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차피 결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시범경기인 만큼 결과에 크게 일희일비 할 필요는 없다. KB의 서동철 감독은 “굳이 수비 전술을 보여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KDB생명의 안세환 감독은 한 술 더 떠 “모든 것은 개인전술이다. 시범 경기에서 팀의 전술적 플레이를 공개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선수 개인의 플레이와 움직임을 통해 시즌에 대한 예측을 해볼 수는 있다.
2순위로 뽑은 외국인 선수 데브루 피터스(Devereaux Peters)에게서 부상이 발견되어 교체 수순에 들어간 KDB생명은 외국인 선수 중 린지 테일러(Lindsay Taylor)만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비키바흐(Victoria Baugh)와 쉐키나 스트릭렌(Shekinna Stricklen)이 각각 20분과 16분 26초를 뛴 KB스타즈에 비해 외국인 선수 운용에서 열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KB스타즈는 변연하, 김수연, 강아정이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나서지 않았다. 외국인 선수와의 조합을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볼 때 이날 경기에 나선 국내 선수들의 명성에서 한 수 위였던 KDB생명이 다소 우위의 경기를 보여줄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결과는 KB스타즈의 대승이었다.
심성영, 이제는 ‘미래’가 아닌 ‘현재’

심성영은 3쿼터 들어 과감한 돌파를 통한 드라이브 인과 3점슛으로 경기를 뒤집었다. 경기 초반 다소 긴장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자신의 플레이를 찾았다. 사실 심성영의 올 시즌 플레이는 이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던 부분이다.
심성영은 비시즌 기간 동안 가진 일본과 중국팀과의 연습경기에서 눈에 띄는 성장을 보이며 이번 시즌을 기대하게 했다. WJBL의 후지쯔와 가진 연습경기에서는 일본의 아시안게임 대표로 뽑혀 활약한 마치다 루이를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를 펼쳐 후지쯔의 BT 테브스 감독으로부터 “일본으로 데려가고 싶다”는 말까지 들었다. 후지쯔의 구단 관계자는 심성영이 지난 시즌 주전 가드가 아니었다는 말에 “KB가 원래 가드가 강한 팀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러한 평가는 중국의 상하이 옥토퍼스를 이끌고 있는 이문규 감독에게서도 이어졌다. 이문규 감독은 심성영에게 “중국에서는 심성영의 스피드를 따라올 수 있는 선수가 없다”며 탐나는 선수라고 지목했다.
지난 시즌까지 빠른 스피드를 갖췄지만 그 이상 경기를 풀어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던 심성영은 비시즌을 거치며 직접 해결하는 능력까지 더해 위력을 높였다. 여기에 슛 정확도도 좋아지면서 확실한 KB스타즈의 공격옵션으로 자리를 잡았다.
변연하가 아시안게임 대표팀으로 차출되고, 김수연과 홍아란이 세계선수권 참가를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선수들의 부상 등으로 단 6명의 선수가 연습 게임을 뛰어야 했던 상황에서 심성영은 KB스타즈의 경기를 조율하고 직접 마무리까지 하는 모습을 꾸준하게 보여줬다.
웨이트를 통해 스피드에 힘까지 더한 심성영은 이날 경기에서 자신보다 40cm나 더 큰 202cm의 장신 린지 테일러를 앞에 두고 과감한 드라이브 인을 두 번이나 성공시켰다. “연습경기를 통해 장신 선수들과 많은 경기를 가진 것이 도움이 됐다”고 말한 심성영은 경기 중 한 차례 테일러에게 블록슛을 당하기도 했지만 “왼손으로 올라갔으면 찍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며 정신적으로도 한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스스로도 “예전 같으면 블록슛을 당하면 위축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며 “이제는 성공시킬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도록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KB스타즈의 코칭스태프는 지난 시즌에도 스피드를 이용해서 과감하게 올라가면 키 큰 선수들의 타이밍을 뺐을 수 있다며 심성영에게 적극성을 주문했지만 이는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적극성과 함께 자신감을 장착한 심성영은 비시즌 연습경기에서부터 변화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시범경기에서 테일러는 물론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버티고 있던 KDB생명의 인사이드를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심성영은 “빠르게 올라가면 블록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며, 더 이상 골밑에서 장신 선수들의 블록슛이 겁나지 않는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여기에 픽 게임을 활용하거나 페인트존 부근까지 돌파를 한 후 체인지 오브 디렉션을 이용해 뱅크슛을 성공시키고, 자신의 스피드에 부담을 느낀 수비수가 한 발 떨어지면 지체 없이 3점슛을 꽂아 넣는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 심성영은 비시즌 동안에 유독 슛 연습이 많았다며, 야투 정확도가 높아진 이유를 설명했다.
