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정치인의 말과 詩人의 말

오피니언 / 정해용 / 2009-08-03 15:08:02

# 1


지난 27일 이명박 대통령의 대입 사정관제 확대 관련 발언이 교육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대통령은 이날 라디오 연설에서 대학의 입시 제도를 입학사정관제 중심으로 바꿔갈 것이라고 말하는 가운데 ‘저의 임기가 끝날 때쯤이면 대학들이 거의 100% 가까운 신입생 선발을 그런 방법으로 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국민들은 술렁거렸고 연설 내용에 대한 사전 조율이 없었던 교육과학부를 비롯한 교육계는 당황했다. 결국 당국자가 나서 ‘입학사정관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일 뿐 100%라는 숫자에는 연연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소동은 가라앉았다.


전국에 공개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관련 관료가 감히(?) ‘연연하지 말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발언이 액면 그대로 실현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일 대통령의 말이 액면 그대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이고 그래야 타당한 것이었다면 관료의 이 같은 ‘물타기’ 발언은 용납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발언으로 술렁거리던 국민 여론은 그의 해명이 있고서야 ‘그럼 그럴 테지’하며 가라앉았다.


이쯤 되면 대통령이 직접 구체적 수치까지 거론하면서 말한 것을 당국자들과 협의를 거쳐 책임있게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理想에 가까운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얘기가 된다.


돌이켜 보면 지금 정부는 출범 때부터 교육정책에 관해 대단한 의욕을 보였다. 대통령이 취임하기도 전 인수위가 ‘영어몰입교육’을 말할 때부터 그랬다. 정부가 ‘원어민 교사’들을 채용하여 시골까지 학교마다 파견하겠다는 약속은 어느 정도 추진이 되어가는 모양이지만, 수학 과학 역사 과목까지 영어로 수업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말은 현실과 동떨어진 계획이라는 비판을 받고 ‘상상’ 수준에서 폐기되었다. 자립형 사립고(자사고)는 어떤가. 공약에서부터 전국에 500개 자사고를 허용하겠다고 장담했지만 정작 그만한 역량을 가진 사립학교는 많지 않았다. 올해 정부에 계획서를 제출하고 자사고 설립을 인가받은 학교는 50개에도 미치지 못한다. 역시 과장되었거나 대통령 개인의 이상론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 2


대통령의 ‘일자리 창출’에 대한 열정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돋보인다. 취직이 안 되는 청년 인력을 흡수하기 위하여 정부기관이나 공기업은 물론 일반 사기업에까지 청년 일자리 창출을 독려하여 10만 이상의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 일자리의 質을 따지기는 좀 낯 뜨겁다. 행정인턴이니 사무인턴이니 하는 명목으로 ‘채용’된 이들 청년들의 일자리는 10개월에서 12개월의 한시적인, 게다가 계약기간 후 진로나 계속 채용 여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보장되지 않는 그야말로 임시변통의 자리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6개월짜리 자리도 있다. 월 보수가 100만원이 안될 만큼 알량한데다 계약기간 후 진로에 대해서도 아무 보장이 없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이나 고용한 기관이 서로를 충분히 신뢰하지 못한다.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인력감축에 대한 열정도 뜨겁다는 사실에 이르면 과연 대통령이 갖고 있는 원칙은 무엇인지가 궁금해진다. 취임과 동시에 정부기관과 산하 공기업들에 일정 비율의 인원삭감을 무조건적으로 요구했다. 경영효율화라는 명분은 그럴싸하지만 이것을 모든 기관에 기계적으로 똑같이 적용한 것은 넌센스다. 평소 운영이 방만하여 당장 잘라도 좋은 잉여인력이 많았던 기관이라면 대통령의 정책에 잘 따라 우수기관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반면, 진즉부터 최소 인원으로 최대의 효율 운영을 해오던 우수기관들은 당장 한 사람 자르기도 어려워 오히려 정책을 잘 따르지 않는 기관이 되고 말았다. ‘많이 고용하라’와 ‘많이 해고하라’는 상반된 지시를 동시에 강조하는 대통령의 말은 취업률과 실업률이 각기 별개의 것이라는 비현실적 상상에 기초한 듯하다.



# 3


말은 법이기도 하고 질서이기도 하다. 말이 흔들리면 법이 흔들리며, 말이 어지러우면 세상 질서가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사회의 미래를 은유로써 예언하는 詩人들이야 과장이나 상상의 말로 세상을 좀 더 달콤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이 본래의 사명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지도자의 말은 달콤한 ‘느낌’이 아니라 달콤한 ‘현실’을 책임지는 말이어야 한다. 시인은 가난하지만 정치지도자에게는 그만한 보수와 권한이 따른다. 그 역할이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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