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이 뭐길래…노·사·정 갈등 ‘재점화’

산업1 / 최병춘 / 2014-01-24 15:39:39
정부 통상임금 지침 발표 ‘후폭풍’

▲ 고용노동부장관이 2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4년도 고용노동부 전국 근로개선지도과장 회의'에 참석,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고용부 “재직자만 주는 상여금 통상임금 아냐” 논란
노동계 반발 확산 “대법원 판결을 뒤집은 정부 꼼수”


[토요경제=최병춘 기자] 통상임금이란 기본급과 각종 수당을 포함한, 근로자에게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을 말한다. 통상임금은 야근, 특근 등 각종 수당산정의 기준이 됨은 물론 평균임금과 퇴직금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통상임금 산정법이 기업마다 제각기 다르게 적용하면서 근로자와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 정기적·고정적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면서 통상임금의 범위에 대한 법적기준이 확대됐다. 이에 임금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하는 경영계의 불만이 커졌고 일부 기업에서는 통상임금 줄이기 ‘꼼수’가 난무하기도 했다. 결국 정부가 판결을 토대로 한 지침을 발표했지만 이번에는 노동계가 통상임금 줄이기 위한 ‘정부의 꼼수’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오히려 혼란과 갈등만 야기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고용부 “고정적인 상여금은 통상임금”


고용노동부는 23일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을 확정·발표했다.


고용부는 이날 오전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에서 방하남 장관 주재로 ‘전국 근로개선지도과장 회의’를 열고 이 같은 지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은 지난해 12월18일 대법원 전원 합의체의 통상임금 관련 판결에 따른 후속조치로 일선의 근로감독관에게 시달될 노사지도 가이드라인이다.


대법원은 당시 정기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고, 재직자에게만 지급되는 생일축하금, 휴가비, 김장보너스 등의 복리후생비는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린 바 있다.


고용부는 대법원 전합 판결의 법리와 취지와 관련해 그동안 노사단체, 관계부처, 학계 및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한 뒤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에 명확한 해석기준과 지방노동관서의 노사교섭 지도 방향 등을 포함시켰다고 전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노사는 전합 판결에서 제시한 통상임금 판단기준인 정기성·일률성·고정성 요건 등을 이 지침에 따라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렸다.


법원은 금품의 명칭이 아니라 실질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각 사업장에서는 상여금과 제수당이라는 명칭보다 지급조건과 운용실태 등 객관적 성질을 기준으로 통상임금성을 판단토록 했다.


이에 따라 고용부는 이번 지침에서 정기적·고정적·일률적 요건을 갖춘 모든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정의했다. 다만 업무실적에 따라 달라지는 성과급은 일반적으로 통상임금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가령 실적 최하등급을 받은 근로자에게도 100만 원의 기본성과급을 주면 이는 통상임금이라는 것이다. 또 전년도 업무실적에 따라 당해연도에 지급되는 성과급도 이미 사전에 정해진 ‘고정적’ 임금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통상임금이다. 명절상여금, 휴가비 등 복리후생수당도 특정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가 아니어도 근무기간을 반영해 지급된다면 이 또한 통상임금에 포함된다.


하지만 정기상여금이라 할지라도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할 경우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 통상임금 요건 중 하나인 고정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예를 들어 매달 30일에 정기상여금이 지급될 경우 같은 달 20일에 퇴직한 근로자가 20일치의 상여금을 지급받는다면 통상임금으로 포함된다. 상여금을 고정적인 금액으로 간주, 근무일수별로 산정해서 퇴사자에게 지급한 경우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퇴직자에게 지급하지 않으면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해석이다. 고용부가 100여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3분의 1 정도만 퇴직 근무자에게 일할 지급(근무일에 따라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수당도 그 지급 성격에 따라 통상임금 여부가 갈린다. 부양가족이 실제 있는 근로자에게만 지급되거나 가족 수에 따라 차등해 준다면 통상임금이 아니지만, 모든 근로자에게 기본금액을 가족수당 명목으로 지급하다면 이는 통상임금으로 잡히게 된다.


고용부는 기존 예규에서 통상임금 요건으로 규정했던 1임금지급기(1개월)는 대법원 판결대로 폐지했다. 지급 간격이 1개월을 넘는 상여금도 통상임금이라는 얘기다.


아울러 고용부는 대법원에서 임금 소급청구를 제한한 판결의 적용 시점을 올해 임금협상 전까지로 결정했다. 고용부는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적용 기간과 관련해 전원 판결이 통상임금 판단 기준을 명확히 제시했고 신의칙을 인정한 취지에 비춰볼 때 당초 합의기간 만료 전에 노사가 성실히 협의해야 한다는 점을 가이드 라인으로 제시했다. 신의칙은 당사자는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해야 하고,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말한다.


정부는 가급적 상반기 중에 원만하게 해결하도록 지도하되 임단협의 경우 임금총액을 기준으로 임금조정을 해 온 관행에 따라 임단협 만료 기간을 기준으로 한다는 방침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신의칙’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판결 적용 시점마저 대법 선고일이 아닌 올해 임협 전까지로 해석한 것이다. 이는 ‘현재의 임금협약이 만료된 이후 판결을 적용해야 한다’는 경영계 측 입장과 맥을 같이 한다.


