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마 유골, ‘진짜’일까?

산업1 / 전성운 / 2012-06-15 17:25:26
‘무패’ 경주마 ‘이클립스’ 유골 진위 밝혀내

영국 연구팀에 의해 오랫동안 경주마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던 ‘이클립스’라고 이름 붙여진 경주마의 해골이 ‘진짜’ 인지 사실여부가 밝혀졌다. 또 ‘1880년 6월 앱섬더비 우승마’의 진실도 가려졌다. 영국 캠브리지대학 선사시대 말의 가축화 분야 밈 바우워 박사와 로열 베테러너리 대학 연구진팀은 당초 현대 서러브렛마필의 취약점의 유전적 발단을 조사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연구팀은 이를 위해 300두의 서러브렛 마필의 DNA와 마필관련 고문서, 초상화를 분석했고 그 과정에서 서러브렛의 약점은 과거부터 내려온 유전적인 산물이라는 사실과 132년 전 더비의 미스터리까지 풀어냈다.


▲ 뛰어난 경주마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이클립스’의 유골. 그러나 진위 여부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연구를 통해 ‘진짜 유골’ 임이 밝혀졌다.

◇ 명마 ‘이클립스’ 해골의 미스터리
이클립스는 개기일식이 있던 1764년 4월 5일, 이클립스는 영국의 ‘크랜본 로지’ 목장에서 더러브렛의 3대 시조 가운데 하나인 ‘달리 아라비안’의 고손자로 태어났다. 어릴 때는 성질만 사납고 볼품없는 체격의 ‘못된 망아지’에 불과해 목장 사람들은 난폭한 성질을 죽이기 위해 거세까지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클립스는 5살이 되어 처녀 출전한 4마일(약 6㎞) 직선 주로 경주에서 이클립스는 2위와 200m(약 80마일)의 간격을 두고 우승하는 괴력을 선보이며 금방 주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심지어 “이클립스가 가장 먼저 들어왔고, 나머지는 보이지도 않았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


이후의 경주에서도 이클립스는 ‘2위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승리를 밥 먹듯이 거뒀고, 이틀 동안 2번의 경주에 출전해 모두 우승을 하기도 했다. 채찍질이나 박차를 가하지 않아도 절대로 다른 말의 뒤에서 달린 적이 없던 탓에 결국 그 어떤 말도 감히 도전하겠다고 나서지 않아 1771년 7세 은퇴 당시까지 18전 18승 ‘무패’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남겼다.


이클립스의 놀라운 스피드와 스태미너에 호기심을 가진 영국사람들은 1789년 이클립스 사망 직후 부검을 했고 그 결과 그의 성공의 비결이 심장이 141/4파운드(6.5kg)나 나갈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컸던 것이 원인이라고 밝혀냈다.


영국 곳곳에서 여러번의 부검 후 취합된 이클립스의 유골은 현재 로얄 베테리너리 대학에 전시되어 있는데 최근까지도 이클립스 해골이 진짜 이클립스의 뼈가 아니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서 현재 존재하는 이클립스의 후손과 해당 유골의 유전자 분석결과 전시된 해골이 이클립스 것임을 확인했다.


◇ 1880년 6월 앱섬더비의 우승마는 ‘벤드오’ 아닌 ‘태드캐스터’
1880년 6월 앱섬더비에서는 ‘벤드 오’이라는 마필이 ‘로버트 더 데빌’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우승 세레머니도 잠시 2등 마필인 로버트 더 데빌 의 마주는 우승마필인 벤드오는 사실은 태드캐스터(Tadcaster)라는 의문을 제기했고 우승마는 로버트 데빌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벤드오의 어미말은 우승전력이 없는 마필이었고 태드캐스터의 어미말은 우승전력이 있는 마필이었다.


벤드오와 태드캐스터는 웨스트민스터 공작의 목장에서 생산된 마필로 아버지가 같고 어머니가 다른 배다른 형제였다. 아버지의 유전적 특징을 물려받은 두 마필은 세 살 때는 조련사도 못 알아볼 정도로 외적으로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해당 더비우승은 벤드오의 우승으로 결정났고 그 결과 웨스트민스터 공작에게 상금이 수여되고 우승성적 덕분에 벤드오 마주는 계속해서 웨스트민스터 공작 목장과 거래를 할 수 있었다.


당시 두 마필을 관리했던 한 마필관리사는 임종시 “두 마필은 곁에서 본 나도 헷갈릴 정도로 쌍둥이의 모습과 같았다”라고 유서를 남겼지만 웨스트민스터 공작은 마필관리사가 해고당한데 앙심을 품어 거짓말을 한 것으로 의심해 의견을 묵살했다.


밈바우워 교수는 이번 연구과정 중 내츄럴 히스토리 뮤지엄에 설치된 ‘6월 앱섬더비우승마’ 이름의 해골의 DNA와 현재 생존하고 있는 태드캐스터의 후손의 DNA를 검사한 결과 공통인자를 찾아냈고 1880년 6월 앱섬더비의 우승마필은 ‘태드캐스터’임을 밝혔다.


이번 발견은 해부 유전학과 수의학에 유전학 분석의 성공적인 사례로 기록됐다. 밈바우어교수는 “앞으로 수의학분야의 유전학 연구를 통해 마필의 유전학적 체질 판명과 그에 따른 유전학적 치료방법까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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