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봄꽃이 피는 걸 관찰하노라면, 꽃이라는 게 햇빛에 매우 민감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여기저기 빨갛게 벌어지고 있다가도 꽃샘추위가 기습한 밤이면 다시 잎을 꽁꽁 오므리고 봉오리로 되돌아간다. 유별나게도 늦추위가 기승이던 올봄은 그래서 꽃이 아예 피지 않을 성싶었다. 남쪽에선 벌써 만개했다는 벚꽃이 여전히 봉오리를 펼치지 못하고 그보다 먼저 피어야 했을 백목련 자목련도 필 듯 말 듯 시간만 끌었다.
그러다가 며칠 반짝 해가 나자, 참고 있던 꽃들이 일제히 피어나 순식간에 누리는 꽃대궐이 되었다. 그토록 웃고 싶었던 꽃들이여, 그 웃음을 어찌 참고 있었을까. 이제야말로 꽃피고 새 우는, 어김없이 새로운 계절이 시작된 것이겠다.
그런데 꽃잎이 다 펼쳐지자 다시 흐린 날이 이어지는 게 아닌가. 봄맞이 웃음으로 세상을 밝게 했던 꽃들은 아직 만개한 채로 어쩔 줄을 모르는데, 아뿔싸, 다시 겨울이 오나 보다. 찬비가 뿌리고 심지어 진눈깨비까지 날렸다. 꽃들은 더 이상 웃지 않고 안개처럼 음울한 침묵으로 빠져든다.
그랬던 아침. 길섶에는 뒤따라 라일락이 피어난다. 그래. 봄이로구나. 개나리 이어, 목련에 이어, 벚꽃에 이어, 라일락까지. 제 아무리 날이 추워도 4월은 4월인 게야. 반가이 걷다가 그만 발걸음 딱 멈추고 말았다. 벚꽃은 하루 밤새 절반이 떨어졌다. 차갑게 젖은 아스팔트 위에, 한꺼번에 떨어진 벚꽃 잎이 소복히 쌓였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남아있던 꽃잎 한 움큼 무리져 쏟아지더니 그 짧았던 생애 하소연이라도 하듯 차창에 달라붙는다. 어느 해보다 짧았던 꽃의 생이다. 목련도 벚꽃도 햇볕을 그토록 기다려 겨우 피었는데, 해는 잠깐 나왔다가 다시 자취를 감췄다. 의지할 곳 없는 꽃들은 그만 지고 마는 거다. 기대했던 절정도 없었다.
2. 절정을 맛보지도 못하고 지는 꽃이라니, 이제 시작인가 하는 순간 떨어져야 하는 꽃이라니. 꽃의 일생으로 치면 서글프다. 한껏 피어 생의 절정을 만끽할 뿐 아니라 그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밝히고 이웃들에게 웃음과 기쁨을 주며 또 그로써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는 걸 증명해야 할 귀한 생명이 아닌가. 헌데 계절의 순리를 잃어버린 이즈음은, 꽃이 한 번 피기도 어렵고 피어 즐겁기도 어려운 시절이 되었나 보다.
우리는 그러한 생명들을 또 수십 송이나 한꺼번에 잃었다. 백령도 해상에서 불의에 목숨을 잃은 천안함 승선 46명의 해군 병사들. 대다수가 이제 막 약관을 넘은 꽃다운 청년들. 꽃피어 하룻밤 새에 지고 만 꽃들처럼 아까이 세상을 떠났다. 무고히 희생된 목숨들을 애도하거니와, 꽃을 꽃 되게 하지 못하는 이 시대에 또 다른 조사를 바친다. 이제 막 피어난 푸른 목숨들은 무엇을 위하여, 또 무엇 때문에 그리도 덧없이 져야 했을까. 계절이 질서를 잃어 꽃들이 채 꽃 되지 못했다면, 청년들의 덧없는 희생은 질서를 잃은 이 시대 조류에서 그 탓을 찾아야 할까.
3. 아무 생각 없이 다음날이 찾아오고, 아무 생각 없는 햇살이 천연덕스럽게 벚꽃 이후의 날을 밝히고 있다. 이젠 봄인 게다. 봄인가 하면 여름인 게다. 밤이 추웠나 하면, 생각 없는 오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덥다. 꽃을 잃은 나무들은 그 슬픔을 푸른 잎으로 자위한다. 그렇게, 차가웠던 봄날의 잔인한 落花錄은 또 한 페이지 무심하게 덮여갈 게다.
모든 생각을 지운다. 무심한 계절처럼 우리 사는 시절도 무심히 지나치고 싶은 거다. 겨울의 횡포가 남아있는 봄을 그럭저럭 버티고 나면 봄인 듯 여름인 듯 또 한 시절이 지나가지 않겠는가. 그래, 무심히 지나가 보자. 군수란 사람이 건설업자의 돈을 받아먹고 국외로 달아나려다 붙잡히든 말든, 국회의원이 법원의 명령을 무시하든 말든, 유럽의 경제가 무너지고 그 여파가 미국 일본으로 확산되든 말든, 서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나랏돈이 강바닥에 매몰되든 말든, 참고 또 참으며 버텨보자. 순리를 잃은 계절 탓이리라. 우주의 흐름이 순리를 벗어났는데 그 아래 티끌 같은 인간사야 어찌 정도를 유지하겠는가.
정말 좋지 않은 것은 自嘲며, 자포자기다. 그것은 현실의 혼란을 용인할 뿐 아니라, 미래의 희망까지도 포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이 어지러움, 순리의 혼돈 속에서도 우리 자신의 미래를 위하여 마지막까지 正道를 지키려는 노력을 다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사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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