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제차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카푸어’란 신조어가 ‘하우스푸어’ 만큼이나 이슈가 되고 있다.
‘카푸어’는 집을 사고도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허덕이는 ‘하우스푸어’ 처럼 고급 수입차의 할부금과 유지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생활고를 겪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주로 자산이 많이 않은 20~30대 젊은 층이 이러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할부금·유지비 감당 못해 불법대여 ‘유혹’ 빠져
최근에는 소득으로는 고급 외제차의 할부금과 차량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해 개인 차량을 인터넷에서 불법 대여해 주는 ‘카푸어’들도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1년 전 할부 금융프로그램을 통해 8000만 원 상당의 수입차를 구입한 김모(33) 씨는 최근 주말마다 자신의 차량을 인터넷을 통해 빌려주고 있다. 대여 고객은 주로 주말 드라이브나 웨딩카 용도로 차를 쓰려는 20∼30대 젊은층. 이들이 김 씨의 차량을 빌리는 데 지불하는 돈은 20만∼30만 원가량으로 정식 렌터카업체 시세와 비교하면 20∼30%가량 싼 가격이다.
이는 할부금이라도 벌어보겠다고 개인 차량 불법 대여에 나선 한 ‘카푸어’를 다룬 한 언론보도 사례다.
이 같은 사례는 인터넷 중고풀품 거래 사이트 등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수입자동차 게시판에는 ‘개인 소유 수입차 대여해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하루에도 여러 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식 렌트카와 달리 개인 차량이기 때문에 ‘허’자가 표시되지 않아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불법인 줄 알면서도 개인차 대여를 하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엄연한 불법행위로 사고 발생 시 제대로 된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소비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또 개인차를 불법으로 대여한 자는 형사처벌을 면치 못한다. 결국 수입차 유지를 위해 위험한 ‘범죄’의 길로 들어선 꼴이다.
지난해에도 이른바 ‘슈퍼카’를 중심으로 개인차 불법 대여를 위탁한 차주와 거래 사이트 운영자가 경찰에 구속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카푸어’ 확산, 외제차 원금유예할부 탓?
‘카푸어’가 늘어나는 이유로 많은 이들은 젊은 세대의 무절제한 소비성향을 꼬집는 한편 외제차 원금유예할부 제도상 문제점을 강하게 지적하고 있다.
자동차 원금유예할부는 찻값의 일부, 대략 10%에서 30% 정도를 선수금으로 낸 뒤 10%에 대한 이자와 원금만 할부금으로 내다 3년쯤 지나 나머지 찻값의 60%를 한꺼번에 내는 제도다.
초기 구입비용이 비싼 외제차를 사기 힘든 20~30대 직장인들이 외제차 구매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든 판매 방식이다.
문제는 원금유예 할부제도를 이용해 외제차를 구입한 뒤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원래 찻값의 60%를 한꺼번에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다 외제차의 경우 감가율이 국산차보다 높아 외제차를 구입한 사람들이 다시 중고로 팔아도 밀린 차량값을 내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 같이 자동차 유예 할부·리스 이용 증가로 ‘카푸어’ 양산의 문제가 확산 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자 금융당국이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 5월 금융감독원은 “일부에서 자동차 유예 할부·리스 이용 증가에 따른 카푸어 양산의 문제는 연도별 취급잔액, 만기별 분포 및 연령대별 이용비중 등을 고려할 때 우려할 사항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여신전문금융회사의 유예 할부·리스 취급이 과도해 질 경우 만기시 소비자의 상환부담 증가 및 이로 인한 건전성 학화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도록 지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소비자들에게는 “본인의 소득이나 재산상황 등을 감안한 상환능력 범위 내에서 자동차 금융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당부했다.
◇외제차 업계 “결국 소비자 선택 문제”
한편, ‘카푸어’ 확산과 관련해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외제차업계는 문제를 소비자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다.
김효준 BMW코리아 대표는 지난 2월 “하우스푸어와 카푸어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수입차 업체들이 카푸어 발생을 유도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는 “자동차 가격은 주택과 달리 예상치 못하게 떨어지거나 금리가 오르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며 “구매전단계부터 유예 원금상환과 보수·유지비용, 중고차 판매 등 모든 과정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재정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측도 “수입차라도 구매시 개인신용 되지 않으면 할부나 리스가 어렵듯 개별 경제 수준안에서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할 문제”라며 “다만 최근 수입 자동차가 크게 늘어나면서 카푸어가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과 달리 수입차의 할부금융업체가 판매하는 수입차 리스나 할부상품이 국내 금융사에 비해 크게 비싸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카푸어’ 양산에 일조해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이들 할부금융업체가 대부분 수입차업체가 독자적으로 설립한 관계사나 금융제휴사여서 더욱 논란이 된다.
국회 정무위원회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15일 “BMW와 메르세데스-벤츠의 캡티브금융(자동차금융)이 국내 금융사와 동일 기준을 적용한 결과 3년 기준 최대 566만원이 비싼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민 의원은 “BWM와 벤츠의 경우 자동차 금융사용 비율이 전체 구입의 70% 정도에 달한다”며 “연간 두회사가 국내 금융사에 비해 1119억원 초과수익을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수입차 회사 대표들은 이번에도 ‘소비자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효준 BMW그룹 코리아 사장은 “금융프로그램 선택은 전적으로 고객에게 있다”고 말했고, 브리타 제에거 벤츠코리아 사장도 “벤츠코리아와 벤츠 파이낸셜 서비스 코리아는 별개 회사로 캐피탈 선택권은 소비자에게 있어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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