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자사주 취득 붐…약인가 독인가

산업1 / 조강희 / 2008-11-24 11:15:07
‘유통업 빅3’ 오너.금융지주사 최고 경영자 등 잇딴 지분매입

너도 나도 자사주 갖자…금융위 매입한도 완화 바람 타고 관심 고조
단기적 처방에 그칠 가능성 많아 전세계 경기침체 장기적 안목에서 회피가 지혜


유통 회사 회장들이 앞다퉈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다. 금융지주사 최고경영자(CEO)들도 자사주 매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10월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한도를 연말까지 1%에서 10%로 완화하기로 한 가운데 자사주 매입 기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과 같은 약세장에서 자사주를 매입한 기업들의 과거 주가가 코스피 대비 평균 수익률을 웃돌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은 이들 중 가장 많은 주식을 사들였다. 그는 지난달 14일부터 이달 4일까지 15만3500주를 매입했다. 금액만 658억원에 이른다. 이에 따라 자신의 신세계 지분율은 16.48%에서 17.3%로 늘어났다. 앞서 지난 7월 매입한 5만6500주까지 포함하면, 4개월새 이 회장은 신세계 주식 21만주(총 매입금액 937억원)를 사들인 셈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역시 지난달 28일부터 나흘 연속 그룹 주력사인 롯데쇼핑 주식을 사들였다. 모두 7만2934주, 약 110억~120억원어치다. 지분율도 기존 1.4%에서 1.47%로 늘어났다.


특히 신 회장의 셋째 부인으로 알려진 서미경씨와 그의 막내딸 신유미씨도 같은 시기 롯데쇼핑 주식을 함께 매입하면서 재계 안팎에선 배경을 놓고 말들이 많았다.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도 자사주 5만5317주를 지난달 매입했다. 취득금액은 35억원 남짓. 이를 통해 기존 17.08%이던 지분율은 17.32%로 늘어났다.


이팔성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9월과 10월에 걸쳐 자사주 10000주를 매입했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자사주 5000주를 매입해 16만9000주를 보유하게 됐다. 김종열 사장이 5000주, 김정태 행장이 4000주, 김지완 하나대투증권 사장이 1000주, 석일현 지주 감사가 500주를 매입했으니 임원진이 보유한 하나금융지주 자사주는 총 5만여주나 된다.


라응찬 신한지주 회장은 지난 2001년 9월부터 자사주를 매입하기 시작해 현재 15만4373주를 보유중이다. 신상훈 행장도 지난 7월18일에 500주, 21일에는 1100주 등 총 1600주 자사주를 매입해 현재 총 11만6444주를 보유하고 있다. 황영기 KB지주 회장도 역시 지나치게 떨어진 금융사 주가를 언급하며 임원진들에게 주식 매입을 독려하고 있다.


회생속도 더딘 증시에서 반등 노려


금융사와 대형 유통사. 업종과 액수는 천차만별이지만 이들이 자사주를 구입하는 데에는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반토막이 난 뒤 회생의 속도가 더딘 증시에서 반등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자사주 구입은 투자자들에게 ‘저가 매수’ 기회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의 주가가 지나치게 저평가됐다는 점을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증권가에서는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이 증시 하락기에 상대적으로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증권가의 한 애널리스트는 코스피 수익률을 상회하는 자사주 매입기업 비율을 분석해 그 특징을 내 놓고 있다. 주가 상승기에는 자사주 매입 비율이 시간이 지날수록 하락하는 특징이 있는 반면 증시 하락기에는 시간이 갈수록 자사주 매입 기업이 코스피 수익률을 뛰어넘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남는 현금을 이용해 자사주를 매입하고 이에 따라 꾸준히 매수세를 유입하면 주가 역시 하락세를 방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방어에도 조건은 있다. 기업의 경영실적이나 성과에 비해 주가가 상대적으로 크게 하락한 기업, 낙폭이 크고 부채비율이 낮은 기업일수록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가 부양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주가 부양이 하나의 목적이었던 만큼 매입시점은 주가가 급락하거나 하락세가 계속되던 시점이라는 점도 공통점이다.


