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용 칼럼] 늙은이의 눈물

산업1 / 권희용 / 2014-11-21 17:21:30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전 국정신문 편집장
70은 넘겼을 노인 셋이 허름한 술집에서 소주잔을 나누고 있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치루는 대학입시를 위한 수능시험이 있던 날 저녁, 서울 변두리.

"뭔 놈의 과외비가 그렇게 비싸, 당최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쯧쯧…"

"뭔 소리야, 갑자기 괴외비 타령은…?"


술집 벽에 걸린 TV화면에서 수능시험관련 뉴스를 보던 한 노인의 말에 다른 노인이 묻는 말이다.

"중학교 2학년짜리 손자 녀석이 며칠 전 제 어미한테 지금 하는 과외보다 수준이 높은 과외로 바꿔달라는 거야. 아, 그런데 과외비가 근 백만 원이나 한데나 봐 그것도 두 과목씩이나… 거참!"

"그러니 어쩌나? 이제는 없는 사람은 애들 공무도 못시키는 세상이 되었어.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아니란 말일세…."

또 다른 노인이 안주를 씹으며 하는 말이다. 그러자 처음 말을 꺼낸 노인이 발끈하면서 되받았다.

"당최 정부에서는 뭐하는지 모르겠다는 말 일세! 과외단속을 왜 안하느냐 그런 말이야…"

"아니 그러면 과외를 아예 못하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지, 정부가 나서서 학교에서만 공부하도록 해야 공정한 경쟁이지 돈 있는 놈들만 제 자식 괴외 공부시키면 그게 공정한 경쟁이 되는가 말일세!"

노인들의 말소리는 이미 커졌다.

"이 사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전에 군부독재시절에 입시경쟁이 치열해 지자 과외금지를 했던 때 생각 안나? 그러다가 결국 없던 걸로 되지 않았느냐 말이야. 민주국가에서 공부하겠다는데 그걸 무슨 수로 정부가 막나?"

한동안 얼굴을 붉혀가면서 입씨름을 하던 노인들이 수굿해 졌다. 그리고 처음 과외비 말을 꺼냈던 노인의 한숨 섞인 말에 귀를 기울였다.

"두 애들 과외공부 시키느라 며느리도 식당에 나가 허드렛일을 한다네. 우리 큰애도 매일 야근을 하느라 얼굴 본지가 언제인지도 몰라. 늙은 우리 집사람이 살림 맡아 하느라 허리 펼 날이 없을 지경이야…"

노인은 소주 한잔을 입안에 털어 넣고 말을 이어갔다.

"먹고 살기도 힘들어.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무슨 수로 애들을 가르치나? 우리 두 늙은이라도 없어지는 게 애들 힘을 덜어주는 거지"

노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다른 두 노인도 고개를 숙인 채였다. 정부에 의한 과외단속을 주장하는 노인의 하소연은 고스란히 기층서민을 위한 생존권보장과 다르지 않다.

공부를 하겠다는 애들에게 어느 부모가 돈이 없어 하지 말라고 하고 싶겠는가. 형편이 닿지 않아 쩔쩔매는 부모들의 심정은 얼마나 아프겠는가. 이런 상황이 이 시대 대한민국 서민들의 고통이고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경쟁을 부추긴 결과라고 몰아붙일 일도 아니다. 생존경쟁의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방치할 일도 아니다. 과외로 말미암은 시장이 생긴 지 오래전이다. 학원산업이 그것이다.

학교에만 보내면 아이들의 교육은 걱정할 것 없는 세상은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공상에 불과할까? 국민의 생활을 챙겨줘야 할 정부가 나서서도 이런 문제는 해결될 수는 없을까? 노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그들의 눈물을 보면서 불현듯 떠오르는 질문이다.

요즘 국회에서는 내년도 예산을 둘러싼 여야의 다툼이 불꽃을 튕기고 있다. 치열한 경쟁의 마당인 셈이다. 하나같이 '국민' 편에 서서 한 푼이라도 더 빼앗아 오기위한 혈투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입에 달고 사는 '국민'은 정작 씁쓸하기 짝이 없다. 도무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공염불일 뿐이다. 정작 당장의 민생과는 맞지 않는 저들만의 리그가 아닐까싶다.

집안 늙은이들의 눈에서 눈물이 고이지 않는 그런 민생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정치는 과연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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