방하남 장관은 “오는 2월부터 상반기 동안 전국의 근로감독관들은 산업현장의 안정 분위기 조성과 사업장의 미래지향적 임금체계 개편 지원을 위해 비상근무 체제로 총력을 다해달라”고 지시했다.


이어 “지금은 새로운 룰을 적용하는 전환기로서, 장기적 관점에서 노사가 삶의 질과 생산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이라며 “노사가 소송 등 단기적 이익 다툼보다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우리 산업과 개별 기업에 잘 맞는 임금체계로 개편해 노사 상생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고용부는 향후 노사의 임금체계 개편 노력을 지원하기 위하여 지방관서별로 ‘임금체계·근로시간 개편 지원단’을 구성하고, 설명회 및 현장 노사간담회, 컨설팅 등을 집중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 지난 15일 경기 수원 경기중소기업지원센터에서 열린 '통상임금 판결에 따른 중소기업 대처방안 및 2014년 중소기업 지원시책 설명회'
◇노동계 “정부의 꼼수” 반발


하지만 고용부 이 같은 결정에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고용노동부가 ‘통상 임금’에 포함되는 ‘정기 상여금’ 범위를 대법원 판결보다 대폭 줄여다는 판단이다. 특히 특정시점 재직 근로자의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점과 임금 소급청구 적용 시점을 대법 판결이 아닌 올해 임단협 만료시기로 잡은 것에 대해 “법원 판결을 뒤집은 행위”라며 비판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통상임금에 대한 잘못된 행정해석으로 노사간의 분란을 만들어 온 노동부가 이번에는 어설픈 지침을 만들어 또다시 현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어 이번 고용노동부 지침에 대해 “모든 상여금과 수당 등에 ‘재직자’ 기준을 추가하려는 사측의 편법을 조장할 여지가 크다”며 “‘재직자만’이라는 추가 조건을 붙이면 통상 임금성이 부인된다는 논리는, 기본급도 ‘재직자만’ 지급한다고 하면 통상 임금에서 제외된다는 터무니없는 논리”라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기 상여금 등은 소정 근로의 대가라는 성격이 명확한 통상 임금이라고 판결했다”며 “오히려 정기 상여금이 근로의 대가에 해당한다는 것이 분명한 이상 퇴직자에게 근무일수에 비례한 임금 지급 청구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기존 대법원의 입장”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정기상여금을 특정시점에 재직하는 근로자에게만 지급하는 경우 통상임금이 아니라면 모든 상여금 및 수당 등에 재직자 기준을 추가하려는 사측의 편법을 조장할 여지가 크다”고 반발했다.


또 “추가임금 청구로 기업 존립이 위태롭게 될 때만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이 적용된다는 대법원 판결 취지를 정부가 과대 포장했다”면서 “신의칙이 단협 유효기간까지 적용된다는 것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은 “노동부가 철저한 반성과 함께 이번 지침과 기존 통상임금 예규를 폐지하지 않고 기업편향적 정책을 계속하는 한 노사정 대화는 불가능하다”면서 “정부의 지첨에 대한 대응지침을 만들어 다음주 초 산하조직에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역시 성명을 통해 “애초에 정치적 판결이었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사용자에게 더 유리하게 해석했고 혼란의 근원인 예규를 변경하지 않은 채 지침이라는 꼼수를 동원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성토했다. 민주노총은 오는 24일 노동부 지침의 문제점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통상임금문제가 노동계와 고용노동부·경영계간 갈등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재계, 입단협 앞두고 신중한 반응


정부 지침에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재계는 신중한 반응을 나타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그대로 반영해 기존의 통상임금 해석 기준을 수정한 데 대해서는 재계 단체들을 중심으로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논란이 되는 통상임금 소급청구 불허 시점이 올해 임단협까지 유지된다고 못 박은 부분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정부가 이번 지침을 통해 기존 통상임금 요건이던 1임금지급기(1개월)를 사실상 폐지한 데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고용노동부 예규가 1988년 제정된 이후 장기간 효력을 유지해 오던 1임금지급기 요건이 없어지면 정책 혼선이 불가피하고 기업이 짊어질 부담 역시 막대해진다는 것이다.


아울러 노사가 합의했다면 그 내용대로 통상임금의 범위를 정할 수 있도록 입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고수했다.


경총 측은 “오랜 기간 통상임금 산정 지침을 기초로 신뢰와 관행이 형성돼 온 만큼 고용노동부는 1임금지급기의 명시와 통상임금 범위에 대한 노사합의 인정 등 입법 방향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정부 지침에서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에 따른 소급청구 불허 시점이 올해 임단협까지 유지된다는 점을 명시한 데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분쟁이 잦아질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이번 지침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을 해설한 수준”이라며 “판결 이후 제기된 정기상여금에 대한 신의칙 적용 여부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다소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초과근로가 많은 완성차 업체의 속성상 통상임금 사안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현대·기아차그룹은 원론적 입장만 내놓고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한편, 이번 정부가 통상임금 지침을 마련했음에도 혼란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경총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직후 발표된 노동계의 판결 불복 입장과 통상임금 소송 관련 지침 내용에 비춰보면, 올해 임단협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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