실제로 50만원을 상회하던 신세계 주가는 매입시점 당시 30만~40만원대로 내려앉았고, 롯데쇼핑 주가 역시 15만원대로 급락했던 시점에 자사주 매입이 시작됐다. 현대백화점 역시 주가가 평소의 절반이었던 시점에 매입이 집중됐다.


5월만해도 4만 5000원에 거래되던 하나지주는 최근 1만8000원대까지 거래되고 있다. 매입선언 시점에는 2만원대였다. 5월 당시 3만원에 육박하던 우리지주는 이 회장의 매입시점에는 8300원이었으나 최근에는 5800원으로 떨어졌다.


금융권과 대형 유통사들의 입장은 여기서부터 갈리기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금융권은 자사주 매입으로 별다른 효험을 본 것이 없다. 하향 곡선은 쉽게 반등하지 않을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대형 유통사들의 주가는 소폭 상승을 이뤄냈다. 저가 매입에 따른 평가이익을 조금은 본 셈이다.
대형 유통사들로서는 약세장 속에서 자사주를 싸게 사들여 손쉽게 지분을 확대하고, 경영권을 안정시켰지만 시중은행들의 순이익은 전체적으로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은행들로서는 자사주 매입이 독이 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인 것이다. 우리금융지주의 이 회장이 지난달 19일 2000주를 매입할 때 주가는 이날 종가기준 1만1700원, 지난 29일과 30일 주가는 각각 7310원, 7370원이었으나 최근에는 5800원대까지 떨어졌다.


하나지주의 주가는 최근 원만한 상승을 보이고 있으나 김승유 회장이 2005년 당시부터 보유했던 주식의 차익을 생각하면 이익보다는 손실이 크다.


금융권에서 경영권 ‘선방’사례로 들 수 있는 것은 신한지주 정도다. 라응찬 회장은 지난 2001년 9월부터 자사주를 매입하기 시작해 현재 15만여 주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제까지 그의 총 투자금액은 30억원이 넘는다. 그러나 이들 주식의 현재가치는 55억대로 평가되고 있어 평가 차익은 25억이상이나 된다.


전세계 경기 침체속 장기 효험은 ‘글쎄’


그러나 대체적으로 현재와 같은 전세계적인 경기침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자사주 매입이 별 효험을 볼 수 없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어느 액수 정도의 방어, 어느 기간까지의 방어는 가능하겠지만 장기적인 전망으로 자사주를 매입하고 되판다는 것이 결국의 이익으로 전환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한국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심지어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렌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조차도 급락하는 주가로부터 자기 자신을 구할 수는 없었다. 그는 최근 주가 급락으로 버크셔 주식에서만 96억달러의 손해를 봤다.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최고경영자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스티브 발머 회장이 각각 66억달러, 48억달러씩 손해를 봤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최고경영자와 언론 재벌인 뉴스코프의 루퍼트 머독도 각각 42억달러, 39억달러를 공중에 날렸다.


미국의 모 컨설팅 업체에 따르면 미국 175개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보유한 자사주 가치가 올 회계연도 들어 423억달러(28%) 급감했다. 이들 기업의 평균 주가 하락률이 38%에 달한 탓이다.


특히 회사를 직접 설립한 창업자들은 보통 비창업 경영진들보다 더 많은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어서 타격이 더 컸다. 7개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들은 총 155억달러를 잃어 평균 손실액이 22억여 달러인 반면, 168개 비창업 경영자들은 268억달러를 잃어 1억 5천여달러의 평균손실액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물론 비창업 경영자들은 주가가 하락하면 스톡옵션을 받을 수 없어 손실이 작다고만은 할 수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창업자 경영진들의 주식 가치가 평균 35% 줄어드는 동안 비창업 경영진들의 주식 가치는 49% 감소했다.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많이 본 기사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