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진짜 실적은 '5년 장기공급계약(LTA)'

산업 / 양지욱 / 2026-07-29 14:41:09
빅테크 등 10여곳과 장기공급계약…영업익 60조·순현금 69조, AI 메모리 ‘공급자 우위’ 굳혀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메모리 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 글로벌 빅테크를 포함한 10여개 고객사가 5년 단위 장기공급계약으로 물량 확보에 나섰다. 고객이 가격 하락을 기다리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예치금까지 걸고 생산능력을 선점하는 시장으로 바뀐 것이다. 2분기 영업이익 60조원은 이 같은 공급자 우위가 실적으로 나타난 결과다.

29일 SK하이닉스가 발표한 2분기 연결 매출은 79조3187억원, 영업이익은 60조5426억원이다. 전년 동기보다 매출은 256.8%, 영업이익은 557.2% 증가했다. 전분기와 비교해도 각각 50.9%, 61.0% 늘었다. 영업이익률은 76.3%로 1분기보다 4%포인트가량 높아졌다. 매출 100원 가운데 76원이 영업이익으로 남은 셈이다. 

토요경제 기업재무분석실이 실적자료와 경영설명회 내용을 분석한 결과, 이익 급증은 출하량보다 가격과 제품 구성의 영향이 컸다. 2분기 D램 평균판매가격은 전분기보다 약 30%, 낸드는 50%대 중반 상승했다.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매출은 두 배 이상 늘었고, 자회사 솔리다임의 30테라바이트 이상 고용량 eSSD 매출은 세 배 넘게 증가했다. HBM과 AI 서버용 D램, 고용량 eSSD가 가격과 이익을 함께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번 실적의 진짜 변화는 가격표보다 계약서에 있다. SK하이닉스는 핵심 고객을 포함한 10여곳과 장기공급계약(LTA) 협상을 마쳤다. 계약 기간은 통상 5년이다. 고객은 중장기 물량을 구매하겠다고 약정하고, 일부 계약에는 예치금 등 이행력을 높이는 장치도 들어간다. 가격도 단순 고정가격이 아니라 시장 변동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과거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는 고객이 필요할 때 물량을 주문하고 가격 하락기에는 재고를 줄였다. 공급사는 수요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공장을 늘렸다가 공급 과잉과 가격 폭락을 반복했다. 다년 계약은 이 구조를 바꾼다. SK하이닉스는 고객이 약속한 수요를 토대로 생산과 투자를 결정할 수 있고, 고객은 부족한 첨단 메모리를 장기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AI 메모리 시장의 공급자 우위가 구조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고객들이 장기계약을 요구하는 것은 당장 필요한 물량뿐 아니라 향후 공급 부족까지 걱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SK하이닉스도 확보된 수요를 토대로 생산능력을 단계적으로 늘리기 때문에 투자 확대가 곧바로 공급 과잉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현금은 투자 속도를 뒷받침한다. 2분기 말 현금성 자산은 88조원으로 석 달 동안 33조6000억원 늘었다. 차입금은 7000억원 줄어든 18조6000억원이었다. 순현금은 69조4000억원으로, 전분기 말 약 35조1000억원의 두 배 가까이로 불어났다. 현금성 자산은 차입금의 약 4.7배다.

SK하이닉스는 이 자금을 무작정 설비 증설에 쏟지는 않겠다고 했다. 청주 M15X의 양산 일정을 앞당기고, 2027년 초 문을 여는 용인 1기 팹의 생산능력을 신속하게 확대할 계획이다. 첨단 패키징 공장 P&T7과 낸드 생산기지 M17 등은 고객 수요와 투자 효율을 따져 단계적으로 집행한다.

제품 세대교체도 시작됐다. SK하이닉스는 2분기부터 HBM4 양산 출하를 시작했다. 하반기에는 생산량을 본격적으로 늘린다. 회사는 HBM4의 양산 수율과 품질이 이미 전 세대인 HBM3E에 근접했다고 밝혔다. HBM4E도 고객사에 샘플 공급을 마쳤으며 2027년 본격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5년 장기계약이 향후 매출을 모두 확정했다는 뜻은 아니다. 회사는 전체 판매에서 장기계약이 차지하는 비중과 고객별 계약 물량을 공개하지 않았다. 제품과 고객에 따라 계약 기간과 가격 조건도 달라진다. 메모리 가격의 등락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고객이 구매 약정과 예치금까지 걸고 장기간 물량을 확보하는 변화는 분명하다. SK하이닉스가 단기 가격 상승에 기대어 이익을 내는 회사를 넘어, 고객 주문을 먼저 확보하고 공장 투자를 결정하는 회사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피크아웃’ 논쟁에 대한 답은 60조원의 영업이익보다 5년짜리 계약서에 있다.

토요경제 /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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