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가 군락 이뤄 마치 고산화원을 방불케 해
‘천상의 화원’, ‘생태박물관’···죽기 전에 가보아야 할 아름다운 산
점봉산의 령인 곰배령은 유전자 보호림으로 지정되어 연중 입산통제 구역이다. 최근 인터넷 등 언론에 유명 산행지로 게재되면서 탐방객들이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작년 7월부터 점봉산 일원 2049ha의 원시림 가운데 일부구간(진동-강선리-곰배령)에 대하여 생태체험장으로 개방됐다. 경사가 완만하여 가족단위의 트레킹 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산불강조기간 중에는 입산 허가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지만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서너달 남짓한 겨울이 길게만 느껴지는 것은 무채색의 겨울을 넘어 연두빛 봄을 느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봄에 살곰살곰 피어나는 야생화들과 여린 초록빛의 풀밭위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봄이 주는 선물이다. 이제 봄을 걸어보자.
쑥부쟁이 물양주 산꼬리표 엉겅퀴/ 오리방풀 배미추 금강초롱 궁궁이/ 어디에서 모여 왔는지/ 산길따라 바람따라 자리를 채우며/ 둥 둥 둥 봉화 올리던 곳,/ 미륵을 기다려 천배 만배 올리던 산마루에 / 애기앉은부처로 살아나고/ 당신의 아픔을 삭이며/ 자식들을 품에 안으시던 어머니처럼,/ 곰배령 길은 마를 새 없이/ 샘솟는 물소리로 우릴 적시고/ 산들꽃 속으로 들어갈수록 하늘은 열려/ 새 한 마리 날아갔다 날아오지만/ 구름이지나간 설악너머로, 바람도산길도멈춘채/ 발걸음은 멈추어 이지러진다/ 북도 남도 모두 사라진 곳./ 남으로 들어온 바람꽃들처럼,/ 북으로 일어난 모데미풀들처럼,/ 가슴과 가슴으로,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고 싶다. / 풀꽃 향내 가득한 산능선에서/ 뭉글이 돋아나는 함성함성함성
-‘곰배령’, 이석철
화장하지 않은 젊은 저차의 수더분한 모습
곰배령은 웅장하지도, 그렇다고 화려하지도 않은 소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화장하지 않은 젊은 처자의 수더분하고 맑은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깊은 산속에서 발견된다는 금강초롱이 수줍은 듯 모습을 드러내고, 아무렇게나 우거진 나무들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오솔길이 군데군데 뻗어나 있다.
곰배령이라는 지명은 곰이 배를 하늘로 향하고 벌떡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붙여졌다고 한다. 해발 1,100m 고지에 약 165,290m²(5만평)의 평원이 형성되어 있으며 계절별로 각종 야생화가 군락을 이뤄 만발해 마치 고산화원을 방불케 한다. 봄에는 얼러리꽃, 여름에는 동자꽃, 노루오줌, 물봉선, 가을에는 쑥부랑이, 용암, 투구, 단풍 등이 자태를 뽐낸다.
할머니들도 콩자루를 이고 장을 보러 넘어 다닐 만큼 경사가 완만하다. 가족단위의 탐방코스로 훌륭할 뿐 아니라 죽기 전에 가 봐야 할 아름다운 산으로 소개되고 있다.
길 옆 계곡을 따라 원시림같은 길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를 지나 비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점봉산 산림유전자원보호림 감시소가 나타난다. 이곳 주차장에 자동차를 세우면 곧바로 산행이 시작된다. 감시소 뒤쪽으로 걷기 편한 호젓한 길이 나 있는데 이곳이 강선리 마을로 통하는 곰배령 진입로다.
처음부터 햇빛이 들지 않을 정도의 활엽수 원시림속이 펼쳐진다. 길 옆에서 흐르는 계곡의 청량한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은 선경(仙境)에라도 들어온 듯한 기분이다. 맑은 물 속에 손을 담그지 않더라도 숲속에 있는 자체가 지친 몸과 마음의 원기를 되살리는 듯 하다.
이정표를 따라 강선리 마을을 지나면 계곡의 돌다리가 나온다. 이 돌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인 곰배령 산행이 시작된다. 이곳부터 정상까지는 3∼4㎞내외로 1시간정도가 소요된다. 길이 오솔길로 되어 있어 좁지만 가파르지 않고 원시림이 계속 이어져 있어 걷기가 수월할뿐더러 상쾌함을 만끽할 수 있다.