계속되는 홍아란의 진화

파워나 스피드는 물론 전체적인 기술에서도 우리나라 선수들보다 한 수 위인 외국 선수들과 경기를 해보니 여유가 더 생겼고, 자신감도 늘었다는 게 홍아란의 설명이다. 홍아란은 지난 주 하나외환과의 연습경기에 이어 이날 경기에서도 6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1번으로서 A패스가 약하다는 약점을 불식시키는 모습이다.
사실 A패스와 관련한 논란이 있었을 때도 서동철 감독은 홍아란을 투입하는 데에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어시스트가 적어 1번으로 부적합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서 감독 뿐 아니라 세계선수권 대표팀의 김영주 감독과 이지승 코치, 그리고 하나외환의 박종천 감독과 신기성 코치마저도 이유가 되지 않는다며 일축한 바 있다. 그런데 이제는 직접 어시스트까지 기록하며 올 시즌에도 진화에 가까운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서동철 감독은 비시즌 기간 중 심성영이 괄목할 성장을 보이고 있을 때도 “홍아란과 함께 맞춰보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내며, “(홍)아란이가 농구에 눈을 뜬 것 같다”고 말했다.
홍아란은 어시스트 능력 문제와 관련해 속상한 적도 있었지만 경기를 하면서 패스 위주로 어시스트를 올리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예전에는 드라이브 인을 시도할 때 볼 사이드만 보였다면, 이제는 반대 사이드를 볼 수 있는 여유도 조금은 생긴 것 같다며, 조금 더 넓게 볼 수 있게 되면서 상대 수비가 핼프 디펜스를 시도할 때 빈 곳으로 패스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홍아란은 함께 뛰는 심성영에 대해 “늘었다기보다 원래 이런 능력이 있었던 선수”라며, “시즌만 들어가면 자기 모습을 다 보여주지 못하고 자신 없어하는 모습이 있었는데 이제는 적극성이 많아졌고, 리딩을 하면서도 콜을 해주는 것도 확실히 예전과 다르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심성영 또한 홍아란에 대해 “지난 시즌보다 힘과 스피드가 더 좋아졌고, 속공에서 경기를 펼치는 것도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또한, 홍아란과 함께 코트에 나서면 패스가 막혔을 때 미드아웃 해주는 것도 좋아서 경기를 풀어나가기가 쉽고 더 공격적으로 할 수 있다고 전했다.
높이가 받쳐줄 때, KB는 이렇게 무섭다

비키바흐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인사이드 경쟁에 뛰어든 KB스타즈는 리바운드에서도 11-2로 상대를 압도했다. 전반에 9-14로 리바운드에서 열세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의 변화다. 리바운드 싸움에서 자신감이 생기자 야투도 폭발했다. 3점 2개를 적시에 성공시킨 홍아란도 3쿼터에만 10점을 넣었고, 다른 선수들도 고르게 득점에 가담했다.
야투가 좋은 선수가 많은 KB스타즈가 골밑에서 상대보다 강한 모습을 보여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보여준 단적인 예였다.
특별한 수비 전술을 구사하지 않겠다고 말한 서동철 감독은 비키바흐에게 테일러를 일대일로 맡겨보겠다고 경기전에 미리 계획을 설명했었다. 비키바흐가 상대와의 매치업에서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비키바흐는 1쿼터에 테일러를 상대로 고전하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3쿼터에는 이를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반면 ‘검증된 선수’인 스트릭렌은 조금 더 팀에 녹아드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스트릭렌은 이날 11득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변연하나 강아정 등 KB스타즈의 전통적인 스코어러가 결장한 상황에서 주도적으로 공격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스트릭렌은 주로 외곽에서 맴돌았고, 미스매치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골밑 플레이를 보여주지 않았다.
홍아란은 “지난 시즌 커리가 공을 달라고 하는 스타일이었던 반면 스트릭렌은 공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스타일”이라고 두 선수의 차이를 설명했다. 홍아란은 스트릭렌이 공을 잡고 있는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팀플레이 측면에서 공이 잘 도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요구해도 될 것”이라며 스트릭렌이 더 공격적으로 나섰으면 하는 마음도 나타냈다.
