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늦춰줄테니 돈 더 벌어오시오”

산업 / 유상석 / 2013-03-08 13:15:28
SC은행의 ‘정년 62세’ 파격 실험

▲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정년 연장형 은퇴 프로그램’을 통해 유례 없는 ‘정년 연장 실험’에 나서 금융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평균 정년은 57세다. 그런데 62세까지 정년을 보장해 주겠다는 외국계 은행이 등장했다.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은 오는 4월부터 내년 말까지 ‘정년 연장형 은퇴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일부 직원에 대해 현재 만 58세인 정년을 만 62세로 늘린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비용에 민감하고 구조조정에 능한 외국계 회사가 국내에서 유례없는 정년 연장 실험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외국계 회사의 실적 우선주의 반영”
SC은행이 정년 연장 프로그램에 들어가면 정년은 62세로 늘어나지만, 급여는 영업 실적에 따라 달라진다. 프로그램에 진입하기 직전 해의 연봉이 기준이 되는데, 연봉보다 2배 실적을 거두어야 기준 연봉을 100%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연봉 1억원을 받기 위해선 은행에 이자ㆍ수수료 수익 2억원이 돌아갈 수 있게 뛰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적이 연봉의 2배에 미치지 못하면 연봉이 깎이고, 만약 실적이 연봉의 2배를 넘으면 인센티브를 얹어 받게 된다. 자녀 대학 학자금 등 복지 혜택은 유지된다.


SC 관계자는 “일정 규모의 수익을 내면 임금을 62세까지 계속 보장해 주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SC의 프로그램은 강제적인 것은 아니다. 자격 요건에 드는 사람이 신청하는 방식이다.


15년 이상 은행에 근무한 직원으로 부장급은 만 48세 이상, 팀장급은 만 45세 이상이면 신청할 수 있다. 만 54세가 될 때까지 신청하지 않는 경우 58세라는 기존 정년 규정이 적용된다. 현재 이 프로그램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는 SC 직원의 19%인 1070명 수준이다.


이 방안은 지난해 7월 SC 노동조합이 회사에 먼저 제안했다.


노조 관계자는 “은행의 수익에도 도움이 돼야 회사가 정년 연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달 초 노조와 회사가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로 합의한 뒤 직원들의 관심도 커졌다. 노조 관계자는 “쉰 살 언저리인 직원들이나 다른 은행 노조들이 정년 연장 프로그램에 대해 계속 물어오고 있어 노조가 마치 콜센터가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3월 말까지 은행과 협의해 세부 내용을 확정할 계획이다.


정년 연장 프로그램이 하필 외국계인 SC은행에서 먼저 도입된 이유는 외국계 회사 특유의 실적 우선주의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A 시중은행 인사 담당자는 “SC은행은 ‘순간순간 목이 왔다 갔다 하는 조직’이라고 말할 정도로 개인 실적 관리가 엄격하다”며 “영업 실적을 개인화하면 회사도 손해가 아니라는 게 SC 경영진의 판단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황수경 KDI 연구위원은 “외국계 회사가 아무래도 한국식의 인사 노무관리 관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며 “조기 정년으로 인한 사회적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SC의 실험이 좋은 전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이가 많고 직급이 높으면 임금을 많이 줘야 하는 한국식 연공서열 때문에 사측에서 정년 연장을 검토하기 어려운 게 현실인데, SC는 외국계 기업이라 연공서열에 덜 얽매인다는 것이다.


◇ 은행권 확산 가능성은 미지수
기존에 은행들의 정년 연장 방식은 주로 임금피크제로 이뤄졌다. 58세였던 정년을 60세까지 연장해 주는 대신, 55세 이후부터는 월급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국민은행의 방식이 대표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존 임금피크제의 경우 임금이 자동으로 깎이는 방식이라 직원의 생산성을 높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임금피크제가 그다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에 SC은행의 실험을 다른 은행들도 주목하고 있다. 37개 금융회사 노조로 구성된 금융산업노동조합도 SC 프로그램의 득실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노조는 실적과 연동된 정년 연장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긋고 있다.


그렇다면 SC은행 프로그램이 다른 시중 은행으로 전파될 수 있을까. 다른 시중 은행들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B은행 인사 담당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60세 정년이 법제화되고 난 뒤에야 개별 은행들도 정년 연장을 도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은행 인사 담당자는 “SC은행은 그동안 여러 차례 구조조정을 해서 정년 연장 대상자가 적기 때문에 이런 실험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반 시중은행들은 정년 연장으로 생기는 추가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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