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용 칼럼] '아버지들의 마지막 직장'

산업1 / 권희용 / 2014-12-22 09:47:23

▲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전 국정신문 편집장


"아버지들의 마지막 직장, 경비원을 해고하지마세요"
허름한 아파트단지 정문에 걸린 현수막에 쓰인 문구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눈자위가 붉어진다. '아버지들의 마지막 직장'이라는 문구를 되 뇌이면서 울컥 가슴이 저려온다. 부자동네로 알려진 서울 압구정동 어느 아파트 입주민이 경비원을 홀대한 것이 결국 자살사건으로 비화하면서 생긴 구호인 셈이다.
경비원채용방식을 바꾸거나 관리방법을 변경해서 가급적 인원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한다는 소식이 번지고 있다. 아파트관리비절감이라는 명목을 내세우지만, 애꿎은 경비원들의 직장이 줄어드는 결과만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아파트경비원은 줄잡아 3, 4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들의 처우는 겨우 생계유지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근무조건도 열악하기 짝이 없다. 협소하기 이를 데 없는 공간에서 아파트구내 각종 사건사고를 미연에 검점하는 경비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또 환경정리의 일선 책임업무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입주자들의 사적인 일도 거들어야 한다.
아버지들의 생애 마지막 직업은 이렇게 막중하면서도 대우면에서는 냉대를 받는 이른바 천직으로 꼽히기 일쑤인 것이 오늘날 우리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청년실업자수는 33만6000여명, 실업률 8%에 이른다. 이는 전체실업률의 2.5배에 해당한다. 전년 동월에 비해 12.3% 증가한 것이다. 아버지들의 마지막 직업과 거의 같은 수준의 청년실업자들이 이 땅에 엄존해 있는 상황이다.
작금, 우리나라 최대항공사의 부사장이라는 재벌 집 딸이 부렸다는 행악질이 현수막에 쓰인 문구와 겹치면서 세모에 불어 닥친 찬바람이 더 차갑게 느껴진다.
재벌 딸이 벌인 행각으로 줄잡아 1천억 원 가량의 금액이 손해라고 한다. 서민들에겐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거액이겠지만, 재벌 딸에겐 조족지혈에 불과할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은수저를 물고 이 세상에 태어난 신분이다. 세상에서 그녀가 못할 일이 없을 터다.
그녀가 저지른 일은 '데리고 있는 종업원'에게 '따끔하게 업무지시'를 한 것에 불과했다. 다만 '도가 지나쳐' 밖으로 삐져나왔을 뿐이다. 그녀로서는 이 정도일로해서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는 게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게다.
그래서 반성하기는커녕 잠시 내려놓은 자리로 다시 되돌아가면, 관련된 작자들에게 충분하게 화풀이를 하리라 작심을 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녀는 그럴만한 돈과 지위와 거기에 더해 하늘을 찌를 만큼 큰 자존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 그네들에게는 사람을 대하는데 꼭 필요한 예의범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인권에 대한 소양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있는 자들의 결핍증 가운데 가장 드러나는 면이 바로 사람에 대한 예의가 그것이다.
있는 자들의 사회적 책임을 그들은 망각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내 마음대로 하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라는 의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고스란히 인권무시, 인권침해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내가 부리는 사람은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다. 그들에게는 사람위에 사람이 있다고 믿는다. 안하무인이라는 사자성어가 딱 어울리는 사람들인 셈이다.
적어도 허름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경비원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재벌의 딸이 벌인 갑(甲)질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다. 어려운 살림에 한 푼이라도 절약하기위한 방편으로 경비원이라도 줄여 관리비를 내려 보겠다는 의도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수막의 글귀가 자꾸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혹여 엄동설한에 마지막 직장을 떠나는 늙은 아버지들의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리라. 따듯한 봄날까지 만이라도 기다려 줄 수는 없을까. 한숨처럼 찬바람이 거리를 몰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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