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투자 유도하다 ISA 재검토…단기자금은 급증

증권·자본시장 / 위아람 기자 / 2026-08-08 17:59:08
중복상장 규제 강화·ETF 예탁금 상향…증권사는 거래대금·IB 호황에 2조 이익
▲ [한국증권거래소]

 

8월 첫째 주 자본시장은 정부가 장기투자와 주주보호를 강화하려는 사이, 시장 자금은 단기·고위험 영역으로 빠르게 움직인 한 주였다. 정부는 국내 증시로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생산적금융 ISA’를 내놨지만 기존 ISA 혜택 축소 논란이 커지자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금융위원회는 중복상장 규제를 강화했고, 금융감독원 통계에서는 기업의 주식·회사채 조달 감소와 CP·단기사채 급증이 동시에 확인됐다. 증권사들은 증시 활황을 등에 업고 사상급 실적을 냈다.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세제개편안의 자본시장 핵심은 ‘생산적금융 ISA’였다. 국내 상장주식과 국내 주식형 펀드, 국민성장펀드,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등에 투자하면 이자·배당소득을 전액 비과세하는 구조다. 연간 납입한도는 2000만원, 총한도는 2억원이다. 청년형에는 납입액의 10% 소득공제도 붙였다. 국내 주식시장에 장기 자금을 묶어두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기존 ISA였다. 정부안에는 사용하지 않은 연간 납입한도의 이월을 없애고 계약기간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새 상품에 혜택을 집중하면서 기존 절세계좌의 유연성을 떨어뜨린다는 반발이 커졌다. 8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ISA 개편안과 ‘주가 누르기 방지’ 제도를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장기투자를 유도하겠다는 목표보다 투자자의 선택권을 줄인 설계가 먼저 논란이 된 것이다.

기업 쪽에는 반대 방향의 규제가 들어왔다. 금융위가 마련한 중복상장 개선안이 3일부터 시행됐다. 물적분할 자회사를 상장하려면 모회사 주주 동의가 필요하다. 다른 중복상장도 주주 동의를 받지 않으면 투자자 보호 여부를 엄격하게 심사한다. 모회사 이사회에는 주주 영향평가와 보호방안 마련, 주주 소통·동의 여부 확인, 이사회 결의와 공시 의무가 부과됐다. 금융위가 제시한 방향은 사실상 “중복상장 원칙 금지, 예외 허용”이다.

IPO 시장의 구조도 바뀔 수 있다. 과거에는 유망 사업부를 떼어 자회사로 만든 뒤 다시 상장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 가능했다. 앞으로는 모회사 주주가치 훼손 여부가 상장의 주요 심사 대상이 된다. 기업에는 자금조달 비용과 시간이 늘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쪼개기 상장 할인’을 줄이는 쪽에 무게가 실렸다. 금융위는 한국의 중복상장 비중이 2025년 말 시가총액 기준 11.2%로 미국 0.05%, 일본 4.0%보다 높다고 밝혔다.

금감원 통계는 지수 상승만으로는 볼 수 없는 자본시장의 다른 단면을 보여줬다. 올해 상반기 기업의 주식·회사채 공모 발행액은 126조5754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5.6% 줄었다. 반면 CP와 단기사채 발행은 1272조8483억원으로 68.0% 급증했다. 주식 발행은 2조9786억원으로 29.6% 감소했고, IPO 조달액도 약 1조141억원에 그쳤다. 주가는 크게 올랐지만 기업의 장기 성장자금 공급은 그만큼 늘지 않은 셈이다.

증권사에는 호황의 효과가 강하게 나타났다. 한국투자증권은 상반기 연결 영업이익 2조1701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89.1% 증가한 규모로, 국내 증권사 가운데 처음으로 반기 영업이익 2조원을 넘어섰다. 당기순이익도 1조7311억원에 달했다. 주식 거래대금 증가와 자산관리(WM), 기업금융, 운용 부문이 함께 실적을 끌어올렸다.

회사채 시장에서는 NH투자증권과 KB증권의 경쟁이 치열했다. 7월 공모회사채 대표주관 실적은 NH투자증권이 6822억원, 점유율 23.0%로 1위였다. KB증권은 5961억원, 한국투자증권은 4876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다만 1~7월 누적으로는 KB증권이 7조6953억원으로 NH투자증권의 7조669억원을 앞섰다. 회사채 발행이 차환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대형 딜을 누가 잡느냐가 증권사 IB 순위를 좌우하는 시장이 됐다.

증권사의 역할도 단순 주관에서 자기자본을 활용한 구조화금융으로 넓어지고 있다. 포스코홀딩스는 지난 7일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포스코DX 지분 일부를 매각해 약 2조5000억원을 조달하기로 했다. NH투자증권과 키움증권은 각각 포스코인터내셔널 주식 853만2256주를 약 4727억원에 인수하고 포스코홀딩스와 주가수익스왑(PRS)을 맺는다. 증권사 경쟁이 브로커리지에서 자기자본을 동원한 대형 기업금융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거래다.

IPO 시장에서는 온도 차가 커졌다. 패션 플랫폼 딜리셔스는 기관 수요예측을 거쳐 공모가를 희망범위 상단인 7000원으로 확정했다. 그러나 의무보유확약 신청 비율은 0.1%에 그쳤고, 일반청약 경쟁률도 10.29대 1에 머물렀다. 공모가격을 높게 받는 것과 상장 후 장기 투자자금을 확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이 다시 드러났다. 딜리셔스는 오는 12일 코스닥 상장을 예정하고 있다.

ETF 시장도 규제권으로 들어왔다. 금융위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ETN의 개인투자자 기본예탁금을 지난달 31일부터 기존 1000만원에서 현금 3000만원으로 높였다. 주식·ETF·채권 등 대용증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신규 상장과 광고도 잠정 중단했고, 오는 19일부터 괴리율 관리 기준도 강화한다. 상품 혁신을 확대하던 당국이 시장 과열과 변동성이 커지자 투자자 보호 쪽으로 무게를 옮긴 것이다.

증시도 극심하게 엇갈렸다. 3~7일 코스피는 5.10% 하락했지만 코스닥은 10.98% 상승했다. 7일 코스피는 6258.77로 마감했고, 외국인은 이날 8625억원을 순매도했다. 대형 반도체주와 외국인 수급에 좌우되는 코스피에서 중소형 성장주 중심의 코스닥으로 자금이 일부 이동한 모습이다. 다만 단기간 급락과 급등이 반복된 만큼 시장 체질 변화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이번 주 자본시장의 흐름은 “돈은 많지만 장기자금은 부족하다”는 말로 압축된다. 증시 거래대금은 증권사 사상 최대 이익을 만들었고, 코스닥에는 개인 자금이 몰렸다. 그러나 기업의 주식·회사채 장기조달은 줄었고 CP·단기사채는 급증했다. 정부가 ISA와 BDC,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국내 장기자금을 만들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만 투자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과 투자처를 제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번 ISA 논란은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도 시장 참여자의 선택과 신뢰를 얻지 못하면 자금 이동을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줬다. 다음 주에는 미국 7월 CPI·PPI와 소매판매, 외국인 수급 회복 여부, 정부의 ISA 수정안 방향이 핵심 변수다. 12일 딜리셔스 상장 이후 공모주 투자심리가 살아나는지도 하반기 IPO 시장의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토요경제 / 위아람 기자 moon@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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