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 K리그 넘어 한국 축구의 전설로

문화라이프 / 박진호 / 2014-09-06 15:01:39
센추리클럽 자축 2골 … '대표의 자격·가치', 스스로 증명

[토요경제=박진호 기자] “한국 축구사상 나처럼 욕을 많이 먹은 선수는 없을 것이다”


선수 시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인정받았고, 현재는 K리그 최고 명장 중 한 명으로 발돋움한 포항스틸러스의 황선홍 감독이 지난 2002년 월드컵 이후 했던 말이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황선홍 감독이 선수로 뛰었던 당시에는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었다.
황선홍 감독이 겪어야 했던 비판을 넘어선 비난의 고통은 황 감독이 자신의 후계자라고 신인시절부터 점찍어 애지중지했던 이동국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그것은 이동국이 ‘한국축구의 미래’라고 공인받고 관심을 모았던 1998년부터 계속된 일이었다.
포철공고를 졸업하고 포항스틸러스에 입단했던 이동국은 98 프랑스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되며 주목을 받았고,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거침없이 시도했던 중거리 슛 한 방으로 2002년 월드컵을 이끌고 가야할 기대주로 낙점됐다. 그러나 2002년에도, 2006년에도 월드컵에서 이동국의 자리는 없었다.
그러나 숱한 비난과 좌절, 평가절하와 실패에도 이동국은 굴하지 않았다. 끝없는 도전 속에 프로축구 최고참 반열에 들어선 이동국은 K리그의 공격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는 전설로 자리를 잡아갔다.
한때, “이동국을 응원하면 축구를 모르는 것”이라고 비판하던 이들이 인터넷 게시판을 점령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 반대의 시대가 되었다. 사실 이동국은 그때도 지금도 묵묵히 자신의 축구를 하고 있을 뿐이다.
숱한 외풍에도 포기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았던 이동국의 의지 앞에 모든 선수들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대표의 무대도 100경기의 센추리클럽이라는 영광으로 이동국을 맞이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도전했던 미들즈브러 시절의 이동국을 가장 좌절시켰던 골대마저 A매치 100번째 경기에 나선 이동국 앞에서는 겸손했다.
이동국은 미들즈브러 데뷔 경기에서 자신의 전매특허인 발리슛을 시도했지만 골포스트를 맞고 나가는 불운에 아쉬움을 삼켰고, 리그컵 등에서 와신상담 후 기회를 잡아 다시 리그에 나섰을 때도 완벽한 기회에서 시도했던 위력적인 헤딩슛이 크로스바를 때리는 불운에 발목을 잡혔다.
그러나 지난 5일, 베네수엘라와의 경기에서는 골대조차 이동국의 의지를 막지 못했다.
후반 7분, 이동국이 시도한 헤딩슛에 공은 크로스바에 스쳤지만 골문 안으로 향했다. 2007년 10월 1일, 리버풀 구디슨 파크에서 이동국이 루크 영의 크로스를 머리로 연결했을 때보다도 어려운 헤딩이었다. 그때의 크로스바는 골키퍼도 손쓰지 못한 이동국의 슛을 완강하게 거부했었다.
12분 뒤, 상대 수비 실수에 이은 이동국의 슛도 골포스트를 살짝 스쳤지만 역시 공은 골문 안으로 향했다. 2007년 2월 25일, 미들즈브러의 리버사이드 스타디움에서 스튜어트 다우닝의 크로스를 받아 이동국이 시도한 발리슛을 걷어냈던 골포스트와는 달랐다.
세기말 밀레니엄 시기의 이동국은 축구를 넘어선 아이돌이자 아이콘이었다. 해외진출은 커녕 고졸 신인으로 프로팀 소속이었을 뿐이지만, 현재 그 어느 종목의 어떤 선수가 누리고 있는 인기도 당시 이동국의 인기에 비할 수는 없다. 연예인 이상이었다.
국내에서는 이동국의 축구 실력 자체를 놓고 논란이 이어졌지만, 이동국은 각급 대표를 두루 거치는 혹사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해냈고, ‘1998 AFC U-19 챔피언십’ 당시 일본 대표팀을 이끌었던 기요쿠모 에이준(清雲栄純) 전 감독은 “트레이드를 할 수 있다면 오노신지(小野伸二)와 다카하라(高原直泰)를 주고 이동국을 데려오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또한 한 일본 축구 관계자는 2000년대 중반 이동국이 플레이 스타일과 관련해 한국 축구팬들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듣자, “일본에 이동국과 같은 스트라이커가 있었다면 일본 대표팀은 한국 대표팀에게 절대로 지지 않을 것”이라며, 이동국과 같은 공격수를 두고도 질타와 논란을 펼칠 수 있는 한국이 부럽다는 말을 전한 적도 있다.
1998년, 한국 축구의 르네상스를 이끄는 ‘오빠부대의 우상’이자 ‘전국구 스타’였던 이동국이 16년의 시간을 건너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리그를 호령하고 이제 대표팀에서도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다. 대한민국 사상 9번째 센추리클럽 가입, 그리고 필드플레이어로서 최장기간 국가대표에 머문 선수로 기록됐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유지한다면 내년 1월 호주에서 열리는 2015 AFC 아시안컵에 선발되는 것도 당연하다.
골키퍼 포함 최장기간 국가대표 기록은 물론, 이란의 알리 다에이가 갖고 있는 아시안컵 통산 최다골 기록까지 이동국이 갈아 치워야할 새로운 목표가 또다시 그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 K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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