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헨티나 프로팀 산 로렌조 데 알마그로를 응원하는 열광적인 축구팬. 휠덜린의 시와 보르헤스, 도스토옙스키를 즐겨 인용하는 문학애호가.‘반지의 제왕’과 ‘바베트의 만찬’을 제일로 꼽는 영화팬. 그리고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선택한 예수회출신의 교황.
이달 14일 방한을 앞두고 프란치스코 교황(Francis Jorge Mario Bergoglio)(78)에 대한 한국에서의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3월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이래 자본주의의 탐욕과 세계적인 빈부의 양극화 등을 비판하고 약자와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를 거듭 천명한 강론과 메시지, 최근 외신을 통해 알려진 중동 성지 순례에서의 파격 행보 등으로 프란치스코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교황 첫 행사 …朴대통령 만남
박근혜 대통령이 방한 나흘을 앞둔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14일 만남에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을 지 주목된다.
박 대통령도 취임 초부터 네 차례에 걸쳐 친서를 보내고 지난해 10월 청와대에서 만난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 페르난도 필로니 추기경에게는 “교황님께서 상당히 바쁘신 일정을 갖고 계신 줄 잘 알고 있지만 꼭 방한해 주셨으면 한다”고 요청하는 등 교황의 방한을 위해 적잖이 공을 들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지난 5일 국무회의에서 “국가적으로도 행운과 축복이 찾아드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단순히 천주교만의 행사가 아니라 세계적인 종교지도자께서 방한해서 이 땅에 평화와 사랑을 전하는 의미 있는 행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즉위 직후인 지난해 3월31일 부활 대축일 강복 메시지를 통해 “아시아, 특히 한반도의 평화를 빈다”면서 “그곳에서 평화가 회복되고 새로운 화해의 정신이 자라나기를 빈다”고 기원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박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14일 접견을 통해 나올 메시지도 지구촌의 마지막 냉전지역인 한반도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염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반도 평화 정착 위한 도움 요청 가능성
특히, 두 정상 간의 접견은 북한이 아시안게임 선수단 및 응원단 파견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박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가 담길 8·15 광복절 경축식 하루 전에 열리는 것이어서 남북관계의 향방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나오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교황의 많은 관심과 도움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남북한이 대화를 통한 평화적 방법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 화해를 이뤄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신앙의 자유를 포함한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의 이산가족 고통 해소 등에 한목소리를 낼 전망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18일 천주교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집전하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참석해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어서 박 대통령과의 접견에서도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이 해마다 고령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의 사과도 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있는 점을 언급한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을 표하고 위로의 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본 정부의 사과와 보상 문제는 외교·정치적 사안으로 결부될 수 있는 만큼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성 인권이나 종교적 관점에서 위안부 문제를 언급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박 대통령과 천주교와의 인연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공식적으로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천주교 학교인 성심여고와 서강대를 다녔으며 중학교 시절 ‘율리아나’란 세례명도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천주교계에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과 관련한 시국 미사가 이어지고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에서 퇴진 요구까지 나오면서 천주교계와 불편한 관계가 형성되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당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천주교 시국미사에 불쾌감을 느낀 듯 “지금 국내외의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는 행동들이 많다”며 “저와 정부는 국민들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분열을 야기하는 이런 일들은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교황, 세월호 희생자 가족·생존학생 면담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기간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과 생존 학생을 직접 만난다.
천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5일 “교황이 8월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 참석하는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 학생을 따로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허 신부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광화문광장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희생자 가족들을 만나 시복식 행사 당일 협조를 부탁했고 이들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앞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 대표들은 지난 5월30일 서울대교구청에서 염수정 추기경을 통해 교황과의 만남을 요청했다. 한국 천주교회 건의로 교황청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더 많이 참석할 수 있도록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에 초대하기로 했다. 교황은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 중 강론을 통해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을 위로할 예정이다.
