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경제=유상석 기자] 도심 속 철도 부지나 유수지 등 공공용지를 개발해 임대주택을 짓는 ‘행복주택’ 사업이 ‘반대’라는 암초에 부딪혔다.
박근혜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이 사업과 관련, 시범지역 주민들이 “지역 여건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집단 반발하고 나섰다.
해당 주민들은 “지금도 인구 과잉에 따른 교통 정체, 학급 과밀화 등의 문제로 불편을 겪고 있는데, 기반 시설의 확충 없이 행복주택이 들어서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우리 동네에 행복주택 절대 안 돼”
지난 3일 서울시와 자치구들에 따르면 양천ㆍ노원구 등 ‘행복주택 시범사업’ 대상 지역 주민들은 “국토교통부가 지역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시범 지역을 선정했다”며 집단 반발하고 있다.
행복주택을 반대하는 지자체들은 교통 정체 심화, 인구 및 학급 과밀화 등을 이유로 들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목동 복개 유수지 지역이 시범지구로 지정된 양천구는 가장 반대 여론이 거세다. 양천구는 지난달 30일 국토부 관계자와의 면담에서 절대 불가 입장을 전달하며 사업 재검토를 강력히 요구했다.
양천구 관계자는 “시범 사업 대상지로 지정된 목동 유수지는 여름철 집중호우 때 빗물을 담아서 안양천으로 뿜어내는 역할을 한다”며 “인근 주민의 안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반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공릉동 경춘선 폐선 부지가 시범지구로 지정된 노원구도 강력 반대하고 있다.
경춘선 폐선 부지에 지역 주민을 위한 복합문화시설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주민들의 기대가 컸는데 느닷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시범지구로 지정했다는 게 노원구 측의 설명이다.
노원구는 시범지구 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열람공고 불가 공문을 국토부로 발송하기도 했다.
노원구 관계자는 “정부의 행복주택 시범지구 발표 이후 150명을 상대로 긴급 주민 여론조사를 진행했는데 전원이 반대해 국토부에 수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전달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광운대, 서울여대 등에서 기숙사 건립계획을 수립하고 있어 대학생을 위한 기숙사형 주택 건립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국토부에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경춘선 폐선부지(행복주택 예정지) 인근 주민들은 배신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한 주민은 “행복주택 발표 다음날 구청장과의 간담회에서 주민들이 모두 반대했다”고 전했다. 문화센터나 공원이 들어설 것이라 믿었는데, 그 땅에 정부가 갑자기 행복주택을 짓겠다고 하니 반길 리가 없다는 것.
구로구도 국토부의 면담 요청을 받았지만 주민 의견 수렴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면담을 미룬 상태다.
잠실ㆍ송파지구가 지정된 송파구는 입장 표명에 매우 신중하지만 일부 구민들이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격렬한 반대… 왜?
양천구 주민들이 꾸린 ‘목동행복주택건립반대 주민비상대책위원회’는 3일부터 반대 서명운동도 시작했다. 이들은 △인구과밀 △과밀학급 △교통난 △물난리 △임대주택 포화상태 △계층위화감 증폭 등 행복주택이 목동에 들어서면 안 되는 6가지 이유를 조목조목 나열했다.
신정호 양천구 행복주택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유수지 인근의 인구밀도가 전국 최고 수준”이라면서 “행복주택이 건립되면 교통 정체가 심화하고 학급 과밀화 등의 문제가 더 악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반대 이유도 많다. 초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다는 목동의 한 주민은 “지금도 초등학교 한 반에 37명 수준이고 학기마다 전학생이 들어온다. 대책 없이 추가로 집을 짓겠다는 것은 기존 주민과 새 주민 모두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릉동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주민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공원 부지에 갑자기 집을 짓겠다고 하니 반대할 수밖에 없다”며 “각 대학마다 원룸 천지인데 왜 또 짓는지 모르겠다. 작금의 주택난이 원룸 부족 탓인 줄 아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파와 잠실지구 주민들은 “일조권과 조망권을 다 잃고, 제2롯데월드까지 들어서면 교통량이 폭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오류동은 이번 행복주택 시범사업에 유일하게 긍정적인 여론을 보였다.
오류동은 50년 전만 해도 ‘영등포 다음 오류’라고 할 정도로 번창했었다. 그러나 철도가 동네를 단절시키고, 인근 구로동에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지역 상권은 시들고 말았다.
주민 대부분이 전ㆍ월세난을 겪는 서민인 점도 한몫 했다. 오류동에 거주하는 한 일용직노동자는 “임대주택이 더 많이 들어와야 한다. 내가 1순위로 들어가면 좋겠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 ‘행복주택’ 대안은…
박근혜정부의 ‘행복주택’ 사업이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주민들의 반발에 계속 부딪히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공공 임대 주택 건설 방식이 공급 중심에서 수요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전문가들은 국내 공공 임대 주택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데 입장을 같이 했다. 공공 임대주택 공급율은 현재 전체 주택의 5% 안팎 수준으로 선진국에 견줘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이를 최소 10% 정도까지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대규모 물량을 한꺼번에 공급하는 방식을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대 주택이 한 지역에 수백~수천 가구 규모로 지어질 경우 취약지역화(슬럼화)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양적인 팽창보다는 질적인 향상에 관심을 기울이며 지역 사회와 자연스럽게 섞이게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박근혜정부의 철학 중 사회적 약자의 주거복지 향상은 좋은 정책 방향”이라면서도 “실현 방법이 꼭 행복주택 유형일 필요는 없다. 좋은 정책을 살릴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지역 사회 곳곳에 작은 단위로 임대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대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소규모 공급은 더디고 지난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대안적인 방법일 수 있다”며 “서울시 등이 시도하고 있는데 중앙 정부 차원으로 확장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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