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대부업체와 대출 중개업체들이 인터넷을 통해 대출 신청자의 개인 신용정보를 몰래 빼내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온라인 상에서의 개인정보 유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매해 개인정보 유출이 관련자 뿐 아니라 가족의 정보유출까지 확대되는 등 사태의 심각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심지어 현직 대통령과 총리의 주민등록번호까지 유출 도용된 적도 있을 정도다. 인터넷 강국이라는 명성에는 걸맞지 않은 미흡한 개인정보 보호시스템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개인정보가 노출될 위험에 빠져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법률상 엄격하게 보호받아야 할 개인 금융거래정보 및 사생활 정보가 최근 인터넷을 통해 매매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결과, 지난 19일 고객들의 개인 금융거래정보 및 사생활 정보를 빼내거나 이를 판매한 혐의로 대출 중개업체 Y사 대표 정모씨(33)를 구속하고, 일본계 대부업체 S사의 한국 본부장 타바타 씨(33) 등 총 29개 업체의 임직원 3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2002년부터 인터넷 포털사이트 및 방송 광고 등을 통해 빠르고 쉽게 돈을 대출해 줄 수 있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해 대출신청자를 모집했다. 이후 신용정보 조회 및 본인 확인을 위해 신청자의 시중은행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등이 필요하다고 속여 정보를 알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김모씨(43)는 "광고에 유명 연예인까지 나와서 믿을 수 있고, 빠른 시일 내에 대출이 가능하다 길래 믿었죠"라고 말했다.
특히 이들은 "신용등급을 떨어뜨리지 않으려면 본인이 직접 신용정보를 조회하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고 대출 신청자들을 속여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신용평가기관이 대출자가 고이율의 대부업체을 통해 대출신청이나 신용정보를 조회할 경우, 재산상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해 대출자의 신용등급을 하향평가하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대출자의 기본 개인정보를 얻은 후 해당 은행의 인터넷 사이트 및 콜센터를 통해 신청자의 입출금거래내역을 비롯한 금융거래정보뿐 아니라 월급, 가족 사항등의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취득했다.
이후 개인정보를 무등록 대부업체들에 팔아 총 7억8,000여만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챙겼다. 무직ㆍ여성 대출신청자들의 개인정보는 건당 2만5,000원, 공무원ㆍ샐러리맨들의 경우 3만5,000원에 거래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방식으로 이들이 열람, 판매한 금융거래내역만 100만 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경찰은 대출 신청자의 가족 신용정보까지 몰래 조회한 점을 감안하면 실제 피해자는 2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더욱이 이번 범죄에서 개인정보 유출이 이름, 주민번호 등의 단순 개인정보 차원을 넘어 대상자와 가족의 신용정보까지 확대돼, 무차별적으로 조회했다는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대부업체가 조회한 개인정보에는 신청자의 결혼여부, 가족사항, 주거형태, 주거명의, 동거관계, 동거인 연락처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정보가 저장 돼 있었다.
특히 이들은 돈이 필요한 대출 신청자들의 급박한 심정을 악용, "가족들의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도 대출에 필요하다"고 압박해 이를 입수한 후 가족의 신용정보까지 조회한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이들의 무차별적인 신용정보 조회로, 피해 대출자 가족의 신용등급이 동반 하락했을 가능성도 높다.
염문철 한국개인정보 상무는 "금융권 특히 대부업에서 신용조회를 하면 신용평가점수가 더 내려갈 수 있고, 자주 조회를 하다보면 향후 금융거래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용정보와 무관한 사생활의 정보 수집은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금지돼 있다.
게다가 경찰은 국내 대부업 시장의 90%를 일본계 잠식하고 있는 실정을 미뤄, 피해 대상자와 그 가족의 병역, 직업, 직급, 연봉, 급여일등 각종 개인정보 수백만건이 고스란히 일본으로 유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일본계 대부업체 S사의 본부장은 일본 본사와 정보를 공유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관련 대부업체는 계좌번화와 비밀번호만 알면 시중은행의 인터넷 '빠른 조회서비스'나 '콜센터'를 통해 대상자의 입출금내역등 개인거래정보를 쉽게 열람할 수 있다는 허점을 알고이를 영업으로 활용했다.
이에 경찰은 '금융실명거래 법'에 따라 법원의 영장이나 개인의 서명등 본인 확인이 반드시 필요함에도 이를 거치지 않고 금융거래내역을 함부로 제공, 방조한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수사할 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대부업체뿐 아니라 은행이나 제2금융권도 대출 신청자들의 동의 없이 불법적으로 고객 금융정보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이자가 높은 금융회사부터 본격 수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심각성에도 경찰청은 아직도 안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찰청 본청의 한 관계자는 "개인정보 유출은 늘 있었던 일"이라면서 "외부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내부에서는 그리 큰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정부 부처중 정보통신부가 의욕적으로 인터넷상 개인정보 보호 법률을 추진 중에 있다" 면서 "그를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보통신부는 지난 4월 국무회의에서 '인터넷상 개인정보 보호대책'안을 보고하고 올해 5월까지 121개 각종 포탈 검색 등에 노출된 주민번호(121개 기관 13만4203건)를 삭제했다.
또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인터넷 자율규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2007년 하반기부터 주민번호 대체수단 전면 시행을 목표로 단계별 추진 계획을 마련해 놓고 있다.
정보통신부 개인정보보호팀 배성준 계장은 "온라인 상에서 본인확인 강화수단으로 공인인증서, 신용카드, 계좌, 휴대폰 등 직접 대면을 통해 본인 여부가 확인된 정보를 이용해 신용평가기관에서 온라인에서 주민번호를 대체할 13자리의 임의번호를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강력한 의지 표명에도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다가 지난달 노무현 대통령, 한명숙 총리의 주민등록번호 도용 사건로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다시 한번 불거지자 부랴부랴 관련 업무를 재개하고 나섰다.
지난달 현직 대통령의 주민등록번호가 인터넷상에서 총 416회 사용됐고, 그중 280회는 성인사이트 접속을 위한 성인인증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했다. 또 한명숙 총리도 노 대통령과 함께 리니지, 피망, 넷마블 등의 게임 사이트에도 가입된 것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이는 노무현 대통령의 사례 이전에 이미 오래 전부터 심각한 개인정보 침해로 불거진 문제로, 국내 개인정보 보호 시스템의 허술함을 분명하게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은 국민 4~5명당 1명꼴로 인터넷에 개인정보가 유출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경찰은 2000만명이상의 개인정보가 인터넷상에서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대부분의 인터넷 이용자가 개인정보 유출에 무방비 상태에 처해 있는 셈이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위원은 "주민등록번호제 등 개인 사생활 보호에 취약한 제도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는 미국과 유럽보다 국내 IT산업의 개인정보 노출 위험이 높은 게 사실"이라며 "IT업계와 소비자가 동의할 수 있는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단순히 주민등록번호 제도 개선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보완책 수립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요구된다. 그리고 지금껏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해온 정부의 문제 의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개인정보 유출은 뿌리뽑지 못한 채 되풀이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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