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수기' 사외이사 칼댄다

산업1 / 김덕헌 / 2007-05-28 00:00:00
작년 30대 상장사 사외이사 '반대의견' 고작 0.29%

은행 사외이사 '반대'로 부결 전무…연봉 5200만원 '먹튀'
소액주주 사외이사 선임토록 '집중투표제' 의무화 목소리


올해로 도입 10년째를 맞는 '사외이사 제도'에 대한 실효 논란이 제기되자 금융당국이 제도 손질에 나섰다.

사외이사 제도는 대기업 오너들의 독단적인 경영을 견제하고 경영진의 전문성 등을 보완하고자 도입됐지만 '경영감시 및 견제'는 커녕 오너경영의 '거수기' 역할에 불과했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이는 기업들이 대주주와 관련 있는 인물들을 주로 사외이사로 선임하는가 하면 사외이사에 대한 경영정보 제공 등도 제한하는 등 제도 허점에 많기 때문이란 지적을 받아 왔다.

유명무실 사외이사


도입 10년째를 맞고 있는 사외이사제도의 실태를 보면 이 제도를 왜 도입했는지 의문이 갈 정도이다.

12월 결산 30대 상장사들의 사외이사 199명은 지난해 모두 5263건의 의결에 참여해 '반대 의견'을 제시한 것이 고작 15건으로 나타났다. 이는 반대비율이 0.29%에 불과한 것이다.

또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가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59개 기업집단중 상장계열사를 대상으로 지난해 4월 기준 사외이사와 회사, 지배주주, 경영진과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경력·업무 등에서 회사 등과 이해관계로 독립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외이사가 전체 분석 대상(616명)중 37.5%(231명)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들 사외이사는 △과거 동일 회사나 계열사에 근무한 적이 있거나 △밀접한 학연관계가 존재한 경우 △회사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단체 임원이나 법률대리인 등의 이해 관계가 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는 독립성이 결여됐다고 판단되는 사외이사를 많이 둔 대기업 집단으로 두산, 삼성, LG, 롯데, 현대차 등이 꼽혔다.

두산그룹의 경우 사외이사 49명중 17명이 문제(계열사 임원 및 학연, 전략적 제휴관계 회사 사람 선임)가 있는 인사였으며 삼성그룹 99명중 15명, LG그룹 70명중 15명, 롯데그룹 45명중 13명, 현대차그룹 65명중 13명이 문제가 있는 사외이사 였다.

사외이사 선임 과정의 문제점은 대기업에 국한되는 것만 아니다. 정부가 대주주인 우리금융 사외이사 선임과정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우리금융지주는 지난 3월 이사회를 열어 신임 사외이사로 김광동 전 주브라질 대사와 최명수 예금보험공사 기금관리부장, 하인봉 경북대 교수, 하평완 전 한국은행 은행국장 등 4명을 선임했다. 문제는 선임과정이 제대로 절차를 거치지 않다는 것.

우리금융은 이사회내에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가 설치돼 있지만 추천위원들은 이사회가 시작되기 불과 10여분 전에 신임 이사 명단을 전달 받았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사외이사 후보의 자질이나 능력 검증없이 이사회에 상정됐고 결국 정부가 추천한 사외이사가 별다른 검증 없이 무사 통과됐다. 헐값 매각 논란을 빚어 온 외환은행 사외이사 자격도 논란꺼리가 되고 있다.

외환은행은 지난 3월 사내이사 2명과 사외이사 6명을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 통과시켰다.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된 6명중 3명(Ellis Short, Michael D. Thomson, 유회원)은 외환은행의 최대주주(LKF)의 특수관계인인 론스타 계열사의 임원들이다. 이중 유회원 후보는 감사위원회 위원 후보로도 추천됐다.

즉, 총 9명의 이사중 사내이사 3명은 실질적 최대주주인 론스타의 영향력 아래 있으며, 사외이사 6명중 3명은 론스타의 계열사 임원이 맡고 있는 외환은행 경영권을 장악해 왔다.

그러나 증권거래법에는 상장회사의 최대주주 및 그 특수관계인을 사외이사 자격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하지만 외환은행은 은행법이 사외이사 자격과 관련해 아무런 제한을 하지 않고 있다는 허점을 이용,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외환은행 뿐만 아니라 부산은행, 전북은행 등 상장은행도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을 사외이사로 선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은행의 경우 최대주주의 지분이 과반수가 되지 않으며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기 때문에 심각성이 덜하다는 평가다.

이처럼 유명무실한 사외이사 선임은 결과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국민, 우리, 신한, 하나은행 등의 이사회에서 지난해 처리한 안건 123건 가운데 사외이사의 반대로 부결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신한과 하나은행은 2년 연속 반대없이 각각 133건,64건의 안건을 모두 무사 통과시켰다. 외환은행에서도 지난해 10월 '엔 데포 스와프(엔화예금 때 세제상의 이점이 주어지는 방식) 과세 처리방안'을 제외하고 모두 74건이 그대로 통과됐다.

금융지주사 역시 은행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한, 하나금융지주는 2년간 전원 찬성속에 안건을 통과시켰다.

우리금융지주도 2005년 43건의 안건 가운데 1건, 작년 37건 가운데 2건의 통과가 저지됐지만 결국 일부만 고친 채 수정 의결되거나 재심의로 처리됐다.

이에 따라 경영의 투명성 확보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 소액주주 보호 등의 의무가 있는 사외이사들이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형식적으로 승인하는 거수기 노릇에 머무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 은행들이 사외이사들에게 4000만원을 웃도는 연봉을 지급하고 있어 보수에 비해 활동이 미약하다는 지적이다.

또 30대 상장기업 사외이사들의 평균 연봉도 5209만원에 달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 사외이사의 경우 7000∼8000만원 이상의 높은 연봉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외이사 자격 및 독립성 보장돼야

김선웅 CGCG 연구소장은“국내 상장기업의 사외이사는 대주주나 경영진의 영향력 때문에 사실상 독립적이지 않다”며“사외이사의 학교, 회계법인, 법무법인 등과의 거래관계를 상세히 공시토록 하는 등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일부 기업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외이사 후보추천위는 기존 사외이사나 경영진이 참여해 사실상 '옥상옥’이 되고 있다”면서 “감사나 감사위원회가 경영진의 의결권을 제한할 수 있게 하는 등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일부에선 사외이사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사외이사의 결격 사유를 강화하고 소액주주도 사외이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편 금감원은 오는 9∼10월까지 1400여개 상장기업의 사외이사제도 실태 점검을 실시할 계획이다. 또 외국의 사례 조사를 통해 국내 상장기업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지배구조개선을 위해 사외이사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됐지만 비용만 들뿐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실태 점검에 나섰다”며“임기, 임명절차, 대주주와의 관계 및 역할, 출근 현황, 지위보장 여부, 안건에 대한 찬성·반대 현황 등 사외이사와 관련된 모든 현황을 조사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제도를 고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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