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대통령이 누구란 말인가

오피니언 / 정해용 / 2011-05-23 12:03:33
정해용의 세상읽기 돈이란 고액권일수록 인기가 있게 마련이지만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신사임당(5만원권) 같은 경우는 부피를 최소화해서 되도록 많은 금액을 007가방에 넣어 주고받거나 금고에 감추거나 마늘 밭에 묻을 거라면 몰라도 편의점이나 커피숍에서 일상적으로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사용하기에는 아무래도 번거롭다. 5만원권을 내는 순간 그보다 부피가 몇 배 많은 지폐와 동전을 거슬러 받아야 할 테니까. 신용카드와 약간의 잔돈과 함께 지갑에 소지하여 사용하기 편리한 지폐는 만 원권 정도가 아닐까.
우리가 만 원짜리 선호하듯 미국인들이 부담 없으면서 작지도 않은 액면으로 가장 선호하는 지폐는 20달러짜리다. 미국 달러에는 역대 대통령의 초상이 들어가 있다. 기초화폐인 1달러짜리에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가장 액면이 높은 100달러짜리에는 밴자민 프랭클린의 초상이 들어있다. 가장 인기있는 20달러 화폐에 있는 초상의 주인공은 7대 대통령인 앤드류 잭슨(1767~1845)이다.
어느 나라든지 화폐에 들어가 있는 인물은 그 사회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거나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이다. 영국 돈에는 영국 여왕의 얼굴이, 중국 돈에는 중국 현대사를 일으킨 마오쩌뚱의 얼굴이, 인도 화폐에는 액면에 관계없이 마트마 간디의 초상이 들어가 있다. 이런 상식으로 보면 미국 화폐에 들어있는 역대 대통령들은 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인물들일 게 분명하다. 1달러부터 100달러까지 7종이나 되는 화폐에 각기 ‘인기 있는 대통령’의 초상을 새길 수 있는 미국은 그만큼 긴 공화국 역사의 전통을 자랑하는 셈이 된다. 그렇지만 과연 이들 일곱 명의 대통령들이 미국인 모두에게 이의 없이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일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놀랍지만 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20달러 지폐의 앤드류 잭슨만 해도 한 쪽에서는 ‘잔인한 학살자’라는 오명을 듣고 있기도 하다. 물론 그는 미국 독립의 기반을 확립한 역사적인 인물이다. 영국계 귀족 가문의 대통령들에 이어 평민 출신으로는 최초로 대통령이 되어 신대륙에서 처음 ‘보통 사람의 시대’를 연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가 기존의 정치세력(공화당)과 차별화하여 주도한 신생 정당이 오늘의 민주당의 뿌리가 됐다. 그는 미국의 독립을 방해하기 위해 인디언들을 고용해 기습해오는 유럽 세력과 맞선 일대 소탕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전쟁영웅’이란 대개가 그렇듯이 살육의 전과를 토대로 한다. 1814년 영국과 스페인이 배후를 조종한 크리크족을 소탕하였을 때, 앤드류 잭슨은 800명이나 되는 크리크족 인디언을 학살하고 거죽을 벗겼다. 특히나 그 자손들이 살아남는 것을 막겠다며 여자와 어린이들까지 멸절시킨 사실은 지금까지도 그의 경력에 큰 오점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소탕전의 공로로 그는 곧 장군으로 진급하였고 이듬해 뉴올리언즈에서 직접 침공해온 영국군을 대파한 뒤 전쟁영웅이 떠올라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오늘날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다수의 나라에서 이상적인 대통령의 표상으로 존경받는 미국 16대 에이브러햄 링컨은 어땠을까. 당대에 그에 대한 비난이나 모함이 없는 결점 없는 대통령이었을 거란 상상은 순진하다. 그의 노예제 폐지 정책으로 당장 재산상 손해를 보게 되는 남부를 중심으로 그를 향한 비난과 모함은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으로 좀더 빠른 개혁을 요구하는 극단 공화파들은 그의 개혁이 느슨하다고 비판했다. 결국 상당한 반대자들의 음모가 개입되어 암살에까지 이르렀으니 그도 재임시에 모든 사람들에게 무조건 지지를 받는 운 좋은 정치인만은 아니었음이 명백하다.
재임 중에는 국가 개혁의 상징이었고, 퇴임 후에는 반대자들의 핍박에 못 이겨 결국 죽음을 택한 노무현 대통령의 두 번째 기일을 맞아 한국에서 대통령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아직도 한국은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들끓는 비난과 맹목에 가까운 찬사가 엇갈리는 역사의 용광로 속을 지나고 있다. 고 박정희 대통령만 해도 찬반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한 정치연구소의 여론조사에서 박정희와 노무현은 다시 뽑고 싶은 대통령 1, 2위에 선정됐다고 한다. 찬반은 극명하지만 우리 정치사에서 그들은 여전히 중요한 역사였고 중요한 상징이다. 어느 나라의 대통령들은 완전무결해서 위인으로 칭송받는 게 아니다. 미국의 주요 세력들은(CIA를 움직인) 에이브러햄 링컨의 암살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지만, 그를 존경하는 시민여론이 그를 미국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로 추앙되는 것까지 막지는 않았다. 워싱턴에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높이 5.8미터나 되는 동상이 미국 공화제의 상징처럼 세워졌고, 그 동상의 눈은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을 바라보고 있다.
언제까지 우리는 전직 대통령들의 공과를 놓고 막말 댓거리를 주고받으며, 역사적 정체성의 혼란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그들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모든 감정적 논란을 자제하고 냉정하고 책임 있는 논의를 진지하게 시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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