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대 금융지주의 은행 중심 성장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토요경제] |
5대 금융지주의 은행 중심 성장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규제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이 대출 문턱을 높이는 가운데 금융지주들은 자산관리(WM), 기업금융, 지역금융, 비은행 부문으로 수익원을 돌리고 있다. 하반기 금융권 경쟁은 대출을 얼마나 늘리느냐보다 대출 없이 어떻게 성장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올해 설정한 관리대상 가계대출 증가율은 1.5%다. 지난해 실적 1.7%보다 낮다. 5대 은행의 정책성 대출 제외 연간 가계대출 증가 목표는 4조3363억원이다. 그러나 7월 말 증가액은 6조3821억원으로 이미 목표를 넘어섰다. 금융위원회가 대출 총량 억제 기조를 유지하는 한 하반기 은행들의 공격적인 가계대출 확대는 어렵다.
은행들은 이미 대출 물량을 줄이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수도권과 규제지역 주택구입자금 대출 한도를 6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췄고 비대면 주담대 금리도 올렸다. 우리은행은 주담대와 전세대출의 영업점별 월 취급 한도를 30억원에서 10억원으로 줄이고 모기지보험 신규 가입을 중단했다. 하나은행은 비대면 주담대 신규 취급을 중단한 데 이어 12일부터 변동금리 주담대 신규 접수를 대면·비대면 모두 제한한다. 마이너스통장 한도도 11일부터 5000만원으로 낮춘다. NH농협은행도 변동금리 주담대 일부와 모기지보험 취급을 제한해왔다.
총량규제의 목적은 부동산으로 흘러가는 은행 자금을 줄이고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낮추는 데 있다. 문제는 실수요 대출까지 막힐 수 있다는 점이다. 대출 종류와 관계없이 총량을 맞추다 보면 이미 분양계약을 체결한 입주자의 잔금대출이나 재건축·재개발 이주비 대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금융위가 하반기 잔금대출과 이주비 대출 수요 등을 반영해 은행별 가계대출 관리 목표를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은행별 목표를 늘릴지, 실수요 대출에 별도 여력을 줄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금융위는 집단대출을 총량규제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총량은 조이되 대출 성격은 구분하는 방식으로 관리 기조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
가계대출이 막히자 금융지주의 전략도 달라지고 있다. 신한금융은 이날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고객 약 1000명을 대상으로 그룹 첫 통합 WM 포럼을 오는 31일 연다고 밝혔다. 은행과 증권뿐 아니라 카드·라이프·자산운용까지 함께 참여한다. 고액자산가의 금융자산을 그룹 안에 묶어두고 수수료와 자산관리 수익을 키우려는 전략이다.
NH농협금융은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연초 경영계획을 다시 검증하는 경영계획 재점검 체계를 도입했다. 은행의 핵심 수익기반, 비은행 부문의 시장 대응, 보험사 건전성, 그룹 여유자금 운용을 함께 들여다보기로 했다. 자회사별 자본을 그룹 차원에서 배분하는 ‘One-Firm’ 전략도 추진한다. 은행 대출 확대보다 그룹 전체 자본수익률을 관리하는 쪽으로 무게가 이동한 것이다.
KB금융이 공개한 지역상권 분석도 같은 흐름이다. 올해 3월 기준 점포당 월평균 매출은 서울 4890만원, 수도권 2452만원, 비수도권 1751만원이었다. 방문객 수도 서울 116.6명, 비수도권 31.6명으로 격차가 컸다. 정부가 금융회사에 수도권 부동산보다 지방·중소기업·소상공인으로 자금을 돌리는 생산적 금융을 주문하는 상황에서, 지역경제의 자금 흡수력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하나은행은 금융사기 차단 역량을 전면에 세웠다. 하나은행은 자체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FDS)을 활용해 신종 투자사기 ‘KReSIM’ 관련 거래 1450건, 약 185억원의 고객 피해를 사전에 막았다고 밝혔다. 금융회사의 경쟁력이 대출금리뿐 아니라 고객자산 보호 능력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금융은 비은행 확대와 자본효율 개선이 더 중요해졌다. 우리은행은 주택 관련 대출 한도를 영업점별 월 10억원까지 낮춘 상태다. 우리금융은 올해 상반기 실적 발표에서 하반기 1500억원의 추가 자사주 매입·소각을 결정해 연간 규모를 3500억원으로 확대했다. 대출자산을 늘리는 것보다 제한된 자본을 비은행 성장과 주주환원에 어떻게 배분할지가 더 중요한 과제가 됐다.
금융지주를 둘러싼 또 다른 변수는 지배구조다. 금융위는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을 한 차례로 제한해 3연임을 금지하고, 회장 후보를 추천하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독립이사 중심으로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그러나 당정 이견으로 발표 일정은 밀리고 있다. 연임 횟수를 법으로 제한하는 대신 연임할수록 주주총회 찬성 요건을 높이는 방안도 거론된다.
KB금융은 차기 회장 선임 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지배구조 개편 방향의 영향을 직접 받을 수 있다. 정부가 금융지주의 대출 방향뿐 아니라 최고경영자 선임 구조까지 손질하면 금융지주는 영업전략과 경영구조를 동시에 바꿔야 한다.
올해 상반기까지 5대 금융지주 경쟁의 핵심은 순이익과 자기자본이익률(ROE), 주주환원이었다. 하반기에는 기준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가계대출을 많이 늘리는 은행보다 가계대출을 억제하면서도 기업금융, WM, 비은행에서 수익을 보완하는 금융지주의 경쟁력이 중요해진다. 부실과 금융사기를 통제하면서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능력도 평가 대상이 된다.
정부도 딜레마를 안고 있다. 부동산으로 향하는 대출은 막아야 하지만 실수요자의 자금줄까지 끊어서는 안 된다. 은행에 생산적 금융을 요구하려면 돈을 받을 기업과 지역경제의 수익성도 뒷받침돼야 한다. 서울과 지방 상권의 매출 격차는 금융회사에 자금의 방향만 바꾸라고 요구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5대 금융지주에는 더 어려운 숙제가 남았다. 가장 익숙하고 수익성 높은 성장 엔진인 가계대출의 속도는 낮추면서 전체 이익과 주주환원은 유지해야 한다. 신한의 WM, 농협의 자본 재배분, KB의 지역금융 데이터, 하나의 금융사기 방어, 우리금융의 비은행·자본효율 전략은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한다. 대출을 얼마나 늘렸느냐가 아니라 대출 없이 어떻게 성장하느냐가 하반기 5대 금융지주의 새 경쟁이 되고 있다.
토요경제 / 위아람 기자 moon@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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