북한 천주교 신자 초청과 관련해서는 “지난달 말 북한 천주교 관계자들이 참석이 어렵다고 전해왔다”면서 “아직 시간이 있어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북한 천주교 신자들이 교황 행사에 꼭 참석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답했다.
교황, 4박 5일 동안 어디서?
바티칸 뉴스포털 뉴스닷바에 따르면, 교황은 8월13일 오후 4시 이탈리아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을 출발해 14일 오전 10시30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다.
낮 12시 주한교황대사관에서 개인 미사를 하고 오후 3시35분 청와대 정원에서 열리는 환영식에 참석한다. 교황은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하고 주요 공직자들을 만나 연설한다. 이어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한국 주교단을 만난다.
15일에는 대전에서 아시아 청년들과 점심을 하며 친교를 나눈다. 이 자리에는 교구장 주교를 포함해 20명의 아시아 젊은이가 함께한다. 대전교구 교황방한준비위원회 차원에서 대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이어 성 김대건 신부의 생가터인 솔뫼 성지에서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가한 아시아의 청년들을 만나 그들의 고민을 듣고 교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이 있는지 함께 나눈다. 청년들을 위한 연설도 한다.
교황은 이날 오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한국 신자들과 함께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한다. 이 미사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초대된다.
16일에는 교황이 한국 천주교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 미사를 집전한다. 지역 교회를 찾아 교황이 시복식을 주례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초기 한국교회의 중추적인 인물들이 시복되는 이날 미사는 수도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 앞에서 열린다.
17일에는 충남 해미순교성지를 방문해 아시아 주교들을 만나고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 미사를 집전한다. 아시아 청년대회에는 23개국에서 2000명의 청년과 4000명의 한국 청년 신자가 참석할 예정이다.
18일 오전에는 7대 종단 지도자를 만난다. 염수정 추기경은 교황 방한에 앞서 지난달 29일 7대 종단 지도자와 오찬을 하며 교황과의 만남과 명동대성당에서 열리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초청했다. 7대 종단 지도자들은 지난 9일 교황 방한 환영 메시지를 발표했다.
이날 오전 9시45분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명동대성당에서 봉헌한다. 교황은 미사에서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오후 1시 로마로 떠난다.
정부는 교황에게 국빈 방문에 따르는 예우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이 시대의 행복 10계명’ 제시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고국 아르헨티나의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가족이 함께 식사할 때는 대화에 방해되므로 TV를 끌 것’, ‘다른 사람을 개종하려고 들지 말 것’ 등 경험에서 우러나온 행복 지침을 내놓았다.
그는 “TV는 뉴스를 확인할 때 유용한 수단이지만 식사를 할 때는 가족 간 대화를 단절하므로 끄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사고방식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으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다른 사람을 개종시키려고 하는 것은 최악의 방식"이라며 타인의 신념을 존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무엇보다 독립적이고 열린 삶의 자세를 강조했다. 그는 제1의 과제로 “자신의 삶을 살되, 남들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스스로의 길을 가되, 타인의 삶 또한 존중하자는 것이다. 그는 또 “나는 연못과 같이 느리고 고요하면서도 끊임없이 흐르는 삶의 상태를 좋아한다”며 친절하고 겸손하게 ‘조용히 전진하자’고 권고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다른 이의 믿음을 존중하고, 개종시키려 들지 말자”고 파격 제안을 했다. 그는 “교회의 성장은 개종 시도가 아니라 매혹시킴을 통해 가능한 것”이라며 “나는 당신을 설복시키기 위해 말한다는 태도야말로 최악의 종교적 태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마음을 타인에게 열자”고 주문했다. “마음을 닫는 순간 자기중심적이 된다. 고인 물은 썩는다”고 말했다.
교황은 건강한 여가로 삶에 여유를 찾자고 했다. 그는 “소비주의가 불안과 스트레스를 초래하고 건강한 여가 문화를 앗아갔다. 일하느라 아이들과 놀 시간을 갖기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반드시 시간을 내야 한다”고 했다. 또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보내자”,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자”고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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