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지방 도시 의회에서 남녀 시의원끼리 연정의 불이 붙었다. 국경의 벽도 없다는 남녀의 애정지사인데 시의원이란 신분이 뭘 그리 대단한 얘기꺼리냐 하겠지만, 문제는 남성 의원이 이미 아내를 가진 유부남이었다는 거다. 유부남 유부녀의 불륜이 요즘 세상에 뭘 그리 대단한 사건이냐고 하겠지만, 문제는 이 유부남 의원이 대중 앞에서 자신의 애정행각(소위 ‘불륜’)을 만천하에 공개했다는 거다. 아무려면 그런 뻔뻔한 일을 자기 입으로 ‘만천하’에 알렸겠느냐 하겠지만, 의원이 둘의 관계를 밝힌 곳은 사적인 자리도 아닌 의회 공식행사에서의 연설 도중이었다. 그는 자신과 동료 여성의원이 사랑하는 사이라고 떠벌였고, 마침 시민이면 누구나가 알고 있는 그의 부인이(그것도 남편의 연설 장면을 보기 위해)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놀라 까무라칠 순간에 다른 여성의원들이 “세상에나, 이렇게 역겨운 일이 어딨담.”하고 외치며 부인에게 달려가 껴안고 위로해주었다고 한다. 그러면 이 불륜 커플은 조만간 의원직을 박탈당하거나 최소한 부끄러워서 자신 사퇴라도 하지 않았겠느냐 하겠지만, 이 마초 같은 의원님과 뻔뻔녀 의원은 이후 반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의원으로 재직 중이시다. 그렇게 하늘도 두렵지 않은 사랑이라면 나름 절실한 가치라도 있지 않을까 이해라도 해보고 싶겠지만, 문제는 일곱 달이 지난 요즘 이 커플은 크게 치고받으며 싸워 다시 한 번 지역사회에 뉴스 메이커로 등장했단 거다. 아무리 막장 드라마가 안방극장에 차고 넘치는 시대라지만 아무려면 이런 일이 실제 일어났겠느냐고 하겠지만, 이미 온 세상에 다 전파된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윤리도덕이 땅에 떨어졌다고 해도 이 정도까지겠는가 하겠지만, 지금은 이미 ‘말세’ 아닌가. 가만! ‘우리 사회의 윤리도덕’이란 말은 틀렸다. ‘우리 사회’라는 말이 우리 대한민국 사회를 가리키는 말이라면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황당 뻔데기’ 같은 사건이 일어난 곳은 대한민국 어느 도시가 아니라는 거다. 휴우, 다행이다. 사건은 저 멀리 바다건너 미국 LA 인근의 샌 퍼낸도라는 도시에서 일어났다. 영화도시 헐리우드에서 가까운(물론 이 사건은 영화 스토리가 아니지만) 인구 20만의 소도시다.
뻔뻔남 마리오 에르난데스가 자신들의 불륜을 떠벌인 이후에도 샌 퍼낸도의 동료의원들이 들고 일어나 윤리위에 제소하거나 제명동의안을 발의하는 등의 후유증은 없었던 모양이다. 의회를 특정 정당이나 파벌이 장악하고 있어서 그를 보호해준 것은 아니었을까. 이쯤 되면 이 마초 의원님, 지역사회 골목대장이라도 되었던 듯. 시의원 가운데서 돌아가면서 맡는 시장직을 무사히 수행하고 여전히 시의원으로 지내고 있다. 혼외정사를 처벌하는 간통죄가 없는 사회다 보니 그의 자격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지난달에 두 남녀는 뺨을 맞았네 목을 졸랐네 얼굴을 할퀴었네 피가 났네 하면서 서로 고소, 맞고소하여 사이좋게 상대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을 받아냈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여전한 것 같다. 시민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마리오 에르난데스와 라 토레 커플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시 의회는 시 경찰서의 질 카리요 서장에 대한 직위해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정당한 사유도 공개되지 않았고, 해고된 서장도 사유를 통보받지 못했다. ‘시의원을 상대로 수사를 벌여 괘씸죄를 산 거 아닐까요’라고 짐작할 뿐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샌 퍼낸도는 이제 무법천지다. 한 나라의 총리나 대통령이 비윤리적이면서 독선적인 경우(그 좋은 예로 올들어 이탈리아를 국가부도 위기에 몰아넣고 결국 총리직에서 물러난 베를루스코니를 들 수 있다)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 지역사회로서는 더할 수 없이 불행한 재앙을 맞고 있는 셈이다. 그 도시에 양심적이고 실력 있는 인재가 없어서? 아닐 것이다. 지역 토호 패거리의 담합 앞에서 상식이 무너진 때문일 것이다.
우스운 말이지만, 요즘 인터넷에서 ‘막장’이라는 말을 검색하면 웬 지방의회 뉴스가 무더기로 떠올라온다. 이건 바다 건너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는 지역사회 얘기다. 기초의회 의장 부의장 하다못해 상임위원장 자리를 놓고도 파벌다툼이 벌어지고, 뒷돈이 오가고, 파벌간의 밀실합의와 그조차 배신하는 행위와, 그래서 단상을 점거하며 치고받고 싸웠다는 얘기와, “야, 이 지지배야, 머스매야.”하면서 욕을 주고받았다는 얘기와, 그래서 고소 고발했다는 얘기와, 선관위와 검찰이 조사를 벌였다는 얘기들이다. 심지어 어느 군 의원은 의장이 되려고 동료의원에게 돈을 1천만 원이나 주었다가 낙선하자 불법 금품수수 사실을 스스로 폭로하고 자살했고, 어떤 의원은 의장 선출이 약속대로 안 되었다며 야구방망이로 애꿎은 자신의 차 유리를 박살내 구설수에 올랐다.
지역 의원으로도 모자라 ‘장’ 자리 한번 차지하자고 거는 집착이 왜 이리 집요한 걸까. ‘장’ 자리를 차지하면 월 몇 백만원 정도의 활동비와 기사 딸린 자가용과 명예가 주어지기 때문이란다. 그 알량한 활동비와 직급, 명의와 특권에 눈멀어 뒷돈 주고받고 동료를 배신하고 약속을 깨뜨리고 욕하고 몸싸움하고 서로 고소 고발하며 추태를 마다않는 지역의회라. 바다건너 불륜 시의원 커플 흉볼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 지역 시의회 누가 누군지도 모른 채 아무에게나 표를 찍은 유권자들에게는 지역의원 흉보고 욕할 자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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