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 계파전쟁 대리전
오는 6․4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를 놓고 전전긍긍하던 새누리당의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진행된 대선과 총선, 그리고 재보선에서도 연전연승을 거듭하고 있는 새누리당은 이번 지방선거에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모든 지역에서의 선거가 중요하지만 지방선거에서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민주당에게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박원순을 잡아라”
김문수 경기지사가 3선 도전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공식화 한 가운데 민주당의 중견 거물 정치인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지며 마땅한 대항마가 없어 고민 중인 새누리당은 박원순이라는 철옹성이 지키고 있는 서울시장 선거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의 후보로 다음 서울시장 선거에도 나설 예정인 박 시장은 현재 시정지지도는 물론 지방선거 예측 설문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박 시장은 새누리당과의 양자대결은 물론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신당이 가세한 3자 구도에서도 10% 이상의 차이를 보이며 시장에 재선될 것이라는 게 주요 설문조사의 결과다. 서울시 역시 경기도와 마찬가지로 정당과 정치성향보다는 인물에 의해 결과가 좌우되는 경향이 많아 새누리당은 대중의 관심을 끌어 모을 수 있는 강력한 카드 찾기에 고심해왔고, 이에 따라 정몽준 의원과 김황식 총리 등이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후보군에 오른 거물급 주자들은 연초까지만 해도 서울시장 출마와 관련해 꾸준히 부정적, 혹은 유보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정몽준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시장 자리를 내줄 수 없다는 당내 분위기 속에 정 의원이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강력하게 대두됐지만, 정 의원은 이에 대해 거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대선 도전의 발판을 위해 시장 선거에 나간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완곡하게 고사의 뜻을 나타낸 데 이어, “당 대표까지 한 사람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할 것”이라며 불쾌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는 서울시장 도전 자체가 정 의원에게 ‘확률 낮은 도박’이었기에 나타낸 반응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당선확률 높아지자 정몽준도 눈독
정 의원이 시정지지율과 여론조사에서 다른 후보들을 압도하고 있는 박원순 시장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경우 새누리당 내에서의 입지는 물론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행보도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선거에서 패했을 때는 그와 반대로 너무 많은 것을 잃게 된다는 위험이 있다. 지방선거에서도 이기지 못한 인물로 대선에 나설 수는 없다는 여론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잠룡으로 평가받고 있는 손학규 상임고문은 이미 지난 2011년, 4·27 재보선 당시 지금의 정 의원과 같은 상황에 놓였고, 사실상 승산이 거의 없다는 전망이 나왔던 분당을 지역에 마지못해 나섰다. 손 의원은 ‘정치 생명을 건 도박’이라는 평가 속에 도전한 당시의 재보선에서 승리하며 민주당의 ‘백마 탄 왕자’가 됐지만, 결국 대선 후보 경쟁에서는 고배를 마신 바 있다. 때문에 이러한 전례를 잘 알고 있는 정 의원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서울시장 선거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 타당성을 얻었다.
그런데 정 의원의 입장이 바뀌기 시작했다. 거듭해서 서울시장 자리에 관심이 없다고 밝혔던 정 의원은 홍문종 사무총장의 공식 출마 요청을 받은 뒤 “숙고하겠다”고 변화의 여지를 남겼다. 이는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신당 창당을 공식화하고 서울시장 선거에 반드시 후보를 낼 것이라고 공언한 시기와 궤를 같이 한다. 그래서 정 의원의 이러한 입장 변화에 대해 박원순 시장과의 지지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10%이상 뒤지는 결과가 부담됐던 정 의원이 안철수 신당의 참여로 박 시장의 지지층이 분열되며 승산을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여전히 정 의원은 서울시장 경선에 나서겠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난 11일, 백범기념관에서 진행된 이혜훈 최고위원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 선언식에 참석하여 서울시장 경선 출마에 대해 고려하고 있음을 밝혔고, “이 최고위원의 선언식을 보니 준비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여운을 남겼다. 지난 20일 한·중 의원 외교차 중국을 공식 방문하는 정 의원은 중국 방문 뒤 출마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전했다.
각하는 김황식을 원한다?
하지만 정 의원이 불출마에서 출마 쪽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새누리당내의 기류도 조금씩 변화가 보이고 있다. 박원순 시장의 대항마로 정 의원을 지지하던 목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정 의원이 아닌 김황식 전 총리를 적임자로 내세우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이 김 전 총리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당내 친박계가 대대적으로 김 전 총리를 지지하면서 정 의원의 입장이 난처하게 됐다. 새누리당의 정우택 최고 위원은 박 대통령이 특정인사를 지지한 적이 없다고 해명하기도 했지만, 정계에서는 박 대통령이 자신과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때로는 비판도 서슴지 않고 있는 정 의원보다 김 전 총리를 밀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후보 경선? 이제는 계파전쟁이다
그러자 새누리당의 서울시장 후보 경선은 단순히 총선을 위한 전초전의 성격을 떠나 당내 계파 갈등의 대리전으로 치닫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비주류로 밀려난 친이계가 대대적으로 정 의원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친이계의 좌장이라 할 수 있는 이재오 의원은 직접 “정 의원이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면 선대위원장을 맡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새누리당이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김 전 총리를 끌어드리는 것은 흥행만 노리는 처사”라고 비판하고,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울시장 출마 문제가 직접적으로 연루된 것은 아니지만 지난 19일 벌어졌던 정 의원과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와의 설전도 이러한 분위기의 방증으로 평가된다. 정 의원과 최 원내대표는 지난 19일 진행된 새누리당의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정 의원의 중국 방문 등을 놓고 대화를 진행하다가 고성이 오가는 언쟁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내에서 계파간의 주도권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새누리당의 분위기에 끌려가던 정 의원이 이제는 전면에 나서 당권과 차기 대권을 향한 강력한 행보를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1월 초 여론조사에서 박원순 시장에게 10% 이상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던 정 의원은 본격적인 출마 가능성이 제기된 후 꾸준히 박 시장과의 격차를 줄였으며 현재는 1~2%내의 오차범위까지 접근했다. 또한 여론조사 기관에 따라서는 정 의원의 지지도가 박 시장을 넘어섰다는 결과를 내는 곳도 있다. 정 의원은 게다가 김 전 총리와의 인물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근소한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차기 대권 후보로도 가장 유력한 인물이라는 조사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장 자리를 되찾기 위한 새누리당의 궁여지책에서 이제는 계파갈등과 당내 주도권 싸움, 그리고 차기 대권까지의 청사진을 그려야 하는 큰 판으로 번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 의원이 내릴 선택에 정치권이 긴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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