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수도권 지하철 분당선 객실 한가운데 휴지가 덮인 배설물 사진이 올라왔다. 이보다 앞서 3월26일에는 지하철 5호선 객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던 여성이 이를 제지하는 남성에게 맥주를 뿌리는 영상이 공개됐다.
툭하면 터지는 안전사고에 ‘경춘선 술판 등산객’, ‘분당선 대변녀’까지 지하철이 연이은 사건ㆍ사고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이런 경범죄를 막기 위한 인력은 턱 없이 부족해, 제대로 된 단속 및 예방 활동이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 추태로 얼룩진 지하철… 시민들 “이용하기 겁나”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회사원 김경환(33)씨는 “그렇지 않아도 운행 지연과 같은 사고 때문에 불안한데 이런 불미스러운 일까지 벌어져 지하철 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며 “기름 값 때문에 지하철을 이용했는데 다시 차를 타고 다닐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박명화(45ㆍ여)씨는 “이제는 집 앞에 마중 나가는 일도 소용없게 됐다. 아이들이 지하철로 등하교를 하면서 잘못된 것을 보고 배우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하루에 수백만 명이 이용하는 시설관리가 이렇게 허술해서야 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건 직후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혐오스럽다’ ‘상식없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부끄럽다’, ‘지하철 타기 겁난다’,‘언제부터 사람들이 이렇게 막 나가게 된 건지 씁쓸하다’, ‘아무리 급했어도 너무했다’ 등 비판과 자성론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시민의 발인 지하철은 성추행, 소매치기부터 오물투척, 취객들의 난동 등 온갖 추태로 얼룩져 있다. 서울지하철경찰대는 지난 해 서울지역 지하철에서 총 1974건의 범죄 검거 건수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처벌되지 않은 사건이나 경범죄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레일이 운영하는 분당선ㆍ중앙선 등을 관할하는 국토해양부 철도특별사법경찰대에 따르면 지난해 흡연, 소란, 오물 투척 등과 같은 경범죄가 총 166건 가운데 62%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 인력 부족 극심… 제대로 된 단속ㆍ예방 활동 어려워
그럼에도 단속인력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지하철경찰대는 2010년 120명에서 지난해 104명으로 감소했다. 여기서 행정직을 제외하면 현장에 나갈 수 인원은 더욱 줄어든다. 이들이 담당하는 구역은 서울 내 343개 역이다.
서울지방철도 특별사법경찰대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특별사법경찰대 관계자는 “21명의 인원으로 100여개가 넘는 역을 담당하다 보니 사실상 제대로 된 단속이 불가능하다”면서 “여건상 강력범죄 위주로만 단속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건이 발생해도 현장에서 적발되는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하철 대변녀’ 사건과 관련, 논란이 일자 경기경찰청 지하철수사대와 국토부 철도특별사법경찰대가 뒤늦게 수사에 착수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단서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적발되는 경우라도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분당선 ‘지하철 담배녀’ 당사자는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범칙금 3만원을 물게 돼 있지만 당시 역무원이 별다른 조치 없이 이 여성을 귀가 조치했다가 뒤늦게 문제가 됐다.
최근에는 서울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에서 중년의 여성이 다른 승객이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썼다는 이유로 난동을 피워 열차 운행이 3분간 지연됐다. 이날 사고로 퇴근길 승객 수천 명이 불편을 겪었지만 이 여성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서울 지하철 1호선 전동차 안에서 40대 여성이 술에 취해 옷을 벗고 소란을 피우는 사건도 벌어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 여성은 옷을 벗은 채 승객들에게 욕설을 하는 등 행패를 부렸다. 하지만 정신이 온전치 않다는 이유로 귀가 조치됐다.
◇ 제2의 ‘지하철 ○○녀’ 사건 막으려면 확실한 경범죄 처벌 이루어져야
전문가들은 제2의 ‘지하철 ○○녀’와 유사한 사건이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들도 “지하철 내 흡연으로 불이라도 났으면 제2의 대구 지하철 사건으로 이어 질 수 있었다”며 “공공시설에서의 경범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콩에서는 지하철 내에서 음식물을 섭취해도 2000달러(29만원 상당)의 벌금을 문다. 흡연을 할 경우에는 5000달러(73만원 상당)의 벌금을 내야 한다. 싱가포르는 지하철에서 담배를 피우면 1000달러(90만원 상당), 인화성 물질을 가지고 타면 5000달러(45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김영식 서원대 법경찰학과 교수는 “지하철 내 범죄 단속을 경찰에 전가한다는 것은 비효율”이라며 “지하철 내 시민들의 안전 확보를 위한 전문적인 인력이 확보된다면 좀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경범죄 처벌 강화에 대해서는 “처벌의 엄격성보다는 확실성이 더 필요한 시기”라며 “경범죄 행위를 저질렀을 때 반드시 처벌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공공질서 확립에 최우선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탁종연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비상식적인 지하철 사건을 빠른 민주화로 성장한 부작용의 한 단면이라고 분석했다. 탁 교수는 “우리나라가 빠르게 민주화로 발전하다 보니 ‘자유방임’을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도록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며 “경범죄 처벌시 ‘경찰이 너무한다’는 의식보다는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 서울시 “지하철경찰대와의 업무협약으로 지속적인 단속 실시할 것”
한편 국토해양부는 최근 경범죄처벌법이 개정되면서 2013년부터 철도경찰(‘지하철경찰대’등 경찰청 소속 일반경찰과 달리, 철도역사 및 차량 내의 범죄를 단속하기 위한 국토해양부 소속 특별사법경찰)이 철도 내 음주ㆍ소란 등 경범 사건이 발생하면 철도경찰이 직접 범칙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그동안 철도경찰은 직접 처분권이 없어 경범죄 해당자를 일반 경찰에 인계해왔다.
또 서울시 도시교통본부는 오는 6월24일까지 지하철보안관과 지하철경찰대 합동으로 서울 시내 지하철 중 이용 시민이 많은 15개 구간을 선정해 집중 순찰을 벌인다고 밝혔다.
서울메트로ㆍ도시철도공사ㆍ서울9호선운영(주) 등 서울지하철운영기관과 서울지방경찰청은 시민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지하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상호 협조하기로 하고,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서울시는 두 기관 간의 협약이 그동안 사법권이 없어 범죄가 의심되는 경우에도 수사를 하거나 직접 처벌할 수 없었던 지하철보안관의 업무상 한계와, 적은 인원으로 서울시내 모든 지하철 구간을 관리해야 했던 지하철경찰대의 어려움이 상호 보완돼 업무 효율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하철 운영기관과 경찰은 이번 합동순찰을 벌이기 위해 서울 시내 지하철 중 이용 시민이 많고, 역사 및 열차 내 범죄 신고 등이 접수된 적이 있는 구간을 중심으로 서울역∼청량리(1호선), 방화∼여의나루(5호선) 등 총 15개 구간을 선정했다.
지금까지 지하철보안관과 경찰대는 각자 중복되지 않는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해 왔으나 이번 합동순찰 기간 동안에는 지하철보안관과 경찰 각 1명, 2인 1조로 정기적인 순찰을 실시할 방침이다.
이병한 서울시 교통정책과장은 “이번 업무협약을 통해 지하철 내 질서저해사범 단속이 더욱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지하철보안관과 경찰 합동순찰을 정기적으로 실시해 안심하고 탈 수 있는 지하철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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