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의 예상이 빗나갔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현재의 2.75%로 유지했다.
지난해 10월 기준금리를 연 3%에서 2.75%로 내린 이후 6개월째 동결 조치다.
미약하게나마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기존 입장을 번복하기엔 부담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경기진단을 잘못했음을 시인하는 셈이 되고, 정치적 압박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남길 수도 있어서다.
한은은 금리를 동결하되 총액한도대출 한도와 금리를 조정키로 했다. 이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정부의 경기부양 노력에 화답할 수 있는 절충안이다.
시장의 관심은 이미 다음달 금통위에 쏠려있다. 금리 인하는 기정사실화하면서 조정 폭을 두고 저울질 중이다. 엔저 추세 장기화와 북한 리스크라는 복병이 더해지면서 성장의 하방위험이 커진 탓에 큰 폭의 인하를 점치는 분위기다.
◇한은, 시장 판단과 ‘불일치’…“가계부채·물가불안 우려”
금통위는 이 날 전체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2.75%로 동결했다.
통화정책 기조를 더 완화할 만큼 경기가 나빠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지난달 수출은 474억9600만 달러로 전년대비 0.4% 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하는 한국의 경기선행지수(CLI)는 지난해 10월 기준치 100을 넘어선 뒤 5개월째 상승 추세다.
금리를 더 인하하더라도 경기부양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란 인식도 여전하다.
금리 인하가 현재의 경기국면을 다소 전환시키는 대증(對症) 요법일 뿐, 우리 경제가 안고있는 근본적인 문체를 치유할 수 있는 처방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금리를 2% 중반대로 낮추면 가계부채가 누적되거나 시중에 풀린 돈이 투자로 이어지지 못한 채 물가만 부추기는 동맥경화가 심화되는 부작용을 유발시킬 수 있다고 봤다.
한은이 집중하고 있는 물가는 오히려 걱정거리가 아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개월 연속 1%대다.
보수적 시각을 견지하는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은 한은과 판단과 일치한다. 노무라는 거꾸로 기존 2.5%였던 성장률 전망치를 2.7%로 올렸다.
HSBC는 “북한의 수위 높은 도발로 한반도 긴장이 격화되고 있지만 경제성장률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면서 종전의 전망치(3.8%)를 유지했다.
올해 성장률을 당초 예상보다 크게 떨어진 2% 초반대에 그칠 것이란 정부의 전망을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위한 ‘명분 쌓기용’으로 보는 근거다.
안순권 백상경제연구원 부원장은 “경기가 심각하게 악화된 것은 아니다. 미국과 일본 경기가 살아나고 있고 예상밖 부진했던 중국에서도 수출이 늘어날 여지가 있다”면서 “더 나빠질 때를 대비해 금리 카드를 남겨두는 편이 나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은은 총액한도대출 한도와 규모를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총액한도대출은 한은이 정한 대출총액 한도 내에서 은행에 저금리로 중기대출자금을 대주는 일종의 중소기업 지원제도다. 금통위가 분기마다 총액한도대출의 한도를 결정하는데, 현재 9조원으로 책정돼 있다.
한은은 지난해 10월 총액한도대출 규모를 종전(7조5000억원)보다 1조5000억원 늘려 저신용 영세자영업자의 전환대출 지원에 배정했다. 적용금리는 지난해 10월 1.5%에서 0.25%포인트 하향된 뒤 5개월째 1.25%로 운용돼 왔다.
◇정책 공조 나몰라라…금리 내리긴 하나?
하지만 4월 금리 동결로 한은은 재정 건전성을 유보하면서까지 경기부양에 총력을 가하는 정부와 엇박자를 낸다는 지적을 면하긴 어려워 보인다.
한은법은 통화정책의 중립성(3조) 못지않게 정부정책과의 조화(4조)를 강조하고 있다. 당·정·청(黨政靑) 의 금리인하 압력이 부적절하듯, 한은이 나홀로 행보를 고집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의 책임을 뒤집어쓸 것도 감수해야 한다. 성장의 하방위험이 커진데다 엔화 급락과 대북 리스크라는 악재까지 겹친 현 상황을 간과했다는 지적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염상훈 SK증권 연구원은 “한은이 2분기에 (경기가) 나아질 것이라 전망한 지 족히 3년은 됐다. 다 틀렸다”면서 “이번 동결 여파가 굉장할 것이다. 책임론이 커질 것 같다”고 말했다.
한은과 당정청 간의 금리 인하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은 다음달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화 하면서 조정 폭을 놓고 베팅 중이다. 성장의 하방위험이 커진 탓에 큰 폭의 인하를 예상하는 쪽이 더 많다.
오현석 연구원은 “적절한 타이밍에 금리를 확 내리는 게 (경기 부양) 효과가 더 좋기 때문에 한 차례 0.5%포인트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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