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 = 이준혁 기자] 한국판 금융빅뱅의 서막이 올랐다. 현 정부의 임기가 채 1년을 남기지 못했지만, 정부는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를 과감하게 허용했다. 이어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에게서 '공기업'이라는 딱지도 서둘러 떼어 냈다.
지난 1997년 국가외환위기가 발생한 이후 벌어진 크고 작은 이해관계의 충돌, 글로벌 금융환경의 변화 등으로 장장 15년간 이어진 금융시장 체질개선 작업이 마무리 단계를 향해 급피치를 올리는 모습이다.
올해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지는 국내정치 환경과 유럽재정위기의 파급이라는 대외경제 환경의 변화와 맞물려 우리금융의 민영화에 속도를 내기 어렵다는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금융의 민영화바람은 다시 불어오고 있다.
연초부터 등장한 굵직한 매듭, 조만간 진행될 거대 M&A 등등 현재 펼쳐지고 있는 금융시장의 움직임은 명확하게 시장의 대지각변동을 의미한다.
◇마지막 변수, 우리금융 민영화
명실상부하게 4강 체제로 재편되는 한국 금융계의 지각변동 속에 패자를 향한 금융지주사의 경쟁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정부발 금융빅뱅의 마지막 변수는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이다. 우리금융은 자산 372조4000억원(2011년 9월말 기준)으로 4대 금융지주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크다.
현 정권에서 민영화의 목표가 달성되면 우리금융은 규모와 더불어 정부 소유구조 아래서 제한적이었던 공격적인 경영을 본격화 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다.
금융권에서 평가하는 "정권 교체 시에 바뀌는 경영진들로 인해 장기 전략이 없고 성장을 위한 자본여력도 취약하다"는 약점을 극복할 전환점을 확보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누구에게 팔릴지 몰라, 장기적인 전략 마련에 걸림돌이었던 지배구조의 안정화도 꾀할 수 있을 전망이다.
정부가 주도해 지난 2001년 출범한 우리금융은 현재 예금보험공사가 56.97%의 회사 지분을 소유하고 있어 의사결정의 한계를 태생적으로 갖고 있다.
10년 넘도록 품고 와 이제는 몸에 익었을 정도의 '한계'지만, 올해는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인수로 4대 금융지주의 판도가 흔들리게 될 상황을 마주하고 있는 시점이다.
우리금융이 민영화를 통한 지배구조의 안정화를 이루는 것이 다른 어느 시기보다 시급한 사안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팔성 회장(사진)이 신년 화두로 내놓은 '뜻이 있어 마침내 이룬다'는 의미의 '유지경성(有志竟成)'을 '민영화 추진의사'로 읽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민영화의 의지는 사자성어 뒤에 감춰진 '은유'로만 표현된 것도 아니다. 지난달 10일 사내 사회공헌 행사에서 이팔성 회장은 "우리는 오매불망 민영화를 기다리고 있다. 당국에서도 좋은 시그널을 보냈기 때문에 기대한다"고 직접적인 '갈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공자위, 매각 방식 논의 답보
문제는 올해 안에 우리금융 민영화가 다시 추진될 수 있을 지가 불투명하다는 데에 있다.
최소한 상반기에 우리금융의 매각 공고가 나오기는 불가능해 보인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민영화 추진의 주체인 정부가 머뭇거리고 있다.
지난 1일 공적자금관리위원회(공자위) 고위 관계자는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 추진과 관련해 "시장 환경이 좋지 않다"며 "(매각 방식을 논의할) 그럴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공자위는 우리금융 최대 주주인 예금보험공사와 매각 주간사인 삼성증권, JP모간 등 이해당사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우리금융 민영화'를 주제로 워크숍을 개최했다.
지난해 9월 3기 공자위 위원들이 구성된 후 관련 주제로 올해 들어 처음 다시 모여 4시간여 동안 의견을 교환한 것이다.
당시 공자위 관계자는 "워크숍을 갖고 2010년과 2011년 우리금융 민영화가 무산된 이유와 현재까지의 진행상황을 살펴볼 예정이다"라고 워크숍 개최 배경을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공자위의 워크숍이 우리금융 민영화의 재추진에 '시동'을 건 것으로 해석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우리금융지주 매각을 올해 중 재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직후 열린 워크숍이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6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한국금융학회 동계 정책심포지엄에 참석해 "우리금융지주는 저대로 가면 경쟁력 망가지게 돼 있다. 빨리 정부지분을 팔아야한다"고 말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가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라고 해서 우리금융 매각 문제에 대해 적당히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 정부 하에서 우리금융 민영화라는 해묵은 숙제를 끝낼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현시점 공적자금 회수 ‘어렵다’
금융당국과 우리금융의 수장은 이처럼 마음이 급하지만, 정작 실무 주체인 공자위는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실제 결과물이 나오기에는 시간이 더 걸릴 공산이 큰 것이다.
공자위 고위 관계자는 워크숍 직후 "(공자위 위원인) 교수님들이 방학기간이어서 시간이 났고 해서 모이기로 한 것"이라며 "매각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이팔성 회장의 "(민영화와 관련해) 정부에서 좋은 시그널을 보냈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정부가) 어디를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 밑에서 (회장에게) 잘못 알고 보고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공자위의 이 같은 신중한 접근은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지는 국내정치 환경과 유럽재정위기의 파급이라는 대외경제 환경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국내외의 환경 변화가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우리금융의 민영화에 속도를 내기 어렵다는 의미다.
공자위 관계자는 “주가가 안 좋다”고 말했다. 공적자금 회수하는 데 있어 이익을 내기 어려운 시기라는 판단이 깔려있다. 현재 우리금융의 주가는 1만1100원(1월31일)이다.
우리금융의 최대 주주인 예금보험공사는 주가가 주당 1만5000원 이상은 돼야 공적자금 회수를 통해 수지를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술적으로 우리금융 주가가 35% 이상 올라야 하는데, 유럽재정위기의 여파로 금융주의 약세가 한동안 지속된다고 보면 주가가 오를 것이란 예측이 쉽지 않다.
금융권에서 올해 상반기 우리금융 매각 재추진 가능성을 낮게 전망하는 근거 중 하나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손해를 보면서 공적자금을 회수하게 되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선거를 앞두고 (정부의) 누가 의사결정을 하겠냐”며 “매각 공고가 나올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공고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2010년과 2011년 두 차례 매각시도가 불발로 끝났고, 지난 2007년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으로 우리금융의 지분 매각 시한이 법에 명시되지 않은 만큼 현 정부에서 무리한 매각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는 풀이다.
이렇게 되면 금융지주사 간 경쟁구도 변화에서 우리금융의 역할은 현 수준에서 머물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결국 하나금융지주 인수 승인 과정에서 외부에 휘둘리지 않고 과감한 결정을 했던 금융 당국이 세 번째 시도가 될 우리금융 민영화 작업을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추진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한국 금융의 판을 새로 짜게 될 금융당국의 움직임에 금융권 전체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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