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주유소, 벼랑 끝까지 몰리다

산업1 / 유상석 / 2012-09-14 12:56:21
‘알뜰’하다더니… 비싼 가격에 소비자 ‘외면’

서울 시흥동에 거주하는 황동용(35ㆍ자영업) 씨는 주유를 하기 위해 자택 인근 주유소를 찾았으나, 영업 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을 보고 차머리를 돌려야만 했다. 황 씨가 찾은 주유소는 서울지역 1호 알뜰주유소인 금천구 시흥동 ‘형제주유소’. 이 주유소는 지정 6개월 만에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황 씨는 “알뜰주유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영업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인근 타 주유소에 비해 그다지 저렴하다는 느낌을 못 받았다”며 “이 때문에 상당수 운전자들에게서 외면 받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형제주유소’의 폐업에 대해 업계에서는 “정부가 재무상태가 부실한 사업주에게 알뜰주유소 전환한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와 한국석유공사의 알뜰주유소 심사 과정이 허점투성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 임기응변으로 부실하게 설계한 정책이 결국 탈이 나고 만 것이다.


◇ 알뜰 주유소, 몰락 이유는…
지식경제부는 서울지역 최초의 알뜰주유소로 선정된 형제주유소가 매각을 위해 11일부로 영업을 정지했다고 밝혔다. 형제주유소가 문을 닫게 된 원인으로는 영업환경의 악화, 사업주의 부실한 자금력 등이 꼽힌다.


영업환경이 악화된 이유는 ‘비싼 공급가’ 때문이다. 정부는 기존 주유소가 알뜰주유소로 전환하면 석유공사를 통해 기름을 싼값에 공급하고, 세제 혜택 등을 부여해 기름 값을 시중 주유소보다 ℓ당 100원가량 싸게 팔도록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주변 주유소와 알뜰주유소의 휘발유 판매 가격이 비슷해졌다. 오히려 주변보다 비싼 알뜰주유소도 등장했다.


알뜰주유소를 운영하는 한 업주는 “석유공사의 공급단가는 높아졌고 주변 주유소는 정유사의 각종 지원으로 공급가가 낮아졌다”면서 “이로 인해 알뜰주유소 휘발유 판매가가 주변 주유소보다 비싼 곳이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알뜰주유소 전환 당시 공급물량을 석유공사에서 50%, 기타 물량 50%로 하기로 한 계약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비싸서 팔지도 못할 기름을 사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형제주유소는 영업 초기에 주변 주유소보다 ℓ당 106원 싸게 휘발유를 팔면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지난 8월에는 인근의 주유소와 거의 비슷하거나 ℓ당 10원 정도 낮은 수준에 불과했다. 정유사 브랜드 주유소가 ℓ당 최대 50~100원에 달하는 적립ㆍ할인 카드 혜택을 제공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쟁 주유소보다 오히려 기름 값이 더 비쌌던 셈이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싼값으로 휘발유를 공급해야 한다”면서 “앞으로 문을 닫거나 자가폴(특정한 업체와 전속 공급계약을 맺지 않은 주유소)로 전환하는 알뜰주유소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석유공사에 기름을 공급하는 정유사들이 폴사인 주유소(기존 정유사 브랜드 주유소)의 반발을 고려해 알뜰주유소 공급가를 낮추는 데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사업주의 부실한 재정상태는 설상가상 격으로 이 주유소의 폐업을 부채질했다. 지경부의 한 관계자는 “앞서 주인이 주유소를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가 이를 갚지 못해 채무처리를 위해 은행과 상의 끝에 주유소를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대출 규모는 개인정보여서 공개하지 않았다.


◇ 재무현황 파악 않은 ‘막무가내 지원’
문제는 지경부와 석유공사가 정부 지원이 나가는 알뜰주유소 신청을 받으면서 사업자의 재무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알뜰주유소 신청서에는 휘발유ㆍ경유 등 석유 저장용량, 월 판매량, 현재 공급 정유사 같은 매우 기초적인 사항만 적게 돼 있다.


현재 지경부는 알뜰주유소로 전환하는 주유소에 대해 정부 예산으로 최대 3,000만원 한도에서 시설비(전환에 따른 간판교체 등)로 필요자금의 90%를 무상지원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는 신용등급에 따라 최근 1년 또는 당기매출액의 최대 3분의1까지 신용보증기금에서 보증을 해 운전자금을 지원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주어졌다. 일반 주유소는 6분의1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알뜰주유소 전환사업자의 기초적인 부채현황조차 파악하지 않아 왔다. 부채가 많으면 도산위험이 높고 이자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에 정부 지원시 일반 업자보다 조건을 까다롭게 해야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는 임대사업자도 마찬가지다. 자가 주유소가 아닌 임대로 주유소를 하는 업자들은 임대료 때문에 매출을 더 올려야 한다. 하지만 지경부는 임대사업자나 자가사업자 구분 없이 동일한 기준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형제주유소처럼 도중에 문을 닫는 곳에 대한 지원금 회수에도 구멍이 뚫려 있다. 정부는 1년 영업을 조건으로 알뜰주유소 전환시 3,000만원까지 지원해준다. 내부기준으로는 문제가 생기면 이를 돌려받는다고 돼 있지만 문제는 부채가 많을 경우다.


지원금에 저당권을 설정해놓지 않을 경우 사업자가 은행 빚을 다 갚고 나면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 없는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대대적으로 빚잔치를 하고 나면 국민의 세금을 돌려받을 길이 없다는 얘기다. 지경부 관계자는 “현재 지원금에 저당권설정 등을 하지는 않고 있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기름값을 잡는다며 알뜰주유소를 무작정 늘리는 데에만 신경썼지 전환사업자 심사에는 소홀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경부는 올해 말까지 알뜰주유소를 1,000개까지 늘릴 방침이다.


◇ “알뜰주유소로 유가 안정?” 의문 제기도
알뜰주유소 1호점의 폐업으로 인해 일각에서는 “알뜰주유소가 과연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유가 안정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물론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부가 나서서 석유공사를 통해 공동구매하는 방식으로 휘발유를 저렴하게 조달해 알뜰주유소에 공급하는 방식을 통해 일반주유소에 비해 판매가격을 낮출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 차이는 ℓ당 몇 십원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그 효과를 거의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아예 차이가 없는 곳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계획한 대로 석유공사의 휘발유 직접수입 물량을 늘린다 하더라도 알뜰주유소와 일반주유소 사이의 휘발유 가격 차이를 크게 벌리지는 못할 것이다. 게다가 장기적으로 볼 때 정부가 지원하는 알뜰주유소가 휘발유 시장의 효율성을 높인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부가 소수 휘발유 공급업체들의 과점행위를 감시하고 규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기업을 통해 직접 시장에 뛰어들어 공급자 역할을 하는 데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고, 결국은 국민의 세금부담으로 귀착된다. 알뜰주유소 정책이 이런 비용을 넘어서는 경제적 성과를 내주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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