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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D한국조선해양이 ‘프레이저 인더스트리와 ‘미국 조선산업 부흥을 위한 조선소 현대화 협력 관련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왼쪽부터 HD한국조선해양 김형관 대표, 프레이저 인더스트리 패트릭 켈리 대표 [HD현대 제공] |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138년간 운영된 프레이저 조선소가 HD현대의 설계·자동화·인공지능(AI) 기술을 도입한다. 미국이 자국 조선업 재건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HD현대가 완성 선박을 넘어 선박을 만드는 생산체계까지 수출하는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프레이저 인더스트리는 지난 27일 미국 현지에서 HD한국조선해양과 조선소 현대화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HD현대는 사흘 뒤인 30일 이를 국내에 공개했다.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협약식에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참석했다. 민간 조선소 한 곳의 설비 개선을 넘어 한미 조선 협력사업의 하나로 추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조선업 전문매체 워크보트(WorkBoat)는 프레이저가 보유한 슈피리어 사업장 100에이커 가운데 현재 사용하는 면적이 약 15에이커에 불과해 생산시설을 확대할 여지가 크다고 보도했다. 상시 고용 인원은 약 200명이지만 오대호 선박의 겨울철 수리 기간에는 약 600명까지 늘어난다. 프레이저는 2023년부터 2025년 사이 선박 인도량을 두 배로 늘렸으며 2026년과 2027년에도 다시 두 배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패트릭 켈리 프레이저 인더스트리 최고경영자(CEO)는 "워크보트에 미국 조선업이 한국 조선사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며 "기존 기술을 단계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최신 생산기술로 곧바로 도약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지 조선소가 HD현대를 선택한 배경이 단순한 설비 공급보다 생산성 격차 해소에 있다는 의미다.
협약에 따라 HD한국조선해양은 슈피리어호 연안의 프레이저 조선소를 진단한 뒤 야드와 공장 배치를 다시 설계한다. 로봇·자동화 설비와 AI·데이터 기반 공정관리 시스템도 적용한다. 비용과 공정, 품질, 생산성 개선뿐 아니라 공급망 확대와 기술인력 양성까지 협력 범위에 포함됐다.
양사는 올해 안에 ‘조선소 현대화 컨설팅 프로그램’ 공급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프레이저 조선소를 미국 조선산업 재건을 위한 실증 모델로 만든 뒤 다른 현지 조선소로 적용 범위를 넓힌다는 구상이다.
이번 사업은 HD한국조선해양이 지난 3월 정관에 ‘디지털 엔지니어링·매뉴팩처링 플랫폼 개발 및 공급업’을 추가한 이후 실제 프로젝트로 연결한 첫 사례다. 조선소 설계와 건설, 생산·운영 시스템, 데이터 관리기법을 하나의 패키지로 공급하는 ‘조선소 건설 종합 솔루션’이 독립적인 사업으로 출발한 것이다.
미국 조선산업의 현실도 HD현대에는 기회다. 미국 정부가 지난 2월 발표한 해양산업 재건계획에 따르면 미국 조선소는 모두 66곳이지만 실제 선박을 활발히 건조하는 조선소는 8곳에 그친다. 미국 정부는 낡은 시설과 낮은 생산능력을 개선하기 위해 조선소 현대화와 자동화, 동맹국 투자, 공급망 복원과 인력 양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미국의 보호주의도 이번 사업에는 진입장벽보다 수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존스법은 미국 내 항구 사이에서 화물을 운송하는 선박에 미국 건조·미국 소유 등의 요건을 적용한다. 한국에서 건조한 선박을 미국 연안운송 시장에 직접 판매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의 기술을 적용한 미국 조선소에서 선박을 생산하는 방식은 미국의 현지 건조 원칙과 양립할 수 있다.
HD현대의 미국 진출 방식은 현지 조선소를 직접 인수하는 방식과도 다르다. 한화그룹이 필리조선소를 인수해 미국 내 생산거점을 직접 확보했다면 HD현대는 기존 조선소에 설계와 자동화, 디지털 플랫폼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대규모 인수자금을 투입하지 않고도 여러 조선소에 같은 솔루션을 반복해 공급할 수 있는 플랫폼형 사업에 가깝다.
기술 수출을 뒷받침할 실적도 쌓이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 29일 발표한 올해 2분기 잠정실적에서 매출 8조9270억원, 영업이익 1조6451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각각 20.2%, 72.5% 증가한 분기 기준 최대 실적이다. 회사는 생산성 향상과 고선가 선박 비중 확대를 수익성 개선의 주요 배경으로 제시했다. 국내 조선소에서 이익으로 검증한 생산방식을 미국에 판매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셈이다.
아직 MOU 단계인 만큼 실제 계약금액과 자동화 설비 공급 범위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프레이저 조선소에서 공기 단축과 건조량 확대, 원가 절감 효과가 수치로 확인되면 HD현대는 미국 내 다른 상선·함정·수리조선소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
미국 조선업 재건은 한국 조선사에 경쟁자를 키우는 사업만은 아니다. 미국이 현지에서 더 많은 배를 만들려 할수록 조선소를 설계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기술 수요도 커진다. 프레이저 프로젝트는 HD현대가 세계 최대 선박 건조회사에서 세계 조선소의 생산체계를 공급하는 회사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첫 시험대다.
토요경제 /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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