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KB스타즈와 청주시가 보여준 '프로의 자격'

문화·라이프 / 박진호 / 2014-11-02 13:35:01

[토요경제=박진호 기자] KB국민은행 2014~15 여자프로농구가 개막식이 진행된 청주는 여자 농구의 열기가 가장 뜨거운 도시다. 특히 청주체육관은 WKBL에서 가장 많은 관중이 찾는 경기장으로 한국 여자농구의 새로운 메카로 자리를 잡았다.


개막전이 펼쳐진 지난 1일, 청주체육관 앞에는 오전 11시가 되기도 전에 이미 입장을 기다리는 관중들의 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경기 시작을 3시간 이상 앞둔 시점에 관중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은 소위 ‘인기 스포츠’라고 불리는 종목에서도 보기 힘든 장면이다.
그렇다고 개막전을 위해 대세 아이돌이나 인기 스타가 경기장을 찾은 것도 아니었다. 순수하게 여자농구를 즐기고 홈팀인 KB스타즈를 응원하기 위한 청주팬들이 주말 아침부터 발걸을음 서두른 것이다.
경기장은 온통 노란색의 물결이었다. ‘열광하라! 만끽하라!’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앞세운 KB스타즈는 올 시즌 대회 타이틀 스폰서를 맡아 지난해 보다 더욱 강렬한 노란색으로 체육관을 가득 채웠다. KB스타즈의 모기업인 KB국민은행의 고유 색상 ‘옐로 골드’ 색상을 더욱 강조한 것이다. 심지어 애국가를 부른 어린이 합창단들도 노란 옷을 입고 등장했다.
▲ 청주체육관은 이날 온통 노란색이었다. 관중석에도 KDB생명의 원정 응원단을 제외하면 모두 노란색 응원도구를 들고 있었다. 청주체육관은 여자농구 선수들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찾는 자발적인 팬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진 : WKBL)
약 4천명에 이르는 관중들이 가득 들어찬 경기장에서 이승훈 청주시장은 “KB스타즈는 통합 청주시를 연고로 하고 있는 유일한 프로스포츠 팀이며 청주시의 위상을 높인 85만 청주시민의 자랑”이라고 강조했다. 여기까지는 지역의 큰 행사에 참석한 지방자치단체장의 체면치레 발언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장은 올 시즌을 마치면 60억 원을 들여 노후화 된 청주체육관을 리모델링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롭게 떠오른 WKBL의 메카인 청주체육관이 본격적으로 한국 여자농구의 성지로 탈바꿈을 할 준비에 나섬은 물론 그 청사진을 지자체가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여자농구계로서 환영해마지않을 이 선언에 KB스타즈의 개막전 파트너로 나선 KDB생명은 오히려 속이 쓰리다. KDB생명은 올 시즌 경기장 사용과 관련해 연고 도시의 협조를 구하지 못해 다른 곳을 전전하며 비시즌 훈련을 이어갔다. 체력훈련 일정을 잡을 때도 팀 중심의 계획에 완벽하게 집중하지 못하고, 홈구장을 사용할 수 있는 일정과 맞춰서 수립해야 했다.
▲ 이승훈 청주시장은 KB스타즈와 청주시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 자랑스러움을 나타냈고, 내년 6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체육관을 전면적으로 리모델링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 WKBL)
사실 KDB생명이 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연고 도시의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체육관을 사용하지 못했고, 대부분의 구단이 슈팅 훈련을 진행하는 야간에는 사용이 불가능해 전용 조명도 없는 체육관 앞의 야외 코트에서 연습을 하기도 했다.
총선이 진행됐던 시기에는 체육관이 투표와 개표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어 선수들이 난방도 되지 않는 고등학교 체육관을 빌려서 연습을 하고 경기에 나섰다.
구리시 체육관은 취재를 나서는 기자들에게도 악명이 높다. 경기가 종료된 후 진행요원들의 경기장 정리가 가장 적극적이고 분주한 곳이 구리시 체육관이다. 기자들이 선수 인터뷰를 마치고 오면 이미 취재 테이블은 정리되어 버리고, 코트의 문이 활짝 열린 채 거대한 집기들이 빠져 나간다. 한 겨울의 찬바람이 그대로 몰려드는 상황에서 기사를 완료할 때 쯤이면 농구 코트는 배드민턴장으로 바뀌어 있다.
관리가 잘 될 리가 없다. 지난해 12월에는 하나외환과의 경기를 앞두고 코트에 균열이 발견되어 경기를 앞두고 넓은 스카치테이프를 이용해 임시방편으로 보수를 하고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구리시에서는 체육관이 농구단만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는 부분을 강변할 수 있겠지만 프로구단의 연고도시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프로구단이 홈 코트로 사용하는 체육관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라는 부분에 대해 변명의 여지는 없다.
▲ 지난 2013년 12월 11일, 구리시 체육관에서 경기를 앞두고 코트 바닥의 균열이 발견되어 선수단 스태프가 동원되어 스카치 테이프로 보수 작업을 하고 있다.
▲ 이것이 지난 시즌 프로경기가 실제로 벌어졌던 농구장 코트의 모습이다. 반짝거리는 것은 왁스가 잘 발라져서가 아니라 스카치테이프때문이다. 이런 경기장이 홈인 KDB생명은 그나마 이 마저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
프로 스포츠팀이 경기를 뛰고 연습을 해야 하는 경기장조차 제대로 협조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연고도시’라는 이름은 사치일 수밖에 없다. KDB생명 선수들은 걸어서 1분이면 갈 수 있는 구리시 체육관을 두고 훈련을 위해 다른 곳을 전전해야 했다. 홈 코트라고 해도 낯설기는 원정팀 선수들과 다를 바 없다.
사실 경기장 사용과 관련해 지자체의 비협조로 속 앓이를 한 곳이 KDB생명만은 아니었다. 프로스포츠임에도 ‘비인기 종목’이라는 멍에와 정치적 계산 혹은 배려에 의해 지자체의 협조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당혹스러운 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이날 경기에서 KB스타즈는 후반 이후 집중력에서 KDB생명보다 우위를 보였고, 팬들에게 ‘청주 아이유’ 혹은 ‘청주 손나은’으로 불리는 홍아란의 스타 이미지를 굳히는 활약과 새로운 외국인 선수 비키 바흐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등 많은 수확을 거두며 승리를 챙겼다. 선수들의 노력은 물론 승리를 지원하기 위해 노력한 수많은 이들의 수고가 성과를 맺었다.
체육관을 찾아 선수들의 플레이에 '열광'하고, 승리를 '만끽'한 청주 시민들과 KB스타즈 팬들의 희열을 KDB생명의 팬들과 연고 지역민들도 경험할 수 있는 날이 와야 공평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민주주의 사회는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지 않기에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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