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S백화점에서 우리나라의 햅쌀로 만든 막걸리를 일컫는 막걸리 누보와 프랑스의 햇 포도를 숙성과정 없이 병에 담은 와인인 보졸레누보(Beaujolais Nouveau)를 병행해서 판매하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그 결과 막걸리 누보의 판매량이 보졸레누보의 판매량을 월등히 앞질렀다고 합니다. 실로 2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막걸리 열풍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사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과거엔 그저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이 어쩔 수 없이 마시는 술이었던 막걸리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지금처럼 애주가들의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데에는 품질을 높이려는 남다른 노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각 지방의 술도가에서는 지역의 특색을 살리면서도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는 아이템을 발굴하고 상품화하는데 열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햅쌀 막걸리는 커피를 다루는 직업을 가진 필자에게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커피와 막걸리는 모두 그 해에 수확한 원료를 사용해야 맛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음식은 좋은 재료를 사용해야 맛있다고들 합니다. 좋은 재료의 미덕 가운데 첫 째는 단연 재료의 신선도입니다. 햅쌀 막걸리를 생각해낸 사람들은 묵은 쌀로 빚은 떡과 햅쌀로 빚은 떡의 맛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지역에서 수확한 쌀이라고 하더라도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온도, 습도의 영향을 받으면서 변질되게 마련입니다. 그 해에 수확한 쌀로 빚은 막걸리라, 이 얼마나 신뢰가 가는 재료이겠습니까?
커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해에 수확한 생두라야 최고의 맛을 낼 수 있습니다. 그 해에 수확한 생두를 우리는 New-Crop이라 부릅니다. 수확한 지 1년에서 2년 사이의 생두는 Past-Crop이라 하고 2년 이상된 생두는 Old-Crop이라 하여 등급 외로 분류합니다. 최적의 조건을 모두 갖춰서 최고의 생두를 수확했다고 해도 그것으로 좋은 재료의 요건을 갖췄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유통 과정에서 생두에 대한 무지로 인해 변질되는 생두들이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원산지에서 수확된 생두가 선물이나 경매로 거래된 뒤에는 세계 주요 거점지역까지 배로 운반됩니다. 이곳에서 전 세계 중.소규모의 도매상을 거쳐 커피를 볶는 최종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기까지의 기간이 적어도 3개월은 소요됩니다. 이 때 중간 상인들은 유통비를 줄이기 위해 한 번에 많은 물량을 주문하게 되는데 이렇게 초과된 물량은 대체로 다 팔려나갈 때까지 2년이고 3년이고 창고를 차지하게 됩니다. 혹여 보관 시설에 항온, 항습 기능이 없기라도 하는 날이면 생두는 두어 달 사이면 변질되어 버려 본래의 가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이런 재료로 만든 커피가 맛있을 리는 만무할 것입니다. 막걸리 누보의 성공이 시사하는 바도 바로 그것일 겁니다. 이제부턴 커피를 주문하기 전, New-Crop인지 꼼꼼히 따져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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