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적 고통. 국제 물가와 공공요금이 이끈 물가상승은 온 국민의 삶을 힘들게 만들었다. 처음 가격을 올리는 주체는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단순한 욕심을 품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연쇄적으로 파생 물가를 올린 결과 돈을 더 벌어도 번 것 같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물가가 다 올라도 자기 수입을 더 올릴 도리가 없는 사람들(봉급쟁이, 일반 노동자)들 편에서는 씀씀이를 줄여 생존을 모색하는 것 밖에 다른 수가 없다. 헐값에 바겐세일을 내걸어도 찾는 소비자가 늘지 않는다고 한다. 오죽하면 재테크의 절대법칙으로 불리던 부동산시장마저도 상승세를 멈춘 데서 그치지 않고 오히려 추락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의 반영일 것이다. 연말이 되었어도 세상은 그리 흥겹지 않다. 예년 같으면 여기저기 크리스마스 장식의 불빛이 반짝거리던 아파트촌과 마을 상가 대다수가 올해는 장식을 생략한 채 조용히 보내고 있다. 연말연시 식당가도 더 이상 흥청대지 않는다. 활기 넘치던 한국 사회가 갑자기 정신을 차려 근검절약하는 사회로 바뀌기라도 한 것인가. 아니면 한국 사람들이 더 이상 보다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다. 오히려 한국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잘살아보자는 욕망이 먼저였다. 대통령을 뽑을 때도 후보의 정직성이나 평판보다는 그의 이재능력이나 실업가로서의 경륜을 먼저 흠모했던 것이 아닌가.
사회를 보자. 위로 정치인 종교인들부터 어린 아이들까지 그 지위에 걸맞은 품격과 도리를 잃었다. 국회 공조직에 몸담은 사람들에 의해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드는 선거제도에 대한 위협(선관위 홈피 디도스 공격사건)이 이루어졌다. 검사장급들이 줄줄이 뇌물시비에 휘말리고 지방 어느 도시의 말단 여검사는 사건 관련자들로부터 벤츠와 명품선물을 받아 사법정의를 사유화했다. 종교인들이 교회 소유권을 놓고 다퉈 폭력소송이 이어지는가 하면, 장애인 시설의 운영자들은 잦은 횡령시비도 모자라 장애아들을 성적으로 유린하여 세상을 시끄럽게 한다. 그러면 어린아이들이 어제까지 단짝이던 친구를 매도하여 마침내 자살에 이르게 하고 영악하게도 몇몇이 서로 편을 먹고 약한 아이를 물고문 불고문으로 괴롭혀 자살에 이르게 하는 사건들이 어디 몇몇 아이들만의 엉뚱한 장난질 탓이라고 기성세대는 변명할 수 있을까. 연약한 아이들 사이에 우울증이 팽배하더니 급기야 대한민국은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는 평판을 얻기에 이르렀다. 청소년의 위기는 사회 미래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한국사회는 병들었다.
다시 한 번 맹자를 상고해보자. 한국 사회가 이 난리도 아닌 불법과 부정부패, 사회 혼란, 무기력과 우울증에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시했던 경제조차 거꾸로 가는 난국에 이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잘살아보자는 맹목적 욕망에서 비롯됐다는 대답이다.
춘추시대 양나라 혜왕은 천하제일의 현자를 영입하려고 맹자를 만났다. 얼마나 가슴 설레었을까. 맹자를 만나자마자 물은 것이 바로 경제였다. “고명하신 분이 천릿길을 마다않고 찾아주셨으니 장차 우리나라가 부유해지겠습니다.” 그러자 맹자가 일갈했다. “왕께서는 어찌 이익부터 찾으십니까. 진정 중요한 것은 인의일 뿐입니다.”
인의(仁義). 사람을 너그럽게 대하고 옳음을 찾는다는 것. 바로 도덕의 중요성을 앞세웠다. 경제보다 예와 도덕을 먼저 찾는 것은 비현실적인 이상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맹자가 그 까닭을 설명한다. ‘왕이 나라의 이익을 생각한다면 그 아래 대부들은 자기 가문의 이익을 챙길 것이고, 선비와 평민들은 제 한 몸의 이익을 생각할 것입니다. 이렇게 위아래가 다투어 자기 이익만 챙기려 들면 나라는 위태로워집니다.’
오늘날 사유재산이나 자유경쟁 시장주의 등 자유자본주의의 정신적 대부로 숭앙받는 아담 스미스의 고전 <국부론>조차도, 이미 강조한 바가 있다. “어떤 사회라도 구성원의 대다수가 가난하고 비참한 사회는 결코 번영하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는 자유경쟁의 원리를 옹호했지만, 어느 일방에 의한 무분별하고도 불공정한 탐욕이 허용되는 기존의 중상주의에 대해서는 철저한 개혁을 요구했다.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가 떠나보내고 내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제는 맹목적 욕망을 버리고 남에 대한 배려와 나눔의 정신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공정한 세상을 만들자는 요구에 동의해야 한다. 서로 남을 헐뜯어 내 이익만 챙기려는 사회와, 서로 남을 배려하고 이웃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사람들의 사회 그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정해용 상임논설위원()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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