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용 칼럼] 삶의 질과 ‘시간빈곤층’

문화·라이프 / 권희용 / 2014-11-07 17:16:21

▲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전 국정신문 편집장
P씨 내외는 재래시장 어귀에서 가정식 백반 집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로 25년째가 된다. 시장 인근에서는 그런대로 장사가 되는 집으로 소문난 음식집이다.

처음에는 P씨의 부인이 벌인 식당이었다. 중소기업에서 기술자로 일하던 남편의 수입으로는 세 명의 아이들과 살아가기가 아무래도 어려워 빚을 내서 시작한 밥집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회사에서 일하던 P씨가 산업재해를 입어 부득이 회사를 그만두자 아내의 가게를 돕기 시작한 것이 어언 20여년이 되었다. 이제는 P씨가 사장이 된 셈이다.

그들의 일과는 새벽 5시부터 시작된다. P씨는 시장에서 가까운 구리시장으로 차를 몰고 달려간다. 그날 쓸 식료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다. 비슷한 시간 부인은 집에서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놓고 식당으로 향한다. 그리고 남편이 구입해온 음식재료를 손질한다. 종업원 아주머니 한분이 일손을 돕는다.

늦어도 오전 10시전에 준비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 남편도 거들어 가까스로 손님 맞을 채비를 한다. 그런 중간 중간에 한 두 손님들에게 조반을 차려낸다. 거의 숨 돌릴 짬이 없을 정도로 부부는 일사분란하게 몸을 움직인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뿐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네다섯 시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손님이 뜸하다. 그러나 설거지를 해야 할 그릇이 산더미처럼 손길을 기다린다. 모두 정리하고 돌아서면 곧장 저녁손님들을 맞이해야 한다.

그렇게 밤일을 하고 나면 저녁 10시가 지난다. 대충 가게 안을 정리하고 부부는 귀가 길에 나선다. 그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늘 자정 이 지나서다. 아이들과 눈 마주친 때가 언제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나이 60이 코앞인 P씨 부부의 생각은 오직 한 가지, '이렇게라도 해서 다섯 식구 먹고사는 것이 다행'이라는….

C씨는 결혼 5년차로 직장에 다니는 삼십대 중반의 여성이다. 남편과의 사이에 남자아이 하나를 두고 있다. 남편은 해외출장이 잦은 삼십대 후반의 대기업 중간간부. 부부가 서로 바쁘다는 이유로 둘째 아이를 갖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도 않았다.

지금 다섯 살인 애를 돌보기 위해 돌봄이 아주머니를 1주일에 5일간 출퇴근을 하는 조건으로 고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출근을 해야 할 때가 있어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니 둘째를 낳을 생각이 없다. 여성인 C씨의 경우가 남편보다 시간부족을 더 심각하게 느낀다.

대개 주당 근로시간이 36~50시간 수준인 상용직 근로자의 경우 여성이 70%정도의 시간부족률 인데 비해 남성은 36%여서 거의 2배에 달한다는 조사였다.

최근 이 같은 조사내용을 발표한 한국고용정보원(미국 레비경제연구소 공동연구)은 '소득과 시간빈곤 계층을 위한 고용복지정책수립방안'을 통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 보장되지 않아 시간부족이 생기는 것을 '시간빈곤층'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 2009년 통계청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간사용 조사에 따르면 18~70세 개인이 평균 1주일에 필요한 개인 돌봄 시간은 최소 76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테면 수면, 씻기, 먹기, 휴식하기 등에 필요한 시간과 여가 등 개인이 쓰는 필수레저시간이 주당 14시간가량으로 조사되었다.

식당을 경영하는 P씨 네와 C씨 부부의 경우, 모두 '시간빈곤층'에 속한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다소 차이는 있다고는 해도 먹고사는 만큼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두 가구 구성원의 공통점은 개인적으로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없는 새로운 개념의 빈곤층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질(質)이 보다 중요해진 삶을 따지는 시대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대한민국의 현주소에 대한 성찰이 긴요한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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