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팀] “일본 속담에 ‘아이는 작게 나서 크게 키우라’는 말이 있습니다. 크게 낳으면 낳을 때 고통스럽습니다. 헤지펀드 역시 작게 나서 크게 키운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 케이팝(K-POP)처럼 시장의 메인 플레이어가 될 것입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출시된 헤지펀드를 놓고 ‘초라한 출범’이라는 비판을 오히려 환영했다. 사모투자펀드(PEF)를 도입했을 당시를 떠올리면서 헤지펀드 역시 훗날 최고의 금융인력이 모여든 최고의 상품이 될 것이라고 했다.
◇고수익-고위험 ‘두 얼굴의 헤지펀드’
헤지펀드는 기관과 고액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모펀드다. 뮤추얼펀드가 주식과 채권 등 비교적 안정성이 높은 상품에 투자하는 반면 헤지펀드는 주식과 채권뿐만 아니라 파생상품 등 고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한다. 정부는 헤지펀드를 도입하면서 운용에 자율성을 보장하되 선진국에서 논의하고 있는 규제 방안을 담았다는 의미에서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그러나 ‘장밋빛 청사진’이 마냥 달가운 것은 아니다. 정부가 자본시장 선진화의 일환으로 성급하게 헤지펀드를 도입하고, 업계 역시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 일정에 맞춰 헤지펀드를 내놓고 보자는 태도가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헤지펀드에 대한 투자자들의 인식이 여전히 ‘고위험 고수익’에 머물러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결국 본격적으로 헤지펀드 자금을 모으고, 운용에 들어가는 헤지펀드가 올해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글로벌 금융 시장의 상황이 녹록치 않은 가운데 기존 금융상품과 어떤 차별성을 드러낼 수 있을 지에 헤지펀드의 성패가 걸려 있다.
서정두 한국투자신탁운용 AI운용본부 총괄 상무는 “하락장에서 수익률 하락을 방어한다든지 등 일반 롱숏 펀드와 차별화된 트랙 레코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헤지펀드 수익률이 일반 주식형펀드와 다르게 나오는 게 관건”이라고 밝혔다.
정진균 삼성증권 AI팀장 역시 “헤지펀드가 주식도 아니고 채권도 아닌 자기만이 가진 고유의 특성을 내줄 수 있는 지 주목해야 한다”며 “예컨대 위험 관리를 잘해 시장이 5% 떨어질 때 헤지펀드는 2% 하락하고, 시장이 5% 올라갈 때는 2~3% 올라가는 등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는 유럽 재정위기 우려 등 글로벌 금융시장의 전망이 좋지 않다. 헤지펀드가 시장의 흐름과 관계없는 ‘절대수익’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글로벌 경기가 악화되면 헤지펀드도 수익률 하락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은 헤지펀드에 걸림돌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헤지펀드 수익률이 -19%였던 것이 대표적이다.
정 팀장은 “헤지펀드가 롱숏전략을 써도 시황 자체가 거꾸로 가면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며 “지난해 헤지펀드 주식형 롱숏 전략을 썼던 펀드가 대부분 마이너스였던 점을 보면 매크로 상황은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헤지펀드가 ‘리스크 관리’ 즉, 수익률 하락을 방어하는데 최선인 상품이라고 강변해 왔던 점을 고려하면 헤지펀드의 능력을 보일 수 있는 '기회'라는 지적도 나온다.
헤지펀드 전략에 정통한 관계자는 “올해는 롱숏 전략을 잘 구사하면서 안정적으로 수익률을 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주식이나 기존 자산보다 변동성을 잘 조절해 안정적인 수익률을 내는 지에 따라 헤지펀드 내에서도 우열이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12개 헤지펀드 등록…1조원 규모 전망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23일 현재 9개 운용사들이 12개의 헤지펀드를 등록했다. 초기 운용 규모는 운용회사 고유재산과 프라임브로커 등을 통해 1500억원 가량이 모집될 전망이다. 펀드 대부분은 매수를 뜻하는 롱전략과 매도를 뜻하는 숏전략을 동시에 구사하는 롱숏전략 펀드다.
업계에서는 이달 출시하는 헤지펀드를 포함해 2500~3000억원 규모로 운용을 시작한 뒤 일반 법인과 전문 투자자들이 가세하면 연말까지 1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초반 6개월간 성과가 좋다면 연말에는 1조원보다 ‘알파’ 규모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문제는 초기 시장에서는 자금 모집이 좀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 관계자는 “현재 제도에서는 트랙 레코드를 쌓을 수 있도록 300~500억원 가량의 적당한 자금을 끌고 가야 하는데 개인은 물론 기관도 적극적이지 않다”며 “성과가 검증되지 않은 헤지펀드에 선뜻 투자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나마 계열사라는 믿을 만한 구석이 있는 운용사의 사정은 낫다. 개인들이 최대 투자할 수 있는 한도가 5억원에 머물러 있어 사실상 기관 자금을 끌어 모으지 못한다면 최소한의 운용의 미학을 발휘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올해 헤지펀드 업계의 과제는 초기 자금 모집과 리스크 관리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데로 수렴된다. 자금과 트랙 레코드를 전제로 헤지펀드가 흥행의 조건을 갖춰야만 투자 대상을 넓히고, 각종 제약을 풀 수 있는 ‘임계점’으로 이끌 수 있다.
김명호 현대증권 프라임브로커(PBS) 부장은 “올해 20개 가량의 운용사들이 각각 2~3개의 펀드를 만들면 연말까지 1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500억원 내외의 자금을 6개월~1년 정도 운용하면서 트랙 레코드가 쌓여야만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많은 참여자가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는 적은 수의 기존 대형사들만 들어와 있지만 헤지펀드 풀이 늘어야 여러 가지 상품도 나올 수 있고, 특화된 전략을 보여줄 수 있다”며 “본격적으로 헤지펀드가 활성화되는 것은 진입 장벽이 낮아지는 내년 말 정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 역시 “헤지펀드는 공모 상품이 아니라 사모를 기본으로 하는 상품이므로 시장이 교육과 연습 기간이 필요하다”며 “고수익 상품이라기보다는 자산배분 입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금융 산업으로 발전하고, 6~8% 정도 안정적인 수익을 찾는 고객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전에 헤지펀드에서 사고가 일어난 것처럼 고수익이나 몰빵을 지양해야 한다”며 “레코드가 차분히 쌓이면 안정적으로 시장이 기존의 주식과 채권 말고 하나의 대안 투자 역할을 서서히 증가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진출? ‘한국형’ 아닌 ‘현지화’ 전략 필요
일각에서는 헤지펀드를 운용할 전문 인력의 부재도 도마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헤지펀드 전략이 롱숏에 한정돼 있어 인력 문제를 걸고넘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반박을 내놓는다. 헤지펀드 규모가 커지면서 수익이 창출되면 우수한 인력도 데려올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헤지펀드가 김 위원장의 꿈처럼 단숨에 케이팝처럼 성장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헤지펀드를 키워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수출하는 날이 와야 하는데 뮤추얼 펀드도 수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역외펀드를 설립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는 부분들이 있고, 한국이라는 특정 국가에 대한 니즈가 있는 지도 의문”이라며 “지금은 한국형 헤지펀드라고 해서 한국에만 맞는 시점으로 돼 있기 때문에 케이팝처럼 되기 위해서는 현지화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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