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에 교역조건 38년 만 최대

산업 / 위아람 기자 / 2026-09-15 11:26:24
순상품교역조건 27.1% 상승…1988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
반도체 가격·수출물량 동반 증가…소득교역조건 60% 급등
원화 강세는 별도 효과…고유가에도 수입물가 2.4% 하락
▲ 한국은행[연합뉴스]

반도체 호황이 한국의 교역조건을 38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끌어올렸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가격과 물량이 동시에 늘면서 한국의 대외 구매력이 크게 높아졌다. 원화 강세는 교역조건 개선과는 별도로 국제유가 상승이 국내 수입물가로 번지는 충격을 줄였다.


1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6년 8월 수출입물가지수 및 무역지수’에 따르면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119.90으로 전년 동월보다 27.1% 상승했다. 1988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 상승률이다. 지수 수준도 2007년 4월 이후 19년4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순상품교역조건은 수출품 한 단위를 팔아 수입품을 얼마나 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지난달 수출가격은 전년 동월보다 39.6% 오른 반면 수입가격은 9.9% 상승하는 데 그쳤다.

교역조건 개선을 이끈 것은 반도체다. 메모리 가격 상승으로 수출가격이 크게 뛰었고 수출물량도 25.9% 증가했다. 컴퓨터 기억장치와 이동전화기 등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가 증가세를 주도했다.

가격과 물량이 함께 늘면서 소득교역조건지수는 184.02로 전년 동월보다 60.0% 급등했다. 수출로 벌어들인 돈으로 살 수 있는 수입품의 양이 크게 늘었다는 뜻이다. 상승률 역시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았다.

여기까지가 반도체 효과다.

환율은 다른 경로로 작용했다. 원화 강세가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수입가격 부담을 낮췄다.

8월 두바이유 평균가격은 배럴당 88.75달러로 전월보다 15.6% 상승했다. 반면 원·달러 평균환율은 1497.43원에서 1406.30원으로 6.1% 하락했다.

달러로 표시된 원유 가격은 올랐지만 원화 가치가 강해지면서 국내 기업이 실제 부담하는 원화 기준 수입물가는 전월보다 2.4% 떨어졌다. 수입물가는 3개월 연속 하락했다.

이 효과는 원재료 수입 비중이 높은 산업에 우호적이다. 원유와 원자재를 해외에서 들여오는 정유·화학·항공업체 등은 환율 하락으로 원화 기준 구매 부담을 일부 덜 수 있다. 수입물가 하락이 이어지면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에도 시차를 두고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대로 원화 강세는 수출기업에는 부담이다.

8월 원화 기준 수출물가는 전월보다 3.7% 하락했다.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는 3.1%, 운송장비는 5.4%, 화학제품은 5.3% 떨어졌다.

하지만 환율 효과를 제외한 계약통화 기준 수출물가는 2.2% 상승했다. 해외 판매가격 자체가 떨어진 것이 아니라 달러 등 외화 매출을 원화로 바꾸는 과정에서 환산가격이 낮아졌다는 의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두 흐름이 동시에 작용한다. 반도체 가격과 출하량 증가는 실적에 긍정적이지만 원화 강세가 이어지면 달러 매출을 원화로 환산할 때 이익 증가폭이 줄어들 수 있다.

이번 지표는 두 가지로 나눠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교역조건을 끌어올린 핵심은 반도체 가격과 수출물량의 증가다. 원화 강세는 교역조건 개선의 주된 원인이라기보다 고유가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 압력을 낮춘 별도의 완충장치로 작용했다.

향후에도 반도체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한국의 대외 구매력 개선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 국내 물가와 기업별 손익에는 국제유가와 환율의 방향이 별도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토요경제 / 위아람 기자 moon@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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