빽빽한 원시림 밑에는 큰 고사리과 식물들이 산자락을 뒤덮고 길 옆 계곡은 맑은 물을 쏟아낸다. 원시림 속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바람소리, 계곡 물소리는 자연의 합창이 된다. 이쯤 되면 산행이 아니라 도보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 가족단위 산행에 최적이다. 곰배령 산행의 대부분은 햇빛이 들지 않는 원시림이기 때문에 한 여름이 아니라면 긴팔 옷을 입어야할 만큼 쌀쌀하니 두터운 옷 하나쯤은 준비하는 것이 좋다.
탁 트인 하늘과 야생화로 뒤덮인 정상
기암괴석과 흐르는 물이 어우러진 계곡을 끼고 올라가다 보면 나물채취꾼들의 임시거주지가 보인다. 이곳부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박새풀들이 이색적으로 펼쳐져 있다. 정상에 오르면 초원 위로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야생화가 피어 있고, 야생화 사이로는 곰취, 참나물, 산당귀 등 산나물이 지천에 널려 있다. 바로 옆으로 작은점봉산(1295m)과 호랑이코빼기(1219m)가, 멀리로는 설악산이 보인다.
빼곡하게 하늘을 가렸던 원시림이 걷히면 탁 트인 하늘과 곰배령 능선에 펼쳐진 초원. 축구장 3∼4배 크기의 넓은 구릉지에는 여러 색깔의 이름 모를 야생화들로 가득하고 산림대장군과 여장군이라고 쓰여진 장승이 반긴다.
곰배령 마루의 주인은 바람인 듯하다. 능선 반대편(서남쪽)에서 곰배골을 타고 오른 바람은 고갯마루에서 절정을 이루어 한 순간도 쉼 없이 초원의 풀잎을 훑는다. 그 마찰음이 비명처럼 들리기는 해도 기특한 것은 이런 시련 속에서도 싹틔우고 꽃피우며 번식하는 온갖 들풀의 강인한 생명력이다.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는’ 들풀의 현명함을 알지 못하고서는 결코 그 해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야생화들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하늘에는 먹구름과 흰구름, 뭉개구름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자연의 조화에 ‘천상의 화원’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탁 트인 전망도 일품이다. 멀리 설악산 대청봉이 보이고 사방천지가 산과 운무로 둘러싸여 있다. 단목령과 방태산, 조침령, 아침가리, 양양양수발전소 상부댐 등 볼거리가 있다.
방태산 휴양림과 방동 약수로 휴식
곰배령은 당일여행으로는 빠듯하니 휴양림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1박2일의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곰배령 근처의 방태산 휴양림은 무공해지역으로 소문난 강원도 인제에서도 오지로 분류되는 기린면에 위치해 있다. ‘청정 휴양림’이라는 애칭만큼 푸르고 깨끗한 것이 최고의 장점이다.
휴양림 입구에서 마당바위를 지나 2∼3km를 올라가면 2단 폭포를 볼 수 있는데, 발을 담글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하다. 여름이라면 일광욕과 물놀이를 하기에 그만이다. 폭포 위쪽에 있는 정자에 올라서면 철철 쏟아지는 폭포가 가슴 속까지 후련하게 해 준다. 산책로를 지나 인근의 진동계곡 쪽으로 나가면 꿩, 노루, 토끼 등도 볼 수 있다.
휴양림에서 3km 떨어진 거리에는 있는 방동 약수터도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이곳은 깊게 패인 암반 사이에서 나오는 약수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의 약수는 탄산, 망간 등을 함유하고 있어 위장병과 소화증진에 좋다. 맑은 공기에 맑은 물까지, 새로운 시작의 봄에 내 몸의 좋지 않은 기운을 다 털어버리는 것 같다.
인제국유림관리소는 곰배령의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1일 입산자를 150명으로 제한하고 월·화요일과 산불조심기간인 2∼5월 중순, 11∼12월 중순까지 입산을 통제하고 있다. 또 관리소는 자연 체험 및 환경교육의 장으로 산림유전자원보호림 산림생태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숲 해설가와 지역주민이 동행하는 이 체험프로그램은 입산 전일 오후 6시까지 신청해야만 참여할 수 있다.
훼손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을 간직하고 있는 곰배령, 날씨 좋은 주말을 택해 아이들과 곰배령에 오르면 자연의 소중함도 깨닫고 지친 몸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곳은 아이들에게 ‘생태 박물관’이 되어 다양한 종류의 식물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값진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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