KDB생명의 외국인 선수 수난사

이옥자 전 감독이 야심차게 뽑았던 비키바흐는 WKBL에 모습을 보이고 얼마 되지 않아 부상으로 귀국길에 올라야했다. 이어 지난 시즌에는 1순위로 선발한 티나 톰슨이 부상을 당하며, 순위 경쟁이 치열해지던 시점에 전력에서 이탈했다. 올 시즌에는 경기를 해보지도 못하고 데부르 피터스를 교체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안세환 감독이 1라운드에 선발했던 테일러는 첫 경기에서 의문점만 남겼다.
202cm의 압도적인 신장을 자랑하는 테일러는 골밑에서의 기술과 비교적 정확한 야투를 바탕으로 1쿼터 초반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테일러가 중심을 잡아주는 가운데 KDB생명은 초반의 야투가 정확하지 못했던 KB스타즈와의 차이를 벌려 나갔다. 테일러는 40분을 뛸 수 있는 체력은 아니었기 때문에 2쿼터 초반에 교체아웃 됐고 충분한 휴식을 가진 후 3쿼터에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나 3쿼터의 테일러는 1쿼터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1쿼터에 100%의 야투와 함께 9득점 2리바운드 3어시스트 1스틸 1블록슛을 기록하며 비키바흐를 4득점으로 묶었던 테일러의 3쿼터 10분은 처음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야투가 부정확해진 것은 물론 비키바흐에게 무려 13점이나 내줬고, 리바운드 싸움에서도 신장의 우위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한 경기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신장을 확실하게 이용하기 위한 포스트업도 적극적으로 펼치지 않았다. 안세환 감독도 테일러가 좀 더 포스트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중국에서 오랫동안 뛰며 아시아농구에 익숙해졌지만 달리는 농구를 추구하는 KB스타즈의 스피드에 고전하는 모습이었고, 3쿼터에는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단 12분을 뛴 후에 나타난 모습이었다.
린지 테일러는 이날 22분 20초를 뛰며 13득점 4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반면 매치업 상대였던 비키바흐는 20분동안 17득점 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승패에 의미가 없는 경기라 해도 지는 것이 달가운 팀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 면에서 KDB생명의 이날 경기는 결과를 떠나 내용면에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KDB생명은 2쿼터 들어 신정자의 바스켓 카운트 등을 묶어 5분 만에 29-15까지 달아났다. 거의 더블스코어의 차이였다. 그러나 3쿼터 5분을 남긴 상황에서 경기는 KB스타즈의 10점 리드로 바뀌어 있었다. 단 10분만에 24점을 까먹은 것이다.
KB스타즈가 14점까지 벌어진 점수를 1점차로 좁힌채 전반을 마무리한 과정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KDB생명이 외국인 선수를 뺀 상황에서 KB스타즈에는 스트릭렌이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트릭렌이 외곽으로만 맴돌고 야투도 단 3개만 시도했을 뿐이지만 그래도 외국인 선수의 유무는 분명한 차이를 만드는 부분이다.
그러나 3쿼터 시작과 동시에 급격히 점수를 허용한 과정은 분명히 복기가 필요해 보인다.
인사이드에서 테일러가 비키바흐에게 밀렸다고 해도 리바운드에서 한 쿼터에 9개나 뒤진 것은 문제가 있다. 게다가 이때의 KDB생명의 멤버는 이경은-한채진-이연화-신정자-테일러였다. 막판에 이연화 대신 구슬이 투입됐지만 그것은 1분 남짓에 불과했다.
KDB생명의 최정예라 할 수 있는 선수들이 코트에 있는 동안 KB스타즈는 무려 36점을 득점했고, 점수는 21점차까지 벌어졌다. 14점차의 리드가 15분 만에 21점차의 열세로 바뀌었다.
KDB생명은 지난해에도 뒷심 부족을 드러내며 어처구니 없는 역전패를 몇 차례 당한 기억이 있다. 한번 무너진 집중력을 다시 살리지 못하고 모래성처럼 주저앉는 모습은 반드시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래도 대표팀을 다녀온 후 몸 상태가 좋지 못하다며 안세환 감독의 시름을 깊게 했던 이경은과 신정자가 우려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준 것은 위안을 삼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사진 : W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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