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재개발 사업이 완전히 멈춰 서면서, 새로운 모습으로의 변모를 꿈꾸던 울산이 적잖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재개발 사업의 침체 또는 무산은 일견 건설경기 불황 탓으로 인한 전국적인 현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울산 재개발 사업은 무산 사유가 복잡하다.
돈벌이에 급급해 판부터 벌인 업체, 이를 부추긴 소수의 지주, 문제가 곪아 터지도록 방관한 자치단체 등 모든 주체가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이라도 사업계획을 현실적으로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주택 재개발 ‘올스톱’… 빛바랜 청사진
울산시 중구 B-03 주택재개발구역(우정동) 추진위원회는 ‘정비구역을 해제해 달라’고 중구에 요구하고 있다. 수년째 지지부진한 사업에 피로감을 느낀 주민들이 사업 포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지난 2007년 2월에 추진위원회가 설립되고, 같은 해 8월 정비구역 지정이 이뤄지는 등 순조로운 사업 추진이 진행되는 듯 했다. 울산지역 첫 재개발 사업의 삽을 뜰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조합 설립을 위한 주민 동의율이 43%(설립 기준 75%)에서 멈춰버렸다. 그렇게 5년여가 흘렀고, 결국 추진위는 투항을 선언했다.
송이천 추진위원장은 “사업을 추진하던 정비업체가 떠난 뒤로는 발을 담그려는 업체가 한 곳도 없다”면서 “주민들이 돈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사실상 사업이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에는 사업을 접자는 주민 요구가 높고, 그게 유일한 대안”이라고 했다.
울산의 제1호 재개발 조합으로 기대를 모은 남구 B-08 구역(신정4동)도 추진이 전면 중단된 상태다.
지난 2009년 11월 조합 설립인가를 받은 데 이어 롯데건설과 SK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하기까지는 일사천리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시공사가 착공을 미루고 있고, 조합은 마냥 시공사 눈치만 보고 있다.
2011년 4월 지역 두 번째 조합으로 설립된 중구 B-04 구역(북정ㆍ교동)은 지난해 두 차례나 시공사 공개입찰을 진행했지만, 참가 업체가 1곳도 없어 유찰됐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근거해 지난 2006년 울산시가 고시한 ‘2010년 울산시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에 따르면 재개발 예정구역은 모두 38곳이었다. 이 가운데 조합 설립 3곳, 정비구역 지정 11곳 등의 진전이 있었을 뿐, 사업이 완료된 사례는 전혀 없다.
그런데도 2009년 고시된 ‘2020년 울산시 도시ㆍ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에는 재개발 예정구역이 51곳으로 늘었다.
◇ ‘주민’ 빠진 재개발… 몰락의 길로
현재 울산의 재개발 사업에는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당초 취지가 사라지고, 땅값 상승ㆍ주택가 슬럼화ㆍ주민 반목 등 온갖 부작용만 난무하고 있다.
이는 주택과 기반시설을 정비해 삶의 질을 높이려는 재개발 사업에서 ‘사업성’만 지나치게 강조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주민 생존권이나 주거복지 등의 가치를 경시했다는 것이다.
통상 재개발 사업은 주로 한몫을 노리는 정비업체와 개발에 찬성하는 소수 지주가 주도한다. 여기에 당사자인 주민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이나 발생 가능한 부작용에 대한 심사숙고는 뒷전이다.
정치권은 이를 부추긴다. ‘도심 재정비’ 공약은 선거에서 표심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운 좋게 성공하면 치적으로 삼기에 좋다.
자치단체도 사업 과정에서 불거지는 부작용에 뒷짐만 진다. ‘재개발은 어디까지나 민간사업’이라는 논리 뒤에 숨어 관리나 규제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것이다. 주민 간 갈등이 불거져도 개입하기를 꺼리는 모양새를 보인다.
박영철 울산시의원은 “오직 재산 확대에 목적을 둔 개발업체는 감언이설로 주민을 현혹하고, 자치단체도 사업 성공에 따른 장밋빛 전망만 기대했을 뿐 주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부동산 가격이 정점을 찍고 내림세지만, 현재 중단된 재개발 사업은 정점일 때의 가격 기준에 모든 것이 맞춰져 있다”면서 “가격경쟁력이 없어 사업이 지연되고, 이 때문에 도심이 슬럼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정비예정구역 줄이고, 성공사례부터 만들어야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은 무분별하게 지정된 뉴타운 등 정비사업을 주민 의사에 따라 취소하는 ‘출구전략’을 마련, 시행하고 있다.
주택재개발 사업에도 이 같은 장치가 최근 마련됐다.
울산시의회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에 따라 관련 조례 개정안을 지난달 원안 가결했다. 개정 조례는 정비구역 지정요건을 강화하고, 추진위원회와 조합도 토지 등 소유자의 동의에 따라 해산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통한 사업 백지화가 쉽지만은 않다. 관련 절차를 진행하는 데도 적잖은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송이천 중구 B-03 재개발구역 추진위원장은 “추진위 설립을 위한 동의서를 받을 때는 업체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해산을 위해 같은 절차를 밟을 때는 누구로부터도 도움을 받기 어렵다”면서 “이런 문제로 주민 다수가 사업 취소를 원해도 실천하기는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자치단체가 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예정구역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비사업이 필요한 곳 위주로 구역을 지정하고, 나머지는 민간에 맡겨두는 식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사업성이 높은 곳은 민간업체가 개발을 선점하고, 정작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사업이 정체되는 문제가 빚어지고 있다.
차라리 민간에 맡기면 서서히 개선되거나 유지될 수 있는 지역도 정비구역이라는 틀에 묶이면 노후화가 가속될 수밖에 없다. 매매나 증ㆍ개축 등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민 재산권 침해는 무시할 수 없는 부작용이다.
한삼건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는 “부동산 경기 부진 탓에 더 이상 도심을 대규모로 개발ㆍ정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상당 부분은 민간의 자정 기능에 의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1∼2곳의 재개발 사업 성공사례를 만드는 데 민간과 공공의 역량을 집중해 혼란을 수습하고, 그 경험을 주위에 파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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