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아주 좁은 카페를 운영하던 시절부터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공간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턴테이블과 LP들을 수납할 수 있는 선반이었습니다. 존콜트레인, 빌리홀리데이, 빌에반스, 마일즈데이비스등 먼지 낀 LP를 닦는 일이 하루 일과 중 하나였죠. 주변에선 하루 종일 반복 재생되는 컴퓨터 하나면 되지 않겠냐고, 참 유별난 취미라며 핀잔을 주었지만 선뜻 타협해지지는 않더군요. 사실 밀려드는 주문을 받으랴 판 갈아 끼우랴 불편함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지만 손가락하나 까딱 않고 무한 반복되는 전자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 따뜻한 소리를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때 이래로 불과 10년 사이 참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기술은 진보했고 개인의 생활양식, 사고, 문화를 변화시켰습니다. 그 중에서도 데이터 전송 속도의 비약적인 발전은 그 영향력에서 보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강력했지요. 사람들은 때와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고 DMB를 시청하고 메일을 전송하고 대용량의 영화를 다운받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줄을 서고 예약을 하거나 인터넷이 가능한 장소를 찾아 헤메일 필요 없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정보의 바다에서 몇 차례 가격 비교를 끝내곤 결제창을 열어 물건을 사고 문화를 소비합니다. 쉽고도 빠른 소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죠.
이러한 경향은 커피 산업에서도 나타납니다. 자동화된 첨단 커피 추출기계로 무장한 대형 커피체인들에선 어떻게 하면 좀 더 빠르게 커피를 생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커피 관련 기업들은 추출된 커피를 캡슐에 담기도 하고 파드(Pod)라는 포장법을 개발해 더 많은 소비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진보라고 표현한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런데 커피를 놓고 말하자면 그러한 진보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시대의 흐름과는 무관한 듯 그만의 존재 가치를 빛내는 커피를 발견할 때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처럼 따뜻한 사람의 냄새를 맡는 듯 흐뭇해집니다.
그런 커피가 바로 더치커피입니다. 더치커피란 뜨거운 물이 아닌 찬물로 천천히 커피를 우려내는 방식으로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에서 유래했습니다. 지구상엔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추출법이 존재하고 그에 따라 추출되는 시간도 다릅니다. 그 추출 시간이란 궁합과도 같아서 항상 추출법에 맞는 추출시간을 적용시켜야 맛있는 커피를 추출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에스프레소 한 잔이 추출되는 시간은 대략 18~25초, 손으로 추출하는 핸드드립(Hand Drip)은 2분30초정도가 소요됩니다. 그런데 더치커피를 추출하는 데에는 10~12시간이 소요됩니다. 무려 하루 중 절반의 시간이 온전히 그 커피를 위해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한 방울씩 떨어지는 더치커피에서는 똑같은 모양으로 대량생산된 커피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진한 사람의 향기가 풍겨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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