자본을 투입해 RBC 비율을 200% 이상으로 맞추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이 ‘RBC 비율 200%’를 제시한 이유는 이 수치가 방카슈랑스의 최저 수준이기 때문이다. 보험사의 RBC 비율이 200%는 넘어야 해당 회사의 상품을 은행 고객에게 안심하고 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RBC 비율 200% 기준을 맞추지 못한 보험사는 대부분 손해보험사 일부 대형사의 RBC 비율도 200%에 다소 못 미친다. 금감원은 12월 말 RBC 비율을 점검해 수치가 더 낮아지면 경영진단에 착수해 해당 보험사에 증자를 압박할 방침이다.
생명보험사들도 금감원의 권고에 맞춰 속속 증자를 단행하고 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여러 경로로 보험사들에 증자를 권하고 있다”며 “당장 쓰러질 정도는 아니더라도 보험사 대주주가 할 수 있는 것은 미리 해놔야 한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 보험사들 “제도 개선 좀 해 주세요”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보험사들은 자산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거둬들인 돈을 굴려 수익을 내야하는 보험사 입장에서는 단순한 고민을 넘어서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이에 금감원은 상대적으로 RBC 비율이 안전한 대형 생·손보사에 대해선 자산운용의 다변화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 국채 위주의 투자로는 적자를 면키 어려운 시대가 왔다는 판단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수익성과 안전성만 괜찮다면 자산운용의 계열사 위탁을 ‘계열사 몰아주기’로만 볼 일은 아니다”며 “지나친 위험 투자는 지양하되 우리 국채보다 수익성이 좋은 브릭스(BRICs) 등의 국채 투자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보험사들 역시 자구책으로 부동산,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등에 나서고 있지만 높은 투자비용 대비 수익률이 기존 유가증권에 비해 특별나게 높은 것은 아니어서 중소형사에게는 여전히 높은 장벽이다. 게다가 현행 보험업법에서 보험사의 부동산 투자를 제한하고 있어 업계에선 투자를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방카슈랑스 비중이 높은 보험사들을 비롯한 보험업계에서는 “보장성보험을 높이기 위한 보험사들의 자구책을 계속되고 있으나 방카슈랑스 비율 제한 때문에 이도 여의치 않다”며 “설계사 채널의 확대는 높은 사업비 부담에 효과도 시간이 지나야 나타나는 만큼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는 요구도 나온다.
이와 관련, 이석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축성보험 위주로 편향된 성장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현행 방카슈랑스 제도의 보장성보험 판매규제를 폐지하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형생보사들을 비롯해 반대의 목소리도 크다. 자칫 불완전판매율이 높아질 수도 있으며, 설계사들의 경쟁력 약화로 보험업계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험사들이 새로운 투자처 발굴에도 소극적라는 지적도 있다. 이 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신재생에너지산업 등 친환경사업 등은 금융시장에 덜 민감해 장기간 안정된 수익을 창출하는 새로운 투자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보험사들은 높은 사업비 부담과 수익에 따르는 확신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여전히 적극적인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보험사들은 여전히 “과거 판매한 고금리 상품의 만기 시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는 형국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새로운 포트폴리오 구상보다는 버티기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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