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정의 살림을 꾸리는 데도 때에 따라 계획을 세우고 결산을 해보는 일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월 단위로든 연 단위로든 지난 기간에 돈 쓴 내역을 살펴 의미 없이 낭비된 것과 필요한데도 쓰지 못한 것들을 분석하다 보면 다음 기간에는 돈을 어떤 자세로, 어떤 부문에 더 쓰고 덜 써야 할지 가늠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서 경제력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절대적이 된 지금, 경제활동에 대한 이 같은 자성과 살뜰한 계획이란 어제보다 나은 삶을 얻기 위해 필수 불가결이다.
연말이다.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가는 사람들이라면, 지난 일 년의 가계부를 펴놓고 새해 살림은 어떻게 바꿔볼 것인가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 반성이 부부간에 의견이 같고, 계획에 대해서도 의견이 일치하거나 적어도 서로 간에 쉽게 이해하고 양해가 될 수 있다면 이 집안은 새해에도 화목하게 지내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할 것이다.
경제의 최소단위인 가계가 이러한데, 그보다 단위가 큰 기업이나 정부 재정에서 일 년 예산의 반성과 계획의 중요성은 더 말할 것 없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정부는 새해 예산 계획을 국회에 제출하고 승인을 구하도록 되어 있다. 지금 그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예산 심의가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심의 첫 단계부터 정부의 계획안 자체가 부실하거나 중요 항목이 제외되어 있다고 국회의원들이 항의를 하고, 정부 부처들은 해당 항목에 대한 세부계획서를 추가 제출하느라 분주하다.
야당의 항의 뒤에야 정부의 추가 자료가 트럭분으로 제출되는 것을 보면, 자료가 충분치 못하고 심지어 부실하다는 국회의원들의 주장은 괜한 트집이 아닌 것 같다. 정부 자료가 어떻게 부실한 것일까. 야당의 주장을 빌면, 정부 부처들이 내놓은 계획서라는 것은 ‘가계부만도 못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언론들도 꼬집었지만, 이를테면 국토해양부의 계획서는 방대한 전체 분량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예산과 관련된 부분은 겨우 수십 쪽으로 요약되어 있을 정도였다. 가장 많은 금액의 예산을 사용하는 부분에 대하여 뭉뚱그려 설명하고 알아서 승인해달라는 의도였을까. 야당의 공세가 계속되자 한 부처에서는 무더기로 세부계획서를 보내 항의를 받기도 했다. 억하심정이었을까. 우리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들이 정부로부터 받는 대접이 이렇다.
흔히 정부여당과 야당의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비유되기도 한다. “올해는 이러저러한 씀씀이로 손해가 났으니 내년에는 이러저러하게 써봅시다”라고 한 쪽이 얘기할 때 다른 한 쪽이 “그럽시다”하면 다행이지만 “어째서 그게 잘못됐다는 게야? 내년에는 오히려 그쪽으로 돈을 더 써야 돼”라고 목청을 높일 때 부부는 필연적으로 다투게 되어 있다. 그 다음해도 일 년 내내 지겹게 싸우며 지낼 것은 빤한 이치. 지금 정부와 국회 사이의 갈등이 딱 그 꼴이다.
계획을 세우는 정부는 내년에도 ‘4대강’ 사업을 포함하여 토목공사를 늘리는 쪽으로 계획을 잡았다. 토목공사를 늘리면 예산이 큰 단위로 투입되므로 돈이 쉽게 돌게 되어 시장경제도 활성화될 것이라는 게 정부쪽 생각이다. 과연 70-80년대 건설경기를 타고 국가경제가 활발하게 돌아가던 때를 생각하면 근거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21세기의 경제를 계획하는데 미래적 감각의 틀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여전히 7080시대의 틀에 의존했을 뿐이라는 점이 찜찜하다. 모든 계획이 100% 성공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 한다면, 이 계획의 성패에 대하여 우리는 막연한 낙관을 경계하는 것이 당연하다.
4대강 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국회에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예산정책처라는 기구가 있다. 여야를 떠나 국회 전체의 권능을 대리하여 정부 예산을 전문가적 시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기구다. 이 기구가 올해 내놓은 여러 분석 보고서들, 이를테면 ‘2010년도 (정부의) 성과계획서 평가’라든가 ‘국가재정 운용계획 분석’ 등 일련의 보고문서들은 정부의 중장기 예산에 대하여 매섭게도 ‘함량미달’로 평가하고 있다. 정부의 예산 가운데 계획과 성과목표가 어울리지 않는 ‘뜬구름 예산’이 19조원, 내년 예산 291조8천억원 가운데 최대 6.5%에 달한다‘는 평가가 대표적이다.
아내 편도 남편 편도 아닌 중립적 전문가 그룹에 의해 ‘문제가 있다’고 판명되는 예산을 놓고 예산을 짠 사람이 상대에게 무조건 허락하라고 다그친다면 이 갈등이 어찌 쉽게 해소될 수 있겠는가. 이미 우리 국민들에게는 익숙한 일이지만, 올해도 여당과 야당은, 국민 세금으로 지어준 최고급재의 국회 문짝이며 유리창을 박살내가며 또 한 번 ‘활력이 지나친 국회’의 면목을 세계에 과시할 테지. 이를 통해서 우리는 내년의 나라꼴이 또 어떻게 우울하게 돌아갈 것인지까지도 예상이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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