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유지만 기자]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정권의 경제정책)’로 대표되는 일본의 ‘양적 완화’에 국내 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아베 정권이 ‘과감한 금융 완화 정책’을 골자로 한 경제정책을 선언하고,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총재 체제로 새 출발한 일본은행의 과감한 금융완화 결정이 ‘엔低 현상’을 유발했다. 정부 당국은 이 같은 흐름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한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은 채 시름만 깊어가고 있다.

엔저 현상은 아베 정권 하에서 강력하게 추진되는 ‘양적 완화’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최근 엔저현상이 심화되면서 일본과 수출경쟁이 치열한 자동차, 철강, 반도체 등은 ‘직접타격권’ 내에 들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원고·엔저의 파장과 대책' 보고서에서 "엔·달러 환율이 100엔으로 상승한다면 우리 기업 중 적자기업 비중이 현재(33.6%)보다 2배 늘어난 68.85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95엔에서 110엔으로 오르게 될 경우 삼성전자와 현대차, 포스코 등 국내 주요상장기업 43개사의 총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81%, 2.77% 감소하게 된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시장분석업체들의 분석결과도 일치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자동차와 철강 화학 등을 비롯한 국내 상장사들의 연간 실적 추정치가 하향 추세일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과 수출경쟁을 하고 있는 자동차업계의 경우 실적하락이 확실해 보인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양적 완화로 엔화 약세가 시작된 지난해 9월 말 연간 영업이익이 15조 가까이 예상됐지만, 현재는 11조 9100억원으로 급감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해외시장 점유율도 직격탄을 맞았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1분기 미국 시장 점유율에서 7.9%를 기록해 3년 만에 8% 아래로 떨어지게 됐다. 현대기아차 측은 현재 환율의 영향을 적게 받기 위해 현지 생산물량과 현지화 결제 비율을 높이는 방안을 쓰고 있다.
엔저는 국내 농수산물 수출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전남지역 농수산물 수출 물량의 60% 정도가 대 일본 수출로 계속된 엔저 영향으로 올 1분기 수출 실적이 지난해에 비해 급감했다.
지난 23일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광주전남지사에 따르면 올 1분기 전남지역 농식품 수출실적은 1만7292t에 총 5634만3000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 2만2490t, 6735만7000 달러에 비해 물량은 23.1%,금액은 16.4% 각각 감소했다.
농산물은 6760t에 1983만2000달러로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28.3%, 18.2% 각각 감소했고, 수산물도 8004t에 2830만5000달러로 지난해 같은기간에 비해 22.8%, 18.9% 각각 줄었다. 농수산업계는 수출에 지장이 생길 경우 생산자인 농수산인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이 가해진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타 업종들보다 수출 악화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 정부 ‘어쩌나’ 고심 중
정부의 고민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눈에 보이는 손실이 예상되는 업계를 중심으로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8~20일 열린 G20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 일본의 엔저정책을 경고하는 문구를 공동선언문에 채택했지만 이는 '억제가 아닌 묵인'이라는 국내외 언론의 비판이 가해지면서 정부의 선택폭이 좁아지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아직 우려할 상황이 아니다. 모니터링을 계속하면서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미온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더 이상 방치하기에는 곤란한 수준까지 이르고 있다. G20 재무장관회의가 끝난 뒤인 22일(현지시간) 1달러당 엔화가치가 한때 99.9엔까지 올랐다. 현대경제연구소는 엔화가 달러당 100엔이면 한국의 총수출이 3.4%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수출을 주로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상황이다. 게다가 자금여력도 없어 시간이 지날수록 적자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한 업체 관계자는 “이대로라면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은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엎어질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덕수 한국무역협회장이 수출기업들을 대신해 정부에 작심발언을 해댔다. 엔저에 대한 상황인식을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한 회장은 지난 16일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부총리의 현장점검에 배석해 "엔저 등으로 수출환경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 정부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엔화가 15%까지 절하되고 마지노선으로 봤던 달러당 95엔을 넘어 100엔까지 올랐다"며 정부에 현실 의식을 강조했다.
이에 현 부총리는 당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엔저는 내수와 수출 모두를 점검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대답을 서둘러 마쳤다.
이처럼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에 주저하는 것은 섣불리 나섰다가 투자자들에게 불안심리를 줄 수 있고 해외로부터도 환율조작국이라는 오명을 살 수 있어서다.
하지만 현 부총리는 2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해 "필요하다면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정부가 결단을 내릴 시기가 왔음을 간접 시사함으로서